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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8월  6일 목요일 오전 10시 48분 15초
제 목(Title): 파리해방 - 37 (4) 어떤 독일 장군


어떤 독일 장군

'디트리히 폰 콜티츠'소장이 동프로이센의 총통 관저에서 히틀러를 만난 것은 8월 
초순이었다.
히틀러는 그때까지도 지난 7월 20일 '폰 시타인베르크' 대령을 비롯한 일단의 
반나치주의자들이 기도한 암살미수사건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류가방 속에 숨겨진 시한폭탄이 회의실 탁자 밑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고위 
장성들과 측근 몇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지만 히틀러 자신은 약간의 찰과상만 
입은 채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때부터 나치 친위대에 체포와 복수의 피바람이 온 
군부와 정계를 휩쓸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총통 앞에 불려간 콜티츠 장군도 자연히 
주눅이 들어 있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암살하려 했던 그 배신자들이 "푸줏간의 돼지처럼 줄줄이 
쇠갈고리에 매달렸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콜티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 '배신자'들을 성토하는 총통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턱이 벌벌 떨리는 이런 발작증세가 거의 십여분 동안이나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본론을 끄집어 내었다.
"장군은 지금 파리로 가시오. 그리고 그곳을 깡그리 파괴하시요.
그 더러운 양키들과 앵글로 색슨에게 내어줄 바엔 이 지구상에서 파리라는 도시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는게 나의 생각이오."
콜티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총통이 파리를 얼마나 좋아하며, 1940년에 그것을 
함락시켰을 때는 또 얼마나 기뻐했던가를 모두가 알고 있다.
"성당하나, 기념비 하나 남기지 마시오. 그리고 불을 지르시오. 모두 불태워 
버리란 말이오. 상수도를 파괴하면 전염병이 돌게되니 더욱 좋겠지..."
콜티츠는 그때 지금까지 자신이 하늘처럼 섬겨오던 총통이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닭았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 파리로 향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명령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진정한 군인의 도리인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는 항상 우리 군대가 철수할 때마다 맨 후미에 남아서 
설거지 하는 일을 맡게 되고, 그 때문에 악명을 떨치게 된단 말이야..."
사실이 그랬다.
줄곧 동부전선에서 싸워왔던 콜티츠는 항상 퇴각하는 독일군의 최후미에서 그 
지역을 불태워 초토화해 버리는 임무를 도맡아 왔고, 그 때문에 '사람백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고 있었다.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가까운 '무리스' 호텔에 사령부를 설치한 콜티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열 아홉살에 군인이 된 이후로 30년 동안 자랑스런 프로이센 장교의 본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으며, 히틀러 총통은 그에게 있어서 곧 신과 같은 존재였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 조국 독일이 마침내 패배할 것이란 사실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지만, 나는 그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할 각오도 되어 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보고와 같은 이 도시를 파괴하고 나면 나는 두고두고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요, 그 명령에 불복하면 고향에 있는 처자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콜티츠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던 8월19일에 마침내 일이 벌어졌다.
공산당 레지스탕스가 드디어 일제 봉기를 일으켜 독일군을 향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파리시민들이여, 모두 총을 들라! 저 자랑스런 *코뮌의 영광을 잊었는가? 우리 
손으로 압제자를 몰아내고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을 되찾자!"
공산당의 선전 마이크가 왕왕대기 시작하자 드골파 레지스탕스들도 다급해졌다.
"이대로 멍청히 앉아서 연합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그 전에 모든 것이 
빨갱이들의 차지가 된다."
드골파 역시 파출소 하나, 우체국 하나라도 공산당보다 자신들이 먼저 장악하기 
위해 총을 들고 이 봉기에 합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레지스탕스와 독일군의 싸움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3파전이나 다름없는 결렬한 시가전이 파리를 휩쓸었고, 이날 하루 사이에 독일군만 
해도 5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엉거주춤하고 있던 콜티츠로 하여금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다 죽여버려! 빨갱이든, 드골파든 다 죽여 버리고, 명령대로 파리는 깨끗이 
불태워 버린다!"

바로 그때 한 사나이가 나섰다.
파리주재 스웨덴 총영사이며 독일군에 볼 베어링을 납품하고 있는 군수산업체 
SKF사의 사장이기도 한 '노르드링크'가 바로 그 사람으로, 중립국 스웨덴인이지만 
이미 수십년째 파리에 살아온 그가 결사적으로 콜티츠를 만류하고 나섰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용서 받지 못할 인류사에 대한 범죄입니다. 그 누구도 그런 
범죄를 저지를 권리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요? 놈들이 저렇게 우리 독일군을 공격하고 있는데, 우린 
앉아서 죽으란 말이요?"
이미 노르드링크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4000명 이상의 프랑스인 정치범을 
석방해준 바 있는 콜티츠가 좀 자신 없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제가 나서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드골파와 공산당 지도자를 만나 휴전을 
이끌어낼테니, 장군님도 부하들에게 전투중지 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콜티츠는 좀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파리의 각계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져온 노르드링크가 공산당과 드골파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은 
어럽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적군인 독일군과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3국인이 
아닌가?
드골파의 샤만 델마스는 당연히 휴전제의에 선뜻 동의했고, 공산당 레지스탕스의 
참모장 '로제 비용'은 반대했다.
표결은 투표에 부쳐졌고, 개표결과는 휴전으로 결론이 났다.
드골파도, 공산당도 아닌 중립적인 레지스탕스 파벌의 지도자들이 독일군이 아직도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급하고 봉기에 가담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콜티츠는 공산당, 드골파, 그리고 다른 레지스탕스 조직들의 연합체인 FFI(프랑스 
국내 해방군)을 테러범이 아니라 연합군과 동일한 정규군으로 인정하고, 체포된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범죄자가 아닌 전쟁 포로로 대우하는데 동의했다.
또 FFI가 이미 점거한 지역에 대한 지배권도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것은 지난 4년동안 파리를 지배해 왔던 독일군의 기세등등함에 비춰볼 때 도저히 
믿기지 않는 대폭적인 양보이며, 히틀러의 표현을 빌면 '쇠갈고리에 매달리고도 
남을 만한 배신행위'였다.
하지만 이 무렵의 콜티츠는 이미 망해가는 조국이나 군인의 명에보다는 한명의 
부하라도 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합의사항이 휴지쪽이 되어버리는 데는 두어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어렵게 얻어진 결론일지라도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는 것이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이고, 공산당의 군사 
지도자 룰대령이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합의된 휴전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싸우자! 파리의 거리에 독일군이 한명이라도 남아있는 한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휴전합의에 따라 FFI의 점령지역에서 철수하고 독일군의 트럭이 공격을 당하는 
것으로 전투는 재개되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빠져 나오고 있던 트럭을 향해 화염병이 날아들자, 온몸에 불이 
붙은 독일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석조포도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드골파는 독일군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어떻게든 이 싸움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롤과 공산당은 의도적으로 모든 파리시민들을 도살장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전모를 전해 들었을 때, 사람 좋은 아이젠하워 
총사령관도 마침내 울화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그 프랑스인들은 왜 스스로 자신들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들고, 모든 시민들을 사지로 끌어 넣겠다는 건..., 하여간 이것은 우리가 정말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사태인 것 같소."
그동안 드골파와 공산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암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총사령관도 마침내 이것이 단순히 전략적인 문제가 아니라 복잡미묘한 정치적 
사안이란 것을 이해했다.
아이젠하워는 즉시 알제리에 있는 드골을 프랑스로 불렀다 - 요컨데 골치 아픈 
프랑스 국내문제는 프랑스인 자신들로 하여금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하지만 드골이 어떤 사람인가?
연합군 총사령관과 무릎을 맞대고 앉은 드골은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로 오히려 
아이젠하워를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역시 연합군이 한시바삐 파리로 진격하여 그곳을 
접수하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파리해방을 보류한다는 당신들의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골치 아픈 선택을 강요 받게된 아이크 사령관이 대답했다.
"당신네 프랑스인들은 지금 우리 연합군에 상당한 희생을 불러오게 될 전투를 
강요하고 있어요."
하지만 드골은 숫제 협박조였다.
"시간을 끌면 모든 것이 공산당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해발된 파리가 소련과 같은 
공산국가가 되는 것은 당신네 미국도 원치 않겠지요?"
그리고 드골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피력했다.
지금 미군에 배속되어 있는 '자끄 르끌레르'소장의 자유 프랑스군 제2기갑사단을 
연합군의 지휘계통에서 빼내어 자기에게 돌려주면, 그들을 곧장 파리로 
돌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애매한 웃음으로 그 말을 무시해 버렸다.
드골이 말하는 그 프랑스군 부대는 '군화끈에서 전차까지' 모든 보급물자를 완전히 
미군에게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미군이 협조하지 않는 한 그들은 단 1km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의는 결렬되었고, 드골은 회담장을 나서면서 자신의 측근 한 사람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르끌레르 장군의 부대는 지금 어디에 있지?"

*파리코뮌 : 1971년 파리시민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나폴레옹3세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설립된 시민정부. 세계 최초의 공산사회를 지향한 이 혁명은 정부군의 
반격에 의해 두달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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