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白首狂夫) 날 짜 (Date): 1998년 10월 30일 금요일 오후 03시 45분 59초 제 목(Title): 공수작전의 역사 The History of Airborne 공수 작전의 역사 처음으로 공수작전 - 다시 말해 병력을 하늘을 통해 적진까지 실어나른다는 착상을 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어느 나라인지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번쯤 '하늘알 날으는 군대<를 상상했던 몽상가는 많았지만,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군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의외로 구체적이었다. 그 당시 막 등장한 열기구에다 병사들을 태우고 영불 해협을 건너면 막강한 영국함대와 맞다뜨리는 일 없이 영국을 공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인데, 매우 창의성 넘치고 의욕적이었던 이 계획은 결국 실천되지 못했다. 기껏해야 4~5명 타는 것이 고작인 이 시대는 기구로 대규모 병력을 바다건너까지 보내자면 최소한 수천개의 기구가 필요했고, 여기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비단을 이 시대의 공업능력으로 조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설령 기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 까다로운 물건을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어디서 구하는가(당시 프랑스에 기구 조종사는 4~5명 뿐이었다)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그 후 20세기에 접어들어 비행기와 낙하산이 등장하면서 나폴레옹 시대에 제기된 이 '날으는 군대'의 아이디어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18년 10월, 막강한 독일군의 '베르덩' 방어선을 뚫기 위해 애를 태우던 미군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공수작전의 아이디어가 제기 되었다. 미 공군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던 '미첼'대령은 폭격기로 수천명의 병력을 독일군 후방에 낙하시켜 적을 공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이때부터 이미 공수작전의 기본원리는 확실히 잡혀 있었다. - 즉, 비행기로 적진 후방에 군대를, 그것도 낙하산으로 내려놓아 적의 뒤통수를 후려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이 제대로 수행되자면 당시 영국과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폭격기를 동원해야 할 지경이었고, 결국 당시 최고사령관인 '퍼싱' 원수에 의해 이 야심적인 계획은 취소되고 만다. 하지만 미첼의 구상은 분명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쳤고, 특히 비행기와 낙하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1920년대에 들어서자 여러나라에서 이 아이디어는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최초로 공수부대를 편성한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1928년에 창설된 이탈리아군의 공수부대는 비록 1개 중대의 소규모였지만 분명히 세계 최초의 공수부대였다. 하지만 낙하산을 제외하면 이들의 장비나 전술등은 기본적으로 1930년대까지도 일반 보병의 그거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에 반해 처음으로 대규모 공수부대를 편성했을 분 아니라 대부대를 통째로 공중에서 낙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나라는 바로 소련이다. 1928년부터 공수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한 소련은 대규모 부대를 한꺼번에 낙하시켜 적진 후방을 교란하는 연구를 거듭했고, 마침내 1933년에는 1개 대대를 한꺼번에 낙하시키는데 성공했다. 원래 소련은 다른 나라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데다 해안선이 짧은 내륙국가이기 때문에 배로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항구가 한정되어 이었고, 이 때문에 일찍부터 대규모 병력을 비행기로 신속하게 투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연구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1934년, 각국 대사관의 무관들을 초청한 가운데 소련은 우크라이나에서 역사적인 첫 공수작전 시범을 실시했는데, 여기서 1개 연대(실제로는 약 1,500명)가 한꺼번에 성공적으로 낙하했다. 이 훈련의 시범을 참관한 미국과 영국군은 "보기에는 멋있지만 전차나 차량등의 중장비를 운반 할 수 없으니 별 실용성은 없겠다"는 신통찮은 반응을 보였고, 프랑스가 여기에 약간의 자극을 받아 38년쯤에 두개의 공수중대를 창설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우크라이나 공수작전 시범을 목격한 독일의 반응은 정 반대였다. 독일운 공수부대를 당시 연구되고 있던 전격전과 함께 혼합하여 구사한다면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리라고 생각하고, 특히 적을 혼란시키고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판단하여 공수작전에 관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1938년, '쿠르트 시투덴트'장군을 사령관으로 제7항공사단 안에 공수연대가 창설되면서 공수작전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천부적인 공수부대 지휘관이었던 시투덴트는 효율적인 공수작전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이 과정에서 글라이더를 이용한 병력 운반이라든가 항공기의 연계작전 등에 대한 기본적인 골격이 완성되었다. 독일 공수부대에게 있어 또 하나의 행운은 바로 히틀러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었다는 점이다. 영국과 미국의 선구적인 공수부대 옹호론자들이 2차대전 초반까지 보수적인 군 지도부의 반대로 제 뜻을 펴지 못한데 반해, 독일 공수부대는 히틀러의 특별 지시에 의해 이런 반대를 물리치고 순로좁게 발전해 나갈 수 있었고, 그 결과 독일은 세계 최초의 실전 공수작전을 성공시킨 나라라는 영광과 서부전선의 승리를 함께 움켜쥘 수 있었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