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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Sue (지수)
날 짜 (Date):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08시 19분 52초
제 목(Title): [어나니] 칭기즈칸의 전술과 우리의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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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04시 17분 02초
제 목(Title): 칭기즈칸의 전술과 우리의 나아갈 방향
 
 
몽고군의 기동전술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것과는 달리
몽고 기병대는 중무장 기병대가 아닌 경기병대였다는 점이다.
 
일단 원제국 당시 몽고군의 표준 무장을 살펴보자.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의 조랑말일 것이다. 비록 속도가 더디고
힘이 부족하였으나 지구력이 대단했다. 장기간에 걸쳐 대륙을 누비는데는
더할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먹이 역시 어떤 거친 풀이라도 잘 먹고
소화했으므로 진군중 휴식시간에 들판에 풀어놓기만 하면 먹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을 볼수 있었다.
 
조랑말은 체구가 작으므로 중무장한 기병이 타기엔 부적당했다.
몽고인들은 아시아 민족중 체구가 비교적 큰 편이었는데
이들의 군장은 매우 간편했다. 일단 철의 사용이 제한되어 있었다.
몽고군의 전투복장에서 철이 쓰인곳은 간편한 투구와 장화, 얼굴을 겨우 가리는
크기의 방패 뿐이었다. 장화는 두겹의 가죽사이에 철편을 넣어서 기병의
취약점인 발목과 정강이를 보호하였다.
화살과 같은 원거리 무기에 대한 방어책은 철갑을 이용한 수동형이 아닌,           
어릴때부터 갈고닦은 승마술과 보병에 비해 빠른 기동력, 그리고 왼손 팔뚝에
달고 다니던 조그마한 방패로 해결하였다.
 
그래도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부상은 피할수 없는법이다.
이들은 철갑 대신 비단옷으로 몸을 보호하였다.
비단은 그 섬유조직이 대단히 조밀하며 자연섬유중에서 가장 질기다.
비단을 두텁게 직조하여 여러겹으로 겹쳐입으면 철갑 이상의 보호 효과가 있았다.
몸에 꼭 맞는 팽팽한 비단옷을 입고 화살에 적중당했을 경우 화살은
살갗을   고 파고들지만 비단옷은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보통 비단천이 함께
딸려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상처는 입지 않으며 옷을 잡아당기면
쉽게 화살이 빠져나오므로 전투력 저하가 적었다.
 
즉 몽고군의 비단옷은 갑옷을 충분히 대신하면서 가볍고 활동에 편하여
몽고군의 전투력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몽고군의 공격무기 역시 간소했다. 짧은 도검, 방패와 함께 왼손에 차던
단도, 혹은 손도끼, 활 정도가 전부였다. 긴 칼은 멋있어 보이기는 하나
인해전술로 수만명이 어우러져 싸우는 한가운데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며
쉽게 부러져 버리는 경향이 있다. 몽고군의 짧고 크게 휘어진 칼은
전장에서 부러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또 기병중심인 탓에 주로 말발굽으로
짓밟고 다니는것이 그들의 특기였다.
 
몽고군의 편제는 완벽한 십진법으로서 10명이, 100명, 1000명, 10000명 단위로      
군이 편성되었으며 오늘날의 내무반 비슷하게 같은 천막에서 생활하며
단결력을 키웠다.
 
이러한 몽고군의 장비와 편제는 기술적으로 훨씬 뛰어나다고 볼수 있는 동시대의
남송과 고려는 물론 유럽의 기사군까지 격파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자신의 몸무게의 반에 가까운 중장갑과 자신의 키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무거운 칼, 방패를 든채 힘 위주의 역마를 타고 출진했던 유럽의 기사군을 철저히
농락함으로서 작은고추가 맵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즉 무겁고 커보았자 그 움직임이 둔중하면 가볍고 작은것을 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가볍고 작은 나라이다. 남들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면
우리도 충분히 생존할수가 있다.
 
전국민이 한뜻으로 일치단결하여 확실한 목표를 향하여 민첩하게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04시 31분 03초
제 목(Title): Re: 칭기즈칸의 전술과 우리의 나아갈 방향
 
 
 
몽고군의 기병술은 흉노족(훈족)으로부터 계승된 겁니다.
 
훈족도 유럽에서 엄청 설치고 다녔으나 알렉산더 에게
 
걸려서 걸레가 되어버렸죠..
 
알렉산더 같은 놈이 나타나 우리 나라 집어삼키려면 어떻해...
 
 
사실 몽고의 기병술에 비유할 수 있는 나라가 홍콩이랑
 
싱가폴인데 잘 살고 있긴 하지만 별 힘이 없는 나라들...
 
 
사실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적긴하지만 경제규모나 국제영향력으로        
 
볼 때 기마민족처럼 기민하게 움직힐 덩치가 아닌 거 같네요..
 
일단은 거품 빼고 덩치를 줄여야....
                                              


[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04시 44분 17초
제 목(Title): Re: 칭기즈칸의 전술과 우리의 나아갈 방
 
 
알렉산더 전술의 특징은 밀집대형의 중장보병과 연계되어 움직이는
기병대의 활용이었습니다.
당시의 밀집대형 중장보병이란 말 그대로 수천명의 병졸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채
스크럼을 짜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것이었지요. 즉 병졸들간의 단결이 최고였습니다.
한명이 겁을 집어먹고 이탈해버리면 금세 붕괴되어 버리고 말죠.
그들은 4-5미터가 넘는 창을 주무기로 썼는데 빽빽히 들어선 창의 숲은 기병으로도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활이나 투석기를 이용한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지요. 이동속도가 매우 더디므로. 그래서 알렉산더는 기병대를
증강시켜 적의 미사일무기를 제압하고 중장보병이 제 역량을 발휘할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밀집대형의 전투방식은 위력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매우 단순한 것이어서
무조건 돌격하여 창을 앞으로 내지르는 것이었죠. 어깨를 맞대고 있으니
개인기 발휘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대신 이것의 큰 약점중 하나가 앞줄의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
뒷줄의 병사들의 전의를 상실한채 전열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신병들을 앞에 배치하고 전투경험이 많아 깡다구가 쎈
노병들을 뒤에 배치하였지요.
 
결론적으로 민첩함과 함께 단결이 최고입니다.
 
여담: 그리스시대의 중장보병을 계승, 발전시킨것은 로마였다.
      로마식 중장보병의 특징은 글라디우스라고 불리우는 짧은 칼을 주무기로
      한다는 것인데, 검투사, 즉 글라디에이터라는 말은 이 글라디우스에서
      유래한다. 장창을 이용한 단순한 공격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이 휘두를수 있는
      소도는 밀집대형의 전장에서 좀더 유연한 활용이 가능했다.
      적의 창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만 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것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로마군인의 그림을 보면 허리에 소도를 차고 긴창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창은 투창으로서 던지는 무기였다.
      로마투창은 날부분이 매우 가늘고 길다. 한번 던저진 창은 특유의 길고
      얇은 날 덕분에 땅에 떨어지거나 적의 몸에 맞았을 경우 날이 휘거나
      부러져 버린다. 적중당한 자에겐 큰 상처를 주며 빗맞았더라도
      날이 휘고 부러져서 적이 그것을 주워 되던질수가 없게 되어 있다.
      창날이 몸에 박힌채 휘거나 부러졌을 경우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에 더하여 로마군과의 전투가 끝난 후의 전장을 보면 글라디우스의
      특징으로 인하여 길게 찢어진 상처가 난 시체가 즐비하며 전장은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된다.
      창위주의 전투가 벌어졌던 당시로선 대단한 심리적 충격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몸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 시체만 보던 사람들이었기에 칼에 맞아
      피가 낭자하고 내장이 튀어나온 시체를 보면 로마군의 잔혹함에
      사지를 벌벌 떨었다고 한다.
 
 
우리모두 일치단결하여 우리만의 생존전략을 기르자. 


[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06시 08분 12초
제 목(Title): Re: 칭기즈칸의 전술과 우리의 나아갈 방
 
 
이 글라디우스라는 짧은 양날검은 고대의 삼대 명장에 꼭 들어가는 스키피오에의해
처음 로마군에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밀집대형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변도의 공격
방식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배후전개 - 포위섬멸"이라는 기동전으로 격파하자 그
한 방편으로 나타난 로마군의 기동력과 전투력 향상 시도의 일환이었죠.
 
로마군의 주력은 정면에 3열 횡대로 편성되는 중장갑보병과 이들의 양익에서 적의
기병을 상대하는 기병전력이었습니다. 당시 기병이라함은 단지 말위에 올라타서 순
전히 자신의 다리 힘만으로 말위에 메달리며 전투에 임해야 했으므로, 등자라는 신
도구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중무장 보병에 정면으로 상대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투는 자연히 중무장 보병끼리의 전투가 주가 되었고, 로마군이 보유한
3열 횡대의 연이은 공격과 로마 군인들 특유의 용맹성, 스태미너등은 이탈리아반도
와 스페인의 원주민들을 제압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런 로마에 건국후
최대의 위기였던 기간이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이었습니
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알렉산더가 동방을 제패할수 있었던 핵심은 그 막강한    
중무장 보병보다는 기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포위 기동전에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이를 위해 지중해의 기병국가로 유명한 누미디아 기병대를 항상 중요한
전력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과 맞섰을때, 이 한니발의 포위 섬멸전은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알프스를 넘어선 한니발이 티치노와 트레비아, 트라시메노등에서 로마
군을 도륙하며 연전연승하자 .. 로마는 연합 세력들의 이탈을 두려워하며, 당시로
서 가능한 최대한의 전력을 끌어모아 승부수를 띄웁니다. 제4차 칸나에 회전이죠.
 
로마군의 전력은 보명 8만, 기병 7천. 한니발은 보병 4만, 기병 1만의 전력이었습
니다. 한니발은 로마군에 비해 보병 전력은 거의 반정도밖에 안되지만, 기병에서
만큼은 분명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로마의 총사령관 바로는
주력인 중부장 보병을 횡으로 길게가 아니라, 종심으로 두껍게 배치함으로서써 중
앙 돌파후 적 섬멸이라는 작전을 세웁니다. 물론, 양익에 배치한 로마의 기병대가
중앙돌파가 이루어 질때까지 잘 버텨주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한니발은 로마의 중무장 보병을 맞아 싸우는 갈리아 보병들의 진형을 반원
형으로 바꿉니다. 갈리아 보병들은 중무장 보병의 강력한 공격에 잘 견디긴 했지
만 얼마 안있어 밀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양익에서 시작된 로마군 기병과 한니발 기병과의 전투는 한니발쪽이 약간
우세를 보인 상태에서 로마군이 약간 밀리는 형태지만, 대세에 크게 영향을 끼치
지는 못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보병끼리의 전투에서는 갈리아
보병이 눈에 띄게 격파되기 시작하면서 방어를 포기하고, 좌우로 나뉘어서 전선     
을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한니발의 중무장 보병과 로마 중무장 보병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2만에 불과한 한니발의 중무장 보병은 7만에 달하는 로마군
의 맹고을 잘 견뎌냈습니다.
 
보병끼리의 전투에서 이렇게 한니발이 조금씩 밀리면서 잘 버티고 있는 반면,
기병끼리의 전투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로마기병대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익 기병대는 계속 밀리다가 배후에 강을 등진 상태에서 결국 적
에게 포위 섬멸 당했고, 좌익 기병대 역시 계속 밀렸지만 강등의 장애물은 없
는 관계로 전선과는 상관없는 먼 지역까지 쫓겨가고 맙니다.
 
여기서, 한니발은 승부수를 띄웁니다. 2만의 중무장 보병이 7만의 로마 보병을
붙잡아 둔 사이, 좌우로 갈렸던 갈리아 보병대는 재편성 되어 로마 보병의 좌
우를 협공하고, 적의 기병대를 제거한 한니발의 기병대는 로마 보병대의 배후를
포위해 들어오게 한것입니다. 로마 보병 7만은 한니발의 5만 병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했고 철저하게 포외섬멸당합니다. 로마군 진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만이
채안되었던 반면, 한니발 진영에서 전사자는 5천 500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아
로마군이 얼마나 철저하게 도륙당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런, 한니발의 기병을 활용한 기동-포위전은 이후 로마군의 젊은 장군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10년우 등장한 젊은 천재 스키피오는 이를 완전히 터득하고
한단계 발전 시켰으며, 북아프리카 자마에서 벌어진 자마 회전에서는 그의 스승
이라고 할수 있는 한니발을 대패시키는 장본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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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le L2 mSwap [si+bx-2],[si+bx] L2: loop L1   pop cx loop L0 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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