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ka (기대면 자) 날 짜 (Date): 1997년07월05일(토) 01시15분55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21] '스탈린그라드'에 대해 영화 <스탈린그라드>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 죽는다. 개봉 첫날인 6월28일 토요일 오전 10시40분 명보극장. 다섯개의 개봉관을 갖춘 명보극장의 1, 3, 5관은 <잃어버린 세계>, 4관은 <콘 에어>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 터 판이었다. 1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전회 매진이었다. <스탈린그라드>가 상영되는 2관 은 3백80석 객석의 반도 차지 않았다. 철저히 버림받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지켜보기엔 어쩌면 적절한 분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전차에서 내려 공포에 떠는 나약한 인간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최우수 감독상, 독일에서 5 백만 흥행기록. 감독은 <U보트>의 요셉 빌스마이어. 91년 10월 크랭크인, 촬영기간 2년, 역대 유럽 영화 중 최대 제작규모, 엑스트라 10만명,탱크·장갑차 1천2백여 대 동원, 그리고 촬영 전 감독 자신을 포함해 연기자는 물론 6천여명의 조연급 엑스트라, 3백여명 의 스탭들이 3개월간 실제 군사훈련 실시. 이상이 영화 광고문안에 실린 주요내용이다. 여기에 “41∼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42만명 중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겨우 6천명”이라 는 역사적 설명이 덧붙여진다. 영화는 스탈린그라드 한복판의 시가전 장면으로 시작해 끝날 때까지 전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귓속 여기저기를 부딪는 독일어를 기대했는데 엉뚱한 영어더빙이 튀어나 와 “처음으로 독일의 시각에서 바라본 2차대전 영화”라는 광고의 진실이 흐려졌으나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합군의 진지와 참호 속만을 헤집었던 카메라를 1백80도 돌려 독일군쪽을 비추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독일군도 인간이었다. 전쟁의 공포에 떨기도 하고, 총상을 입고 비명을 지르기도하고, 시민을 사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앞에선 상관에게 덤벼들기도 하는. 그리고 그들에게도 고향과 두고온 가족이 있었다. 눈덮인 벌판을 지나는 트럭위에서 누군가의 선창으로i <오, 탄넨바움>(소나무야)을 부를땐 가슴이 뻐근해졌다. <지상최대의 작전> <젊은 사자들> 등 2차대전 영화들은 존 웨인,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 수많은 전쟁영웅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속 전쟁에선 때론 애틋한 사랑이 선연하게 꽃피기도 했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는 그러한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탈린그라드> 에서 독일군들은 오직 생존하기 위해 싸운다. 이는 연합군쪽에서도 마찬 가지였을 것이다. 전쟁영웅 거부하고 철학의 강요도 없다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누가 누구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도 없다. 전쟁영화에서 으레 보아왔던 전인격적인 주인공, 명예욕에 불타는 장교, 산전수전 다 겪은 하사관, 겁쟁이 신병 따위의 전형적인 구분은 <스탈린그라드>에선 명확하지 않다. 그저 한덩이로 뭉뚱그려진 독일군들 이었고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똑같은 인간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옥의 묵시록> 이나 <플래툰>에서 보여지는 사치스런(?) 철학도 없다. 오직 전쟁 그 자체만을 보여줄 뿐이어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마저 준다. 포탄을 받고 떨어져 나간 팔과 삐죽이 드러난 뼈, 탱크 아래 깔리면서 뭉개지는 온몸 등 화면은 너무나 적나라하다. 전쟁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반전도 전혀 없다. 우리의 실제 삶은 극적이지 않기에, 더구나 전쟁터라면. 그래서 다 죽는다. 영화 내내 “전쟁이란?” 또는 “인간이란?” 물음과 답변이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의 머리 속에서 계속 교차된다. 온통 흰 눈뿐인 동토에서 부둥켜안고 얼어죽은 두 독일군 위로 독일어 자막이 올라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 “재미 하나도…” 라는 웅성거림이 번져가는데, 군데군데 턱을 괸 채 다 끝난 영화화면을 응시하며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연이었을까? 이들 대부분은 혼자였고 자리는 구석 외진 곳이었다. 화양극장. (문의: 02-512-8285) 권태호 기자 (C)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