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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fractal (욱 이)
날 짜 (Date): 1997년07월03일(목) 20시56분34초 KDT
제 목(Title): [SG] 바바로사



 1941년 6월 22일 드디어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했다. 작전명은 "바바로사". 당시 
독일은 최강을 자랑하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미 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유고, 그리이스, 아프리카에서 그 진가를 보여 준 바 있다. 기계화 부대와 공군이 
함께 펼치는 전격전은 가히 백전 백승의 전술이라 할 만 했다. 독일군의 속력은 
스탈린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세계 매스컴은 "독일군이 뜨거운 칼로 버터를 
자르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 였다. 
 
 모스크바의 함락이 눈앞에 있는 시점에서 독일 지휘관들에게 긴급 훈령이 전달된
다. 2개 전차군단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로 이동 시키라는 것이다. 히틀러의 
생각은 어차피 광할한 소련에서 모스크바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적의 자원을 고갈 시켜야지만 승산이 있는거다. 나폴레옹도 모스크바를 
함락시켰지만 결코 러시아를 함락 시키진 못했다. 당시 소련의 주요 자원 지대는 
크게 두 군데로 볼 수 있다. 곡물은 우크라이나. 석유는 코카서스(오늘날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 이 두 지역만 제압하면 전쟁은 
끝이다. 물론 우랄 산맥 뒤편에 거대한 공장지대가 건설되어 있었지만  석유가 
없으면 그것도 무용지물이 아닌가?

 우크라이나의 중심도시는 바로 키예프였고, 코카서스의 석유가 우랄 공업지대로 
이동하는 중간에 위치한 가장 중요한 거점 도시가 스탈린그라드였다. 아무튼 
심리적으로 모스크바 함락에 중요성을 두고 있던 지휘관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으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려 2개 전차군단이란 병력이 빠져 
나간 모스크바 공격군은 김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키예프까지 이동하려면 
최소한 10일은 걸릴 터였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부죤니 휘하에 2000대 이상의 비행기, 2500대의 전차, 
4000문의 대포, 거의 100만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다. 하지만 부죤니 원수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스탈린에 간청하여 동쪽으로 후퇴할 것을 조언한다. 
당연 빠따 지휘관이 교체되었지만 그도 마찬가지. 이 많은 물적 자원을 운용할 
지휘관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예상한 대로 였다. 키예프가 포위 되고 
우크라이나군은  완전 전멸하고 만다. 사령관 키르포노스는 키예프 시가전중 
전사한다. 때는 1941년 9월. 우크라이나는 손에얻었으나 모스크바를 점령하지 못한 
채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 SG는 Stalingrad 의 약자. 
@ military board에서 전사 예기 해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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