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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8월 27일 목요일 오후 03시 54분 03초
제 목(Title): 한국전쟁 초기 항공전 (3) 통한의 24시간


통한의 24시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그날따라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38선은 한순간에 뚫려 버렸다.
잘 아는대로 당시 국군에는 철조망을 짓뭉개며 달려오는 전차를 저지할 수단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병력은 주말을 맞아 외출이나 휴가를 나가고 없었다.
아무리 용맹하고 사기가 높은 군대라 할지라도 소총 한자루를 든 보병이 전차와 
맞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개발되어 지루한 참호전을 끝장내 버린 최초의 
전차 MK-1이 등장한 이래 전차가 본연의 효용을 가장 잘 발휘한 순간이 바로 이 
한국전쟁의 개전기일 것이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서울을 향해 진격했는데, 바로 여기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개전 초기 북한공군의 움직임이다.
그들은 전쟁직전 평양에 사령부를 두고 주교리 비행장에 Yak기 80대, 신막기지에도 
20대, 원산에 IL-10 60대, 평강에 20대, 연포에 20대씩을 각각 배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런 압도적인 전력을 포진시켜 놓고도 현대전에서라면 응당 
지상군의 돌진 이전에 이미 감행해야할 항공기를 이용한 선제공격과 거점폭격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전투기라고는 단 한대도 없는 남한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일까?
만일 그들이 출격했다면 불과 24대의 연습기가 배치되어 있을 뿐인 여의도 
비행장과 아군의 주요기지, 후방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전 
당일 북한공군기의 첫 등장은 전투나 폭격이 아닌 정찰비행이었다.
오전 10시경, 서울 상공에 나타난 Yak-9 2기가 김포와 여의도 기지 상공을 
공중정찰한 뒤 곧바로 북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들의 발아래는 남한 공군의 총전력이 무방비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북한 공군의 이해할 수 없는 소극적인 활동 덕분에 우리 공군은 
금쪽 같은 항공기를 분산대피시킬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찰기가 돌아간지 2시간 가량이 지난 정오무렵, 마침내 김포와 여의도 
기지에 첫 공습이 시작돠었다.
다행히도 항공기들을 대피시칸 후라 큰 피해는 없었지만, 관제탑과 연료탱크에 
기관총 사소를 당했고 미군의 C-54 수송기 한대가 피격당해 불타올랐다.
곧이어 오후 4시에 습격한 무리들은 목표를 바꿔 중앙청에 기총소사를 가하여 당시 
국무회의를 열고 있던 의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놓고 유유히 한강을 넘어 
북으로 돌아갔다.
비행단에서 대기하고 있덨 우리 공군 조종사들은 눈앞에서 빤히 오가는 적기의 
공습을 보면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통한의 논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비무장 기체들로 출격해 봐야 Yak기의 밥이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아무리 분통이 
터리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을 쳐다보던 조종사의 얼굴이 기우는 해에 의해 발갛게 
달아오를 즈음, 마침내 최초의 출격명령이 떨어졌다.
아무런 무장도 없고, 호위기도 없는 상태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찰을 떠나는 
독립비행이었다.
상식적으로 전투상황에서 이런 출격은 아예 '목을 적의 총구앞에 대놓고 대드는 
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각기 춘천, 문산, 동두천 방면으로 날아갔던 기체들이 귀환하며 가져온 소식은 
동두천 방면에서 전차를 앞세운 대규모 기동부대가 남하하고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비행단장은 이 사실을 곧바로 국방부에 보고한 뒤 공격수단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적의 전차부대는 오로지 공중폭격만이 유일한 저지수단이었지만, 문제는 남한 
공군기중에 폭격능력이 있는 기체가 단 한대도 없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L-4/5는 연락기였고 T-6 역시 연습기였기 때문에 무장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폭탄이 있더라도 투하할 수 있는 장치나 장비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정비 중대장이었던 서무갑 대위는 자신의 대원들을 불러모아 밤을 새워 T-6에 
부착할 폭탄 래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울러 폭탄은 육군의 병기행정본부에서 시험제작한 15Kg 짜리 274개를 인수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정비창에서는 밤이 새도록 부산하게 움직이는 정비병들과 노란 불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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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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