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8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22분 50초 제 목(Title): 파리해방 - 37 (8) 해방 그 이튿날인 8월 25일 오전 8시경부터 르끌레르 사단의 본대가 파리에 입성하기 시작했고, 미 제4보병사단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 시각까지도 독일군과 동포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대독협력자들이 시내 요소요소에 고립된 채로 절망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아예 그들의 존재를 무시해 버린 듯했다. 몽파르나스의 이발소 주인 '앙리 듀발'은 아껴두었던 꼬냑 한병을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진흙투성이가 된 병사들의 행렬이 에트와르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운 채로 지나가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에는 오랫동안 계양이 금지되었던 삼색기와 성조기, 유니온 잭이 내걸려 있었고,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은 환희에 들떠 "드골 만세" "르끌레르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 인파에 떠밀려 도저히 병사들의 대열 가까이로 다가갈 수가 없었으므로, 가장 먼저 자신의 손에 잡히는 병사의 입에다 그 술병을 몽땅 부어 넣어 주겠다는 듀발의 희망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듀발은 그 술을 냉큼 자기 입에 털어넣고 나서, 아직도 독일군이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는 '컨티넨탈' 호텔을 향해 달려갔다. 9시 40분, 르끌레르 장군이 탄 장갑차가 오를레앙 문을 지나 시내로 들어왔다. 장군은 환영인파를 헤치고 몽파르나스역으로 가서 그곳에 사령부를 설치한 다음, 레지스탕스 지도자들과 오찬이 마련되어 있는 파리시경으로 향했다. 무리스호텔에서 독일군 파리지구 사령관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시경건물의 경찰관 휴게실로 들어선 르끌레르는 20여명의 경찰관들에 둘러싸여 있는 하 사람의 독일장군을 발견했다. "나는 르끌레르 소장입니다. 당신, 콜티츠 소장이 틀림없겠지요?" 오후 3시. 콜티츠는 파리지구 독일군의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그 한 시간쯤 뒤에는 샤를르 드골이 검은 색의 호치키스 컨버티블 승용차를 타고 파리로 들어왔다. 차도고 환영인파에 완전히 가로막혀 버리자 승용차에서 내려선 드골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유유히 군중을 헤치고 걷기 시작하자 그의 참모들은 대경질색했다. 시내에서는 아직도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고, 환영인파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드골의 유난히 큰 키는 독일군 저격수에게 절호의 표적이 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골은 참모들의 만류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그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군중들과 악수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서 몽파르나역에 설치된 사령부까지 갔다. 그곳에는 레지스탕스 각 파벌의 지도자들과 르끌레르 장군의 참모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산당 레지스탕스 대장 롤대령과 드골은 그 이전에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드골은 단숨에 그를 알아보았다. 롤의 눈은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드골 - 바로 이 사람으로 인해 '사회주의 프랑스'의 꿈은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두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드골이 롤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롤은 마지못해 그 손을 잡았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한번 피바람과 함께 전세계를 양분하게 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프랑스에서는 이처럼 싱겁게 끝나버린 것이다. 그 이튿날인 8월 26일.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의 개선행진이 벌어졌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이 웅장한 열병식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근교도시로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파리시내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날 벌어진 사소한 사건은 결과적으로 샤를르 드골이라는 사나이를 더욱 확실하게 권력의 발판으로 밀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행진대열이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으로 들어섰을 때 돌연 한발의 총성이 울렸고, 놀란 군중이 메뚜기떼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무개차에 올라탄 드골은 전혀 개의치 않고 가슴을 활짝 편채로 의연하게 시청으로 향했고, 그가 시청에 도착하자 다시 기관총과 소총의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드골은 태연하게 최종목적지인 노틀담 사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성당 안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에도 파리시내의 교전은 계속되었고, 이날 드골이 보여준 의연한 태도는 모든 프랑스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당당한 사람- 그것이야말로 프랑스가 찾고 있던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이었고, 그것을 지켜본 한 미국인 기자는 이렇게 썼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침내 드골은 프랑스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