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xena (warrioress) 날 짜 (Date): 1998년 12월 13일 일요일 오후 12시 22분 48초 제 목(Title): Re: [질문] 조선시대 군부대. 국사 시간에 가르치는 얘기인데...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오늘날의 군제도 비슷하게 복무를 해야 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자가 군역 대상이 되었고, 일정 기간 복무를 해야 했으며 복무 기간을 채우고 나면 민간인의 신분으로도 보인이 되어 조포를 바쳐야 했습니다. 즉, 복무의 군역이 세금의 군역으로 바뀌게 되는거죠. (그래서 군역 해당 나이가 터무니 없이 보일 정도로 길죠) 보인이란 것은 2명의 민간인이 1명의 현역 군인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보면 되죠. 이건 일반 백성의 이야기이고... 귀족 자제들이나 무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자들은 따로 군편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귀족 자제들은 왕의 친위대나..그런 대우가 좋은 쪽으로 주로 들어가게 되고 무술가들은 갑사라고 부르는 전투력이 강한 부대로 들어가게 되어 비교적 높은 녹봉을 받는 직업 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갑사는 주로 북방 국경 지대와 수도 근처에 배치되었고... 군대의 배치는 크게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되어 있었고 지방군은 모두 일반 백성으로 구성, 수군과 육군이 잇었으며 각 도마다 두세개의 군영을 설치하여 군사의 훈련, 관리를 했고(군영의 명칭은 자주 바뀌어서 기억 안납니다) 중앙에서 훈련관이 파견되어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노비는 인간취급을 못받았으므로 군역의 의무 역시 없었으나 보통의 경우 그냥 잡군으로 편성되어 머릿수를 채웠던것 같구요... 그런데 군제도가 시기에 따라 많은 변동이 있었죠. 위의 시스템은 국력이 왕성하던 초기의 시스템이고, 국가가 안정되면서 병역법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군비도 아낄겸 해서 군단위를 자잘하게 나누어 소규모의 부대를 분산 배치하여 생업에 종사하면서 군복무를 하는...(그러고 보니 방위같군요) 그래서 치안 유지라던가, 소규모의 분란에 대처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임진왜란과 같은 대규모 외침에는 매우 불합리한 구조였죠. 더군다나 조선 초기 이후에는 병역법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다가 재정의 불안정한 관리(착복 등등)로 인해 군사력이 매우 약화되었고... 기병의 경우 고구려 기병이 유명했다고는 합니다만 활동 영역이 틀린데다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 조선 기병과 비교할 대상은 못될것 같구요... 궂이 고려시대와 비교를 하자면, 고려때는 거란이니 몽고니 해서 북방민족들의 외침이 잦았지요. 전쟁이 잦기도 하지만 그 기간이 장난이 아니게 길었기 때문에 항상 일정 수준의 군사력 유지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고, 북방민족들의 특성이 일단 기병을 이용한 기동전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추기 위해 기병이 전문적으로 육성되고 유지되었죠. 그에 비해 조선으로 넘어오게 되면서부터 기병은 그냥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던것 같습니다. 사병제도가 완전 폐지되면서 재정 문제로 인한 이유도 있을테고, 무었보다도 조선 초기의 태평성대가 기병같은 유지비 많이 드는 군대의 숫적 감소를 가져왔겠죠. 당연히 그 수준도 떨어졌을 것이고... 어디선가 본 기록인데 기병과 같이 장비가 많이 필요한 군대의 경우 개인이 그 장비를 부담했던것 같습니다.(갑옷 등등) 그런데 군사의 녹봉도 많지 않고, 무를 천시하는 사회풍토가 소위 군바리들에 대한 대우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대부분의 기병들이 장비구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제생각엔 고려 시대 이후로는 한국 역사에서 기병을 얘기하는게 큰 의미가 없을것 같습니다만... 이쪽으로 관심은 있지만 별 관여는 없어서 더는 모르겠습니다. /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