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imnot (반이정) 날 짜 (Date): 2002년 3월 5일 화요일 오전 12시 07분 37초 제 목(Title): 예비군 교육훈련 - "이빨 빠진 호랑이들" “이빨 빠진 호랑이” 실은 이 표현은 학교에서 밤샘을 마치고, 몽롱한 정신상태로 귀가하던 어느 날 아 침 버스 안에 올라타는 어느 퇴역 해병대 노병(!)을 보는 순간 받았던 인상에서 착 안한 것이었다. ‘해병전우회’라고 선명한 궁서체로 수가 박힌 상의(上衣), 그렇 지 않아도 유난히 굵은 손가락을 더욱 굵게 하는 붉은 알이 막힌 ‘임금님 반지.’ 그들의 구호가 말해주듯 언제나 해병. 수십 년 전 막사 안에서건, 수십 년이 지 나버린 막사 밖에서건 언제나 해병! 언제나 호랑이. 하지만 이빨이 우수수 빠 져버린. 아직까지는 매년 참석해야 ‘만’ 하는 예비군 훈련 참석 때마다 느끼는 소감과 인상이 또한 그렇다. “이빨 빠진 호랑이(소굴).” 오늘도 그들을 만나고 왔다. 예편한 지 이미 오래인 나이 찬 교관들도, 더 이상 승진과는 연이 없는 예비군부대 대대장도, 심지어 말 안 듣는 ‘선배님들’ 통제하느라 애먹는 조교들도 모두 이 빨 빠진 호랑이들이다. 하긴 조교들은 여태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이빨을 가져본 적도, 가질 가능성도 없다’는 점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해당사항이 분명 있어 보이는 ‘교관들’과 ‘대대장’을 한번 보자. 교관이나 대대장은 크게 2부류로 나뉜다. 여태 왕년 생각 잊지 못해, 이제는 다 커버린 아저씨들 위에서 조금이라도 군림하는 시늉 내보려는 축과, 좌천된 자신의 처지(아니 역전된 처지가 더 적확한 표현일 듯하다.)와 상관으로서의 마지막 자존 심 때문에, 자신의 통제빨이 먹히지 않는 현상황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마냥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일관하는 축. 이 2부류는 교관들과 대대장들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대개는 전자(왕년)에 대대장 이, 후자(웃음)에 교관이 연결되게 마련이다. 예비군부대 대대장. 물론 이들 중 많은 이는 자신이 더 이상 ‘위용을 자랑하던 과거의 자신’일 수 없음을 부인 못해, ‘웃음’으로 기울어지기 십상이고, 예비군 을 상대로 자신에게 부여된 유일한 교육 프로그램인 정신교육 중에는 철지난 음담 패설로 예비군들의 환심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그 런 어울리지 않는 처세술은 대대장인 현재 자신의 불안한 입지만을 돋보이게 할 뿐 이다. 오늘 소집 교육 때도 예의 판에 박힌 그 정신 교육은 변함이 없었고, 또한 변함없 이 많은 예비군들이 교회용 책상 같은 불편한 대형 벤치에 줄줄이 앉아 잠을 잤다. (* 나는 아무리 전날이 피곤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어도, 그런데 가면 도통 잠 을 잘 수 없어서 괴롭다. 그리고 교장에서 태연히 잠을 자는 예비군들을 보면, 희 한하기 짝이 없다. ) 정신교육에 앞서 대대장은 자신의 지나간 약력을 소개했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예편을 앞둔 이빨 빠진 호랑이임을 마지막에 시인했다. 그 대목에 도달하면 그 특유의 과장된 무용담과 자신의 위용 을 알아주지 못하는 윗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 대대장이 자기 최면(催眠)에 빠져있는 바로 그 틈이야말로 예비군들이 전우의 어깨 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예비군부대 대대장은 통상, 자신의 남은 잔여 임기와 상관 직분이 그에게 심어준 끈질긴 자존심 탓에, 군기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아저씨들을 앞에서도 위세 를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도무지 군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이들에게서 약소하 나마 복종(말이 복종이지, 다만 자신의 엉성한 말주변에도 맞장구 쳐주고, 목청 높 게 “예!”하고 대답해주면 그에겐 복종의 일종이다.)이라도 얻어내려면 왕년의 주 특기 갖고는 될 성 싶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 역시 점차 후자의 경우, 즉 ‘교관 ’을 닮아간다. 음담패설, 어설픈 농담, 전혀 그럴싸하지 않은 예비군 띄어주기 같 은 처세가 그것이다.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교관. 각 예비군 동대에서 동대장들 임무를 수행하는 듯한 이들은 대위 혹은 소령 예편자들이다. 엄연히 군대의 녹을 먹고 사는 걸로 봐서 분명 군인은 군인인 듯한 데, ‘애매한 군인’이다. 가장 애매한 부분은 예비군들이 그들을 군인으로 별로 인정하지 않는데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예비군에겐 현역 군인(간부)도 무섭지 않긴 매한가지지만. 실습 조교들이 그들에게 예우를 갖춰주는 것 같긴 하나, 그 것 역시 어쩐지 ‘애매한’ 예우인 듯하다. 그들의 어깨와 이마에 달고 있는 낯선 계급장 역시 그들을 ‘애매하게’ 인식하게 하는데 한 몫한다. 어깨의 계급장과 복장은 현역시절 선임하사들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거기까진 좋다. 그들의 머리를 덮어주는 모자는 군인들의 그것이기 보다는, 조기축구회 사은품 같은 모양새를 했 다. 아니 그보다 더하며 더했다. 즉 한때 장교 신분이었던 그들에겐 볼품없어 보이는 위장복임에 틀림없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들 교관은 ‘왕년’을 애써 내세워서 예비군 통제에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 여기서 ‘왕년’이란 과거 무용담에의 도 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왕년’ 생각에, 무대보로 예비군들을 통제하는 것을 말함.) 간혹 교장(敎場) 간 이동시 예비군에게 ‘구보’를 강행하는 열혈 ‘왕년’ 교관 이 있다지만, 그것도 극소수이며 최소한의 자존심 표시일 뿐, 그들의 얼굴마담은 역시 예비군들에겐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질 못하는, ‘이미 같은 교장에서 골백번 은 반복했을 법한’ 자신들의 ‘그럴법하지 않은(?)’ 무용담과 월남 참전기담이다 . 그들은 여전히 날고 기었다 ‘던’ 과거 용사시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아 니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들 역시 철지난 음담패설과 고등학생 도 수준을 밑도는 성(性)지식을 동원해서 예비군 아저씨들의 환심을 사려한다. (* 하지만 예비군 아저씨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교장에서 담배피우는 거 봐주기, 실습 중 장시간 핸드폰 사용, 더 나아가서, 잠자는 거 훼방 않기, 일찍 퇴소시켜 주기 인데...) 사실 대대장보다 더 안스러운 양반들이 교관이다. 여간 뻔뻔하지 않고서는, 머리 가 커질 대로 커버린 ‘지난 날 자신의 졸개들’의 대책 없는 불복종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뻔뻔하게 군림했다간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달라진 풍경은 이런 것이다. 현역시절에는 교육생이 교관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복창함으로서 (원하건 원치 안 건) 인사말을 건넸지만, 예비군 앞에선 반대로 교 관들이 아래와 같이 인사한다. “오늘 교육받느라 너무 너무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지난 주 훈련 들어오신 분 들보다 훨씬 실습에 잘 임해주셨습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들. 하지만 측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