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_) <210.117.244.253> 날 짜 (Date): 2002년 8월 22일 목요일 오후 02시 57분 34초 제 목(Title): [펌]장교와 라면 장교와 라면 조성호 기자 aircho32@snu.ac.kr 저는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저는 큰 키와 준수한 외모(?) 때문에 의장대원으로 선발되어, 국방부 의장대대에서 육·해·공군 의장대원들과 함께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직 근무도 타군 장교들과 같이 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대를 2-3달 남기고 있었던 어느 겨울 밤, 저는 타군 장교와 함께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새벽 3시쯤, 장교는 저에게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올 것을 명했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군대에서는 저녁이면 다리미를 비롯한 모든 전열기구, 취사도구를 수거해서 창고에 넣고 잠금장치를 합니다. 화재에 대비해서죠.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커다란 보온병에 담아서 야간 근무자들이 언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놔 둡니다. 저는 그 장교가 시킨대로, 사발면을 들고 부대 막사 전체를 돌아다니며 보온통을 점검했는데, 그날따라 많이 추워선지, 막사 전체의 보온통 중 단 한 곳에도 뜨거운 물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사발면에 물을 못 담은 채로 다시 당직실로 돌아가, 당직 장교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당직장교가 "야, 해병대도 못하는 게 있냐?"며 빈정거리는 겁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곳은 군대였고, 그 장교는 상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장교의 군시렁거림은 10분이상 계속되었습니다. 물도 못 구해 오는 것이 무슨 해병이냐, 해병들은 해병 장교한테 하는 것과 타군 장교에게 하는게 천차만별이다, 옛날 해병이나 귀신 잡았지, 요즘 해병은 귀신 잡겠냐. 사실,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저도 알고 있었고, 그 장교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 장교는 그런 식으로 절 자극했던 것이고요. 그 방법은 다름 아니라, 주계병(취사병)을 깨우는 것입니다. 모든 열기구는 창고안에 들어 잠겨져 있으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식당에 있는 조리기구들 뿐입니다. 그 장교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당직장교로서, 자신이 직접 주계병들을 깨울 것을 명령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차마 주계병들을 깨울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4시 30분에 기상하는 주계병들을, 그들이 한참 달콤하게 자고 있을 그 시간에, 한 개인의 야참을 위해 어떻게 깨웁니까? 그래서 저는 계속 장교의 군시렁 거림을 못들은 척 하며, 지난 당직일지를 읽는 척 하고 있다가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그 사발면을 들고 당직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5분 후 사발면에 물을 받아 다시 당직실로 돌아왔습니다. 그 장교는, 저에게 야비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것봐, 할수 있잖아?' 이러더군요. 그 후로 3분의 시간이 흐르고, 장교는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떴습니다. 그런데, 라면은 한 젓가락 올라오는게 아니고, 물 붓기전 라면 덩어리 모양 그대로 올라왔습니다. "아니 이게 왜 이래?" 당황한 장교는 제게 물었습니다. "라면에 찬물을 받아와서 그렇습니다." "너 바보야?" "아닙니다. 하지만 뜨거운 물이 없는 데도, 해병이 못하는게 어딨냐며 무조건 물을 받아 오라 하시니, 그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장교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 졌습니다. "야이 새끼야, 이걸 어떻게 먹어?" 그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군인이 못 먹는게 어딨습니까? 그냥 드십시오." 결국 저는 그 시간 부터 일과 시간이 끝나는 18시까지, 15시간 동안 완전 무장을 하고 구보를 하였습니다. 당직 근무를 하느라 잠 한숨 못 잔 상태로 뛰려니 많이 피곤했지만, 어디선가 그 장교가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번도 쉬지 않고 내리 뛰었습니다. 저녁에, 구보를 마치고 내무반에 돌아가자, 주계병들이 어떻게 사연을 알았는지, 저를 위한 특별 안주와 소주가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두 세시까지 술시중을 들게 하고, 끓인 라면이 맛없다며 총쏴 죽이고, 그 시신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두 발의 총을 더 쏴 대고, 부하들을 위협하여 입을 막는 어떤 장교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옛날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장교님, 저희 병들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좀 알아주십시오. 2002/08/22 오전 03:29 ⓒ 2002 Ohmy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