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오전 06시 58분 00초 제 목(Title): Re: 학익진 어느 역사학자 분한테 들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는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습니다. 당파(撞破)전술은 당연히 왜란기 일본수군에 맞 선 중요한 전술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배들은 주로 소나무로 만들 었고, 짜맞출 때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 배들은 전나무, 삼나무를 주로 사용했고, 짜맞출 때도 쇠못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또 일본 배들은 기동성을 중시했기 때문에 가볍게 만들기 위해 나무를 얇은 판자로 가공해서 주로 썼습니다. 한국 배들은 개펄이 많은 서해-남해 일대에서 수 송용으로 많이 쓰였으므로 속도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게 되어, 바닥도 평 평하고 판재도 대단히 두꺼운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판옥선과 일본의 배들이 부딪히면 일본 배들이 여지없이 깨져나가게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당파를 노리고 접근부터 하면 조선수군은 극히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일본은 배를 붙여놓고 적선으로 올라가 단병접전으로 끝장내는데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당파하겠다고 접근하다가 팔팔한 일본군이 갈고리 걸고 기어 올라오는데 성공하면 게임 끝인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창칼쓰는 법은 일본군이 워낙 월등해서 몇 명만 올라와도 조선수군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배를 버린 사례들이 여럿 있었지요. 그래서 이순신도 일본군과의 단병전은 반드시 피하라는 지침을 누차 강조합니다. 다시말해 당파를 하더라도 우선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을때 우수한 화약 병기와 활 등의 장병기를 이용하여 일본의 전선들을 타격, 웬만큼 반격할 기세를 꺾어버린 다음에 들어가는 전법을 주로 썼습니다. 당시의 총통류가 중요했던 것도 장거리타격을 통해 기선을 제압하는 용도에서였지 옆구리에 들이밀고 직사하는데 쓰기에는 비효율적이었습니다. 당시 화약은 생산하기 대단히 수고가 많이 드는 귀중한 자원이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멀리에서 총통과 편전 등을 쏘아 웬만큼 갑판 위의 적을 쓸어버리고, 저항력을 상실 한게 확인되면 접근하여 들이받아 부숴버리고 불질러서 침몰시키는 식으로 싸웠습니다. 다만, 전쟁후반에 갈수록 중국식 소형총통들과 질려포통 등의 투척식 화약병기 사용도 늘어서 근접전에서도 그 쓸모가 늘어났음은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조선수군이 승리한 해전들을 보면, 넓은 공간에서 기동성을 이 용하기보다는 주로 기습을 통해 포구나 만 언저리 등으로 몰아넣고서 격파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시 총통류의 정밀도로 장거리에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퇴로를 막아 표적선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럴 경우 일본군은 빠르게 전의를 잃고 뭍으로 도망가고는 했 습니다. 또한, 노(櫓) 관련된 이야기는 그다지 맞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일 본의 배가 약해도 노랑 배랑 부딪히면 노가 부서지기 쉽습니다. 노로 물에 빠진 사람을 패기는 했어도 노로 배를 부수는건 과장입니다. 가뜩이나 고 생하던 수부들은 묵직한 노를 젓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