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9월 28일 월요일 오전 10시 35분 04초 제 목(Title): 마켓가든 작전 (12) 증원군 증원군 이날 낮 오후 2시경. 악천후로 인해 예정시각보다 늦어버린 후속부대가 다시 영국으로부터 공수 되어 오기 시작했다. 이날 공수작전의 규모는 더욱 웅장해서 전날의 일대 장관을 무색하게 했지만, 원래 공수작전이란 이름 그대로 적 후방에 대한 불시의 기습을 달성했을 때 그 존재가치가 있는 법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증원부대는 이미 아른헴 대교와 시내를 장악한 선발부대를 원호하여 그 점령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다. 이들은 착지하자마자 곧장 치열한 아른헴의 시가전에 말려들어 버렸다. 새로 투입된 '사우스 스태포드셔'대대와 제11대대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다리 북단을 사수하고 있는 프로스트 중령의 제2대대와 합류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이미 독일전차에 의해 철통 같은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아른헴 시가는 온통 난장판이었다. 수백채의 페허들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도 없는 시체들이 가랑잎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이 지옥과도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사우스스태포드셔 대대의 병사들은 평생 잊어버릴 수 없는 장엄한 광경을 목격했다. 부녀자와 어린이들까지 모두 떨지고 나온 아른헴의 주민들이 포석 위에 홍건하게 고인 피에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시체를 쌓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밤 사이에 영국군과 독일군의 시체를 가리지 않고 쌓아올린 이런 '시체 바리케이드'도 독일 전차들이 다리목의 프로스트 대대를 향해 접근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시내를 빠져나와 다리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한 제1대대와 3대대의 일부 병사들과 더불어 프로스트 대대는 아직도 아른헴 북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럼 이 시간,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제30군단의 '가든' 전차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예정보다 정확히 24시간이 초과한 18일 오후에야 아인트호펜에 입성한 전차들은 네덜란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북진을 계속했지만, 도시 북쪽의 '쏘온'강변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한번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이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하나뿐인 다리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던 것이다. 그 전날 이 지역에 강하한 미군 제101공수사단은 독일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주요 간선도로와 교량들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쏘온강의 다리는 실로 간발의 차이로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어 버렸던 것이다. 101사단의 테일러 사단장은 전차대가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이 다리를 복구 시켜 보려고 애를 썼지만 공병대가 아닌 공수부대가 전차를 통과시킬 만큼 큰 다리를 놓을 재주가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중장비를 갖춘 30군단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황급히 '베일리'식 가교를 후방으로부터 추진시켜 오고, 북새통을 떠는 동안 또 하룻밤이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다. 9월 19일 아침.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채 전투를 계속해 온 프로스트 대대의 장병들은 탄약과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다리 북쪽에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밝아오는 새벽 여명 속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리 건너편 남쪽 강둑에 주욱 늘어선 독일군의 전차들이었다. '하인츠 하르멜' 소장이 이끄는 독일 제10SS 기갑사단의 그 전차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싸워본 장갑차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기에는 일렀다. 뭔가 사정이 생겨 조금 늦어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곧 독일군의 등 뒤에서 아군 전차들이 모습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명의 독일군이 백기를 들고 다리를 건너왔다. 프로스트 대대장의 지휘소로 쓰이고 있는 민가 근처까지 다가온 그 병사가 서툰 영어로 소리쳤다. "당신들은 완전히 고립되었소! 모두 항복하시오!" 프로스트 중령이 창가에 모습을 나타냈다. "방금 그 말, 내가 자네 지휘관에게 해주고 싶다고 전하게." 전형적인 프로이센 장교의 풍모를 갖춘 하르멜 소장의 기사도는 그걸로 충분했다. "포수, 잘 들어라. 영국군이 버티고 있는 다리 북단의 민가를 한채도 남기지 않고 박살내 버리기로 한다. 지붕 꼭대기부터 아래쪽으로 1m씩 이동하여 차근차근 조준사격을 가한다. 한채도 남김 없이 벽돌더미로 만드는 거다. 알겠나?" 포격은 냉정하고 무자비했다. '판터' 전차의 75mm 전차포에 직격 당한 건물의 한쪽 벽면이 칼로 잘라낸 듯 깨끗이 무너져 내리자, 흡사 개미집을 드쑤셔 놓은 듯 그 속에 숨어 있던 영국군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 다리 건너편의 독일군 진지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그것은 이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일방적인 포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테스트 하는 것에 불과했다. 제10SS 기갑사단의 전차 운전병 '호르스트 베버'일병은 하는 일 없이 아군 전차포수들의 정확한 사격 솜씨를 구경하고 있었다. 건물들이 문자 그대로 아이스크림 처럼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고, 베버는 그 속에 있는 영국군들이 참 안됐다고 생각했다. 이런 포격이 하루종일 계속되었지만, 전차를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돌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다리위에는 전날 공격에서 파괴된 독일장갑차와 시체더미, 각종 쓰레기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어 전차의 통행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프로스트 중령은 종말이 눈앞으로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증원부대들은 독일군의 저지선을 뚫지 못했고, 간절히 기다리던 아군 전차대가 나타나 줄 것이라는 최후의 희망도 사라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탄약은 동이 났고, 사상자의 숫자도 엄청나서 건물의 지하실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부상병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항복만은 할 수 없었다. 이미 50시간 이상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전투를 계속해온 대원들은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지만, 부상병들로부터 회수한 한 줌도 안되는 실탄을 분배하며 최후의 일전에 대비했다. 건물 옥상에서 무전병 '스탠리' 일병이 이제는 숫제 암호 송신조차 포기해 버리고 평문으로 악을 쓰듯 30군단과 사단 사령부를 번갈아 호출하고 있었다. "여기는 아른헴. '가든'나와라! 30군단 나와라!" "... ...." "여기는 프로스트 대대, 사단본부 응답하라, 사단본부..." 통신병의 목소리에는 점차 울음이 배어나왔지만 무전기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른헴 교외의 제1공수사단 지휘소에서 작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이틀동안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던 사단장 '어카트' 소장이 돌아온 것이다. 몸소 전선 시찰을 나갔던 그는 순식간에 아른헴의 시가전 한복판에 휩쓸려 버렸고, 무전기가 탑재된 지프가 박격포탄에 피격되는 바람에 연락마저 두절되었던 것이다. 지난 40여 시간동안 그는 아른헴 일대에서 토끼처럼 쫓겨다니며 죽어가는 부하들의 참상을 목격했고, 전투중에 만난 제1강하여단장 '라스베리'준장이 자신의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온통 독일군이 뒤덮힌 아른헴 시내를 단신으로 헤메고 다니던 그는 어느 민가의 다락방에 숨어서 하룻밤을 지샌 후, 이날 새벽에 그곳에서 탈출하여 가까스로 사단 지휘소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장군이 핏자국과 검댕이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달라 붙은 상황판에는 이미 절망적인 파국의 지표들이 뚜렷히 나타나 있었다. 도대체 일정한 전선이란 게 없었다. 적 출현을 나타내는 붉은 화살표가 지도를 온통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고립된 영국군 소부대가 드문드문 끼어 있었다. 어제 18일과 오늘 아침에 예정대로 추가장비와 식량, 그리고 탄약이 낙하산으로 투하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으로 떨어져 버려 회수율이 10%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그것을 시내 여기저기에 고립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분배해 줄 방법도 없었다. 간신히 통신이 연결된 몇개 대대의 보고에 의하면 병력의 손실이 엄청날 뿐 아니라,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전사해 버려 그의 사단은 문자 그대로 괴멸 직전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프로스트 중령의 제2대대가 아직도 다리를 사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일하게 희망을 걸어 볼만 했지만, 그곳의 병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사단 지휘소가 위치한 숲 근처에도 독일군의 전차가 출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이날 밤, 그는 아른헴 시내에서 산발적인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휘하 부대에 약 6km 서쪽의 '오스터르베크'읍까지 철수할 것을 명령하고 사단 본부도 그곳으로 옮겼다. 20일 새벽, 아른헴 시내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부사단장 '존 헤켓' 준장은 아른헴 대교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아직도 다리를 지키고 있는 제2대대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철수하라는 뜻이다. 참으로 괴로운 결정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불과 3~4km 밖에 있는 그 다리가 흡사 베를린 만큼이나 멀게 느껴졌고, 헤켓 장군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프로스트, 정말 미안하네. 용서해 주게..." 사방에서 독일군이 조여 오고 있었다. 전투의 무대는 사단 지휘소가 설치된 '하르덴슈타인' 호텔이 있는 오스터르베크 일대로 압축되었고, 다리를 지키고 있는 프로스트 중령의 제2대대는 철수할 길조차 없이 완전히 고립되었다. 아침 8시경, 사흘만에 처음으로 제2대대와 통신이 연결되었다. 찍찍거리는 잡음 속에서 어카트 장군은 아직도 프로스트 중령의 목소리가 풀이 죽지 않았음을 알았다. "탄약이 떨어진게 문제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원병력은 언제 보내주시는 겁니까?" 사단장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간신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리로 갈 수 없으니, 자네들이 이리로 올 수는 없겠나?" 무전기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프로스트 중령이 말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어카트 사단장이 이렇게 교신을 매듭지었다. "흘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모든 대대원들에게 나의 치하를 전해주게, 자네들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교신을 끝낸 장군은 고개를 들어 촛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정말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To be continued...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