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오후 02시 08분 15초 제 목(Title): Re: 학익진 보아하니 원글은 다물넷(http://www.damool.net)에서 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저 원글을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학익진과 이른바 정(丁)자전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썼다고 생각됩니다. 학익진은 진법 자체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일본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진법입니다. 센코쿠(전국)시대의 기본 8진법 중 제일 먼저 거론되던게 학익진 이죠. 다케다 신겐이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혼쭐내준 미카타가하라 합전이 학 익진을 잘 응용한 대표적인 전례로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조선에서 학익진이 기본 진법 중에서 빠져 있었다 는 사실입니다. 임란 직전까지 오위진법을 표준 텍스트로 삼고 있던 시기라서 함진도 보병진과 마찬가지로 방진-직진-곡진-예진-원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 는데, 이순신은 오위진법 이외의 다른 병서를 통해 학익진을 채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원글에 있는 한산해전의 진형이라는 것도 임란 뒤에 나왔던 여러 진법자료들을 가지고 상상한 것이지, 당대의 실전배치는 이견이 많이 있 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도입한 후의 영향을 그대로 담고 있는 한계가 있고, 아직도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산해전은 일본수군이 그런 진법에 무지해서라기 보다는, 애초부터 유인책에 말려들어 조선수군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가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던 조선수군의 그물에 걸려든게 문제입니다. 특히 당시 일본수군에는 조선수군의 장사정화기에 맞설만한 장병기도 없었으니, 유사한 진법을 구사해 조선수군을 상대하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정(丁)자전법은 쓰시마해전(일본에선 일본해해전으로 부르죠)에서 도 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멸하면서 유명 해졌지만, 이게 이순신의 전법을 응용한 것이라든가 이게 연합함대 승리의 핵 심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지나친 과장입니다. 정자전법은 개념 자체가 함대의 기동간에 우월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 종대를 앞서 가로지르는 전술이지, 제 자리에서 선체 돌려가며 측면 일제사격을 퍼붓는 것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또한 연합함대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누유키가 고안했다는 정자전법은 승전후에 대대적으로 부풀려져서 미화되었지만, 1980/90년대 이후에 일본에서 논란화된 바에 의하면 쓰시마해전에서 연합함대의 기동은 단순히 평행포격전을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14시 경에 양측의 침로가 평행하게 마주보고 잡혀 있었기 때문 에 같은 방향의 평행위치로 전환하고자 180도 변침기동을 실행한 것일 뿐이죠. 후일 정립화된 T자형 전법에서는 쓰시마해전과 같은 포격과 기동 패턴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 숱하게 쏟아졌습니다. 설사 아키야마가 정자전법의 패턴을 준비했다는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뿌리는 많이 달랐다 합니다. 전설같은 이야기에서는 해적들(왜구들)의 기동법에서 아이디어를 얻 었다고도 합니다. 이순신의 위대함이야 여러 방면에서 조망할 수 있지만, 군사적인 부분에서 대 단한건 (원문에서도 막판에 언급했듯이) 알려진 진법/전법을 실전에서 능란히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예하 수군을 잘 조련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는 데 있습 니다. 제 아무리 머리 속에서 병법이 능하다고 한들 전장의 급박한 상황에서 예하부대를 수족처럼 통제를 할 수 없으면 말짱 헛것이죠. (도고와 일본 연합 함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전에서 진형을 깨지 않고 180도 변침기 동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도 단단히 훈련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