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8월 31일 월요일 오전 10시 35분 26초 제 목(Title): 한국전쟁 초기 항공전 (6) 삶과 죽음 삶과 죽음 28일에는 마침내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했다. 상황은 그야말로 비관적이었다. 폭탄은 완전히 소진되었고, 남은 전력도 조종사와 기체보존을 위해 김포와 여의도 기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도 서울을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오자 비행단은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고, 이를 위해 공군수송대가 보유하고 있던 전차량(트럭 16대가 고작이었지만)을 동원해 항공기 연료를 대구, 수원, 대전 등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29일, 일본에서 한국의 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맥아더가 자신의 전용기 바탄호(Batan)를 타고 날아왔다. 그가 수원에 내려 앉은지 한시간도 채 안되서 네대의 Yak-9이 머리 위에 나타나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 기체는 화들짝 놀란 미군 조종사들에 의해 곧 격추되고 말았지만, 맥아더는 자신의 코앞에서 벌어진 이 전투가 기분 좋았을 리 없다. (이날의 전투에 관해서는 자료마다 약간의 기록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발행된 자료에는 야크기들을 격추시킨 것이 한국공군에 인도하기 위해 도착해 있던 10대의 무스탕을 미군 조종사들이 몰고 전투를 한 것이라고 나와 있지만, 국내 기록에서는 맥아더의 기체를 호위하던 네대의 미군 무스탕이 일구어낸 전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된 전투기들은 7월 2일 한국공군 조종사들이 직접 몰고 왔다는 확실한 기록이 있으므로 우리쪽의 기록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맥아더로서는 뜨끔했겠지만, 그가 수원에서 본 것은 머리 위에서 펼쳐진 '개싸움'(Dog fihgt:공중전)과 피격으로 인해 아직도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장작개비처럼 타고 있는 C-54 수송기, 기관총 공격을 받아 군데군데 탄공이 남아있는 건물과 활주로였다. 30일은 한국공군 조종사들에게 최악으 날로 기억된다. 노량진을 지나 한강주변을 정찰하던 L-5가 대공포에 의해 피격되어 두 조종사가 애기와 함께 산화했고, 오후에도 앵산지역을 정찰하던 L-4 한대가 똑같은 과정으로 떨어졌다. 전투능력이 전혀 없는 연락기로 단독 비행하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목숨을 담보로 잡힌채 치였한 혈투를 계속하던 공군의 숨통이 트인 것은 7월 2일이었다. 일본에 위치한 미 극동군 사령부로 무스탕을 인수하러 갔던 일행이 태극 마크도 선명한 무스탕 10대를 몰고 대구 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비록 기관총 외에는 변변한 무이 없었고 국적마크도 미군의 표식 위에다 급히 덧그린 것이었지만, 처음으로 전투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25일 새벽부터 일주일 동안을 잠한숨 자지 못한채 맨주먹만으로 싸운 조종사들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폭탄과 로켓탄을 보급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무기라고는 기관총 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촌각을 다투는 조종사들은 바로 다음날 부터 출격을 감행했다. 훗ㅅ날 미 공군도 경탄해 마지 않는 '멧돼지들의 신화'가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