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josh (partisan) 날 짜 (Date): 1999년 12월 4일 토요일 오후 04시 47분 07초 제 목(Title): 핵무기 한국 내 핵무기저장고 돌아본 미국 기자의 증언 > (서울=연합뉴스) 정일용기자 = 미국은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때 한국 등 18개국과 미군 기지 9곳 등 모두 27개 해외 지역에 핵무기 1만2천여개를 비밀리에 배치했다고 미국의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Atomic Scientists)' 11-12월호가 지난 10월 20일 밝혔었다. 3일 이 회보에 따르면 한국에는 지난 58년 1월 어니스트 존 미사일, 280㎜와 8인치 곡사포 등으로 투발할 수 있는 핵 포탄을 시작으로 지대공 미사일인 나이키와 허큘리스를 비롯해 지대지 미사일인 서전트 등에 실어 투발할 수 있는 10여 종의 핵무기가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핵무기는 지난 58년 처음 배치된 뒤 극동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지난 91년 철수했으며 현재 아시아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전혀 없다고 이 회보는 말했다. 또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달 28일 일요판 `아웃룩(OUTLOOK)' 섹션에 지난 69년 여름 주한미군의 핵무기 저장고를 직접 둘러본 월터 핀커스 기자의 해설 기사를 게재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국내 안보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핀커스 기자는 `핵정치의 첫번째 법칙: 모든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First Law of Nuclear Politics: Every Action Brings Reaction)'는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지난 58년 한국 내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됐을 때 북한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실례로 들어 핵무기 무장의 역학관계를 조명했다. 그는 이 기사에서 미국의 한국 내 핵무기 배치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자극했다고 말하고 '한국의 한 작은 군부대에 히로시마 핵폭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지닌 핵 포탄들을 보관하는 콘크리트 벙커가 있었는데 이 벙커에 대한 일차적 보안 책임이 30여명의 미군병사들에게 달려 있었다'고 핵무기 저장고의 허술한 관리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핀커스 기자는 지난 69년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회의 자문으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과 70년 11월 비밀해제된 상원 외교위원회의 비밀문서 자료를 활용, 한반도 내의 핵무기 배치 및 이동과 북한의 대응을 소개했다. 다음은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한반도 정보 서비스 넷'이 핀커스 기자의 해설기사를 한글로 요약 번역한 것이다. 『미 의회의 열성주의자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현재 심사숙고 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에 너무 빠져들기 전에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를 한번쯤 돌이켜 봐야 한다.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는 미사일 방어망 같은 방패구축이 왜 신종 군비확장의 불씨를 당기게 되는지 잘 설명해 줄 것이다. 1969년 여름, 상원 외교위원회 자문으로 일하던 필자는 남북한을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에서 채 10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은 한국의 한 작은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군 부대 안에는 유사시 한국군이 쓸 핵 포탄이 저장돼 있었는데, 미국이 그 곳에 저장해 놓은 것이었다. 필자가 그 부대를 방문한 이유는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윌리엄 풀브라이트(민주당) 의원이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전개돼 있는 미 핵무기의 실상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배치된 그 단거리용 핵무기는 지난 58년에 처음으로 그 곳에 저장된 것이었고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그 핵무기를 통제하거나 한국과 핵무기 비밀을 공유하는 공식적인 합의가 전혀 없었다. 이 핵 포탄의 배치사실은 당연히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극소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으나 평양의 공산정권에게는 그리 큰 비밀이 아니었다. 북한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들은 나름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60년대 중반 4만명의 미군과 수백기의 핵 포탄이 한국에 배치됐을 때 북한은 소련에서 교육받은 핵 전문가들을 고용해 영변(寧邊)에 대규모 원자력 연구단지를 세워놓고 있었다. 핵무기 분야에 다년간 경험이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의 반응은 미친 짓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물론 아니다. 핵 위협을 받는 나라는 힘에는 힘으로 맞서려 한다는 것이 핵정치 세계에서는 공인된 독트린이나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수년에 걸쳐 핵무기 연구를 계속했다. 다만 90년대에 미국이 한국에서 전술 핵무기를 철수했을 때 잠시 연구를 중단한 적은 있었다. 지난 70년 11월 극비통제에서 해제된 상원 외교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과 중국 주변국에 미국이 핵무기를 배치함으로써 '(또 다른 핵무기의) 배치 형태를유발했고 지대한 우려를 자아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만이 작용.반작용의 순환에 기여한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북한의 주변국들은 평양의 장거리 미사일 모험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일본은 2003년에 최초의 첩보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상태이다. 상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60년 후반에 실시한 조사의 또 다른 사안은, 핵무기 배치를 둘러싼 과도한 비밀이다. 조사 기간 중의 한 사례를 든다. 풀브라이트 의원이 중화민국(타이완)에 나가 있던 리차드 G.키코넬라 소장에게 `미국이 타이완에 핵무기를 배치해 놓았느냐'고 물었다. 키코넬라 소장은 '저는 모릅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 담당이 아니고, 제가 관여하지도 않았습니다'고 대답했다. 위원회 보고서는 또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그 나라 주재 미국대사가 주재국에 핵무기가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핵무기가 배치돼 있는 주재국이 잠재적인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대답한 미 대사들이 여러 명이었다.' 한국의 사례는 또 30년 동안에 세계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바로 보안의 문제이다. 앞에서 말한 핵 포탄은 콘크리트 벙커에 보관돼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티엔티 1만t, 혹은 히로시마 핵 포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민감한 핵무기에 대한 일차적인 보안 책임은 그 군 부대에 거주하는 30여명의 미군 병사들에게 달려 있었다. 그 군 부대는 두 겹의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고 그 사이로 독일산 셰퍼드 군견 팀이 순찰을 돌게 돼 있었다. 사고 발생시의 대응책이라는 것은, 1차선 도로를 따라 1마일이 채 못되는 거리에 있는 장교훈련학교 한국군 부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중략) 미국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배치를 하든, 그 행위는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 미사일 방어, 핵 과학과 핵 정치의 세계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정상적인 것이다.』 ciy@yonhapnews.co.kr(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