| [ photo ] in KIDS 글 쓴 이(By): LinLing (링링) 날 짜 (Date): 2003년 5월 7일 수요일 오후 12시 59분 38초 제 목(Title): Re: Zeiss & Leica 옛날 글들을 읽다가 혼자 횡설수설.. 얼마전에 어디서 읽은 바로는, 예전의 라이카 렌즈들은 렌즈 주변부의 수차를 일부러 보정하지 않고 남겨놓았었다고 합니다. 사람 눈이 인식하는 focal plane이 망막과 같은 곡면이기 때문에 그와 유사한 감을 남겨두기 위해서라더군요. 그에 비해 칼 짜이스 렌즈들은 focal plane과 필름면을 모두 수학적인 평면으로 설정하여 이론적으로 완벽한 성능을 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묘사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1970년대 이전 얘기고 - 그 시절의 라이카 렌즈들은 죄다 장롱이나 진열대 속으로 사라졌죠 - 요즘 실용적으로 쓰이는 콘탁스-라이카M/R 시대의 렌즈들은 그렇지도 않답니다. 캐논, 니콘 등 브랜드를 불문하고 APO, L, ED 같은게 붙는 렌즈들은 거의 광학적-물리학적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동안 열심히 둘러다니던 인터넷 갤러리들을 보고 나니 렌즈에 집착하는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흑백 사진이나 네가는 현상 인화하기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사람 손을 타게 되어 있어서 렌즈에 따른 맛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도 의문입니다. 색수차나 왜곡은 별개로 쳐도, 과연 필름 스캔으로 보는 인터넷 갤러리들의 사진이 그 렌즈의 제 맛인지. 어쩌면 칼 짜이스 렌즈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 렌즈의 명성과 세평 - 칼로 도려낸 듯한 선예도, 강렬한 콘트라스트, 비현실적으로 풍부한 색감 - 에 세뇌당하고 눈을 찌르는 듯한 칼 짜이스표 사진들에 뽐뿌질을 엄청나게 받은 후에 구입하게 되는 터라, 자기가 찍은 사진이 칼 짜이스표 사진처럼 보이도록 보정할 수 밖에 없는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으면서 스캔 보정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라이스 필름을 스캔해서 원본에 최대한 가까운 수준으로 보정한 후 올렸다는 사진들을 보면 렌즈나 필름에 따른 차이는 또한 명백합니다.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해도 전혀 다른 느낌의 사진이 나올 수 있다고 설득당하게 됩니다. 슬라이드로 보는 것은 과연 렌즈와 필름의 진짜 맛인지. 라이트 박스와 루뻬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환등기 램프와 렌즈에 따라 또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한술 더 뜨는 장비병 환자들인 일본인들 중에는 온갖 렌즈들로 같은 걸 찍어서 비교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급 오디오로 음악은 안 듣고 음질 테스트만 하는 것과 비슷한 취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걸 비웃을 생각은 없습니다. 기계 장치들, 특히 인간의 감각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예술에 가깝게 승화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가치와 즐거움이 있는 법이니까요. 단순하면서도 완벽하게 효율적인 2매 날개식 렌즈 셔터의 분해도 같은 것을 보면서 뻑 가는 것을 보면, 사진 찍고 감상하는 것 보다는 황학동같은데서 고물 카메라를 구해다가 분해수리나 하는게 더 제 적성에 맞는 취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들고나온 똑딱이는 날씨가 너무 어둡다 보니 자꾸 플래시를 터뜨리려고 하네요. 밝은 렌즈의 SLR이나 레인지 파인더가 있으면 좋은데 들고 다니긴 힘들겠죠. 얼마전에 황학동에 다녀온 뒤로 장비 뽐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근사한 구닥다리 물건들. 야시카 SLR 바디에 물려 쓸 밝은 플라나 렌즈도 갖고 싶고, f1.7짜리 렌즈가 붙은 야시카 일렉트로나 캐노넷도 갖고 싶고, 라이트 박스도 빨랑 만들어야겠고, 루뻬와 환등기도 갖고 싶고, 컴팩트 디카, D-SLR, 필름 스캐너, 더 큰 삼각대, 현상용품, 확대기, 3CCD DV 캠, 줌마이크, 편집보드, 아리플렉스, 영사기...... 아마 조만간 시들해져서 다시 똑딱이로 기념사진이나 찍게 되겠죠. 예전과는 달리 일장기 사진은 좀 덜 찍게 되겠지만요. ......웃기냐? 응? 웃기냐? 응? 퍽퍽퍽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