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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8년 10월  8일 목요일 오전 06시 34분 06초
제 목(Title): [답변] 상륙 당시 오마하 해변의 정황.


 안녕하세요, KAIST 에 다니는 채승병이라고 합니다. ;^)

 앞에서 어떤 게스트분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오마하 해변의
 정황이 왜 그따위였는가...라고 질문을 해주셨는데, 'bloody Omaha'
 라고 할 정도로 유독 오마하 해변에서 상륙이 지지부진하고  연합군
 측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몇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다
 음과 같은 정도가 되겠군요.
 
 1. 예기치 않은 제 352 보병사단의 출현...
 
 오마하 해변을 담당한 독일군 방어병력은 제 352 보병사단 이었습니
 다. 이 사단은 Wehrkreis(군관구).XI 지구 하노버에서 1943년 11~12
 월 경의 제 21차 전력증강 당시에 편성된 보병사단이죠. 그런데  이
 사단은 신병만으로 편성된 사단이 아니라 이미 동부전선 중부집단군
 (Heeresgruppe Mitte)소속으로 혹독한 전투를 치루고 거의 소모당한
 제 321 보병사단을 근간으로, 제 356, 389 보병사단의 잔존병력들을
 긁어모아 편성한 사단이었습니다. 그런만큼 구성 인원들은 전투경험
 들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지요.
 
 이 제 352 보병사단은 원래 후방의 생 로 지구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1944년 5월 무렵에 롬멜이 노르망디 해안 일대의 방어 강화를  위해   
 1944년 5월 무렵에 롬멜이 노르망디 해안 일대의 방어 강화를  위해
 기존에 제 716 보병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이 오마하 해안  방면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 Colleville 에서 Vierville에 이르는 해안
 에 병력을 배치할때 연합군의 정보망을 속이기 위하여 교묘하게  기
 존의 제 716 보병사단 예하 제 726 보병연대(Gren.Rgt.726)소속 2개
 보병대대를 잔류시킨채 제 352 보병사단 병력을 끼워넣어서 이 지구
 를 담당하던 레지스탕스 첩보조직이 제 352 보병사단 병력의 이동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5월 말이 되어서야 프랑스내 첩보조직들이 이 이동 상황을
 감지해내고 급히 전문을 보내게 되죠. 이때 보통 프랑스내 첩보조직
 들은 무선통신은 감청당할 확률이 있기에 전서구(연락비둘기)를  꽤
 활용했는데, 이 전서구들이 해협을 건너기 전에 독일군에게 맞아 떨
 어졌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독일군은 전서구 활용을 알았기에
 보는 족족 쏴서 떨어뜨렸죠.)
 
 그래서 상륙 당시 이쪽을 담당하던 미군 제 1 군 사령관인 브래들리
 장군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기록에서는 몽고
 메리가 제 352 보병사단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미군쪽에 정보가 넘어가지 않았다고도 하고요. 여하튼간에 전체적으
 로 허술했던 해안 방어망과는 달리 전투력이 상당하던 이 사단의 존
 재를 전혀 예고받지 못한채 미군 제 1 보병사단 예하부대와 제 29보
 병사단의 제 116 보병연대가 오마하 해변으로 상륙작전을 벌이게 됩
 니다.
 
 (그래도... 제 352 보병사단이 개중에 나은 형편이긴 했어도 전체적
  사단전투병력이 약 6000 명 수준으로, 완편에는 한참 뒤떨어진  부    
  대였다는걸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 연합군의 사전 방어망 무력화 실패
 
 연합군측은 이미 상륙 전날 밤부터 대대적인 항공작전에 들어가  전
 선 후방 곳곳의 독일군 거점을 때려대고 주요 하천의 교량과 도로의
 교차점을 폭격하여 독일군의 집결을 방어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카
 렝탕 일대와 캉 북쪽에서는 대규모 공정작전을 감행하였고요.  이런
 후방에서의 작전을 포함하여 바다 위에서는 대규모의 해군 함정들이
 무시무시한 화력을 상륙이 임박하면서부터 해안가에 퍼부어댔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실책들이 이러하게 잘 계획된 해안 거점의 무력화 방
 안들을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왜 연합군은 공중지원을  안했냐
 라고 많이 투덜대시지만, 사실 상륙 직전 새벽녘에 이 오마하  해안
 지구에는 총 329대의 B-24 폭격기가 출격하여 대규모 폭격을 가하기
 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이정도면 1000톤 가까운 폭탄을 퍼부어 댈
 수 있는 규모였죠.
 
 원래는 날씨가 양호하다면 직접 항공대의 선도기가 육안으로 조준하
 여 폭격을 유도해야 했으나 상륙 당일은 날씨가 몹시 좋지 않은고로
 구름도 낮게 끼여서 폭격기들은 고고도에서 무선유도에 의지한채 구
 름 아래의 표적을 향해 폭탄을 투하해야 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하
 에서 제 8 항공군 사령부는 그럭저럭 오마하 해안 위치에 대한 초단
 위의 정확한 폭격 데이터를 산정하여 작전에 돌입했지만, 막상 폭격
 순간에 이르러 제 8 항공군 사령부 쪽에서는 큰 실수를 범합니다.    
 
 아무래도 무선유도폭격의 신뢰성이 의심되던 제 8 항공군  사령부로
 서는 해안 거점을 향한 폭격이 자칫하면 해안과 비교적 가까이 있는
 상륙부대들 쪽으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고의로 마지막 순간에  폭
 탄의 릴리즈 타이밍을 수초간 늦춥니다. 그 결과 해안과는 떨어져서
 상륙부대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었으나 해안에 바싹붙은 독일군  거
 점들은 의외로 별 피해를 입지않고 온전히 살아남았습니다.  특히나
 오마하 해안 지구 후방의 제 352 포병연대가 거의 아무런 피해를 입
 지 않고 살아남는 바람에 참극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3. 연합군의 상륙지원 체계의 혼란
 
 그다음으로 지적할만한게 작전 개시 직전과 그 이후의 효율적인  상
 륙부대 지원 문제였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독일군의 포병이  상당한
 화력을 유지한채 남아있게되자 상륙 주정들이 접근하는 시점에 격렬
 한 탄막을 펼칠수 있었습니다. 멀쩡히 해안에서 포병연대의  관측반
 들이 포격을 유도하면서 (국내 상영분에서는 짤린듯 하지만) 상륙주
 정들에 직격탄이 맞기도 하고 극도의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강력한 위력의 함포지원사격이 기묘하게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기존 전함, 순양함등
 의 대구경 함포들과 대량의 로켓탄을 장비한 화력 지원함의 로켓 세
 례 등이 주 지원화력이었는데, 독일군의 탄막 때문에 시야가 가려서
 대구경 함포들은 제 사격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먼 후방으로  포탄
 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로켓 화력 지원함들은 포격을피해       
 안전거리를 확보하다보니 충분히 사정거리 내에 접근시키지  못하고
 장거리에서 섣부르게 로켓을 날려서 거꾸로 해안에 상륙하는 연합군
 쪽에 로켓탄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초반 화력지원이 엉망이 되는 바람에 날씨도 안좋은  상황에
 닥쳐 꽤 많은 상륙부대들이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분
 산되어 상륙하는 바람에 피해는 더욱 커져서 상륙 개시 약 2 시간만
 인 08시 30분 경에 상륙이 일시 중단되고 이미 상륙한 병사들이  홀
 로 난국을 타개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원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수륙양용으로 개조한 M-4 셔먼전차 29
 대를 제 116 보병연대와 상륙시킬 예정이었으나 격렬히 오고가는 포
 화 속에서 29대 중에 태반이 수장되고 2대만 상륙하는 불운이  계속
 된 오마하 해안이었죠.
 
 그후 영화에서야 해안 병력들만이 영웅적인 노력으로 해안 단애들을
 기어 올라가 전선에 구멍을 뚫습니다만... 실제는 이 난국을 타개하
 기 위하여 연합군 화력지원 함정들이 직사거리 까지도 접근하여  독
 일군의 탄막을 무릅쓰고 방어거점에 직격을 날리고까지 한 끝에  이
 날 정오에서 약 오후 1시 무렵에 이르러서야 몇몇 지점에서  해안의
 방어선을 돌파, 후방으로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야 30분 정
 도에 일이 끝나지만... 상륙부대 1파로부터 돌파까지는 6시간  이상
 걸린 긴 시간이었습니다.
 
 대략 이날 오마하 해안에서 2500명 정도의 사상자가 났다고 하며 방
 어측이던 독일군 제 352 보병사단도 1200~1500명 수준의 사상자들을    
 기록하여 사단 전투력이 사실상 와해되고야 맙니다.
 
 그러나 사실 이후로도 노르망디 전투는 약 80여일을 더 끌고 그동안
 숱한 전설을 남깁니다...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P.S. : 연합군 쪽은 88mm Flak, Pak, KwK 에 너무 많은 히스테리 반
        응을 보인 관계로 많은 분이 걸핏하면 독일군 포의 대명사로
        88mm를 언급하시는데... 실제 오마하 해안에 88mm 포는 전무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 352 포병연대 1대대가 장비한  포
        는 기껏해야 105mm 짜리 leFH(leichte Feldhaubitze. 경유탄
        포)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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