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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Nfrei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jpark (정박)
날 짜 (Date): 1994년01월09일(일) 15시31분01초 KST
제 목(Title): 말띠 여성

겨울 방학에 시카고 집에 갔다.

친구들도 모두 나처럼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와 왔다.

고등학교적 친구들 몇명과 당구장에 갔는데, 거기서 후배 애들을 만났다. 

우리는 편을 갈라 겐뺑이를 몇 판 쳤고,

마지막엔 당구의 열기가 달아 올라, 술 내기로 목숨을 건 한판을 쳤다.

물론 내가 속한 팀이 이겼다.

당구장에서 나와 어디로 술 마시러 갈까 서로 의견이 분분한데,

고등학교 2년 후배 JJ는 선약이 있어서 돈만 내고 가야 된단다.

어디 가는데?  사실은 아까부터 JH (4년 후배, 아직 고삐리)가 기다리는 걸

당구치느라 지금까지 물 먹이고 있어서 빨리 가야 된다.  그래?  JH는 

누구랑 있는데?  혼자 있냐?  아니 여자 둘과 함께 있다.  잉 여자?

우리 껴도 되는 분위기 이면 같이 가자.  음.. 좋다.

그래서 우리 남자 다섯은 JH가 기다리고 있는 어디어디 술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JH는 역시 여자들과 함께 앉아 오손도손 술을 푸고 있다.

- 샤샤샥.. 22년 눈치 밥 경력의 날카로운 상황 판단과 분위기 파악이 내린 결론;

'지금 저 놈이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데.. 선배로서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코나 빠뜨리지 말자.'

앗, 형!  안녕하세요.  오냐 너도 안녕  그럼 놀아라 우리는 딴 데 앉아서 

놀께  여기 다섯명 앉을 자리 하나 만들어 주세요.  다섯명이요?  그럼 저기

큰 방으로 가세요.

그래서 나는 연장자 답게 마련해준 자리에 가 먼저  턱 앉았는데....

(헥헥... 내가 생각해도 서론이 더럽게 길다.  그냥 술집에서 반우연히 

후배 하나를 만났다고 썼으면 한 줄에 끝날 얘기를.)



JH가 내게로 오더니;

형, 제들이 합석하자는데요.  잉?  이게 왠 복음?  안그래도 XX 염색체끼리

얼굴 맞대고 술 푸자니 마시기도 전에 서글퍼 지려던 참인데.

그래?  좋지  와라.

그리하야 남자 여섯, 여자 둘의 화기 애매한 자리가 마련 낮고,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국민의 긍지를 살려 통성명과 간단한 자기 소개를 했다.

그런데.... 그 여성 들은 말띠였다.

.....79 말띠 (쿠쿵 -> 효과음)



79년 산 말이라... 여기 키즈의 형님 누나들이 보기엔 나도 아직 한창 귀여울

71 돼지이지만,  79년 생.....

내가 학교에 신주머니 들고 다니며 집에서 일일공부로 예습 복습 열심일 적에

앙앙 울며 기저귀 차고 누워서 우유를 주식으로 삼던 인생들 아닌가!

둘 중 한명은 앞 길이 창창한 어린이답게 집에 빨리 (그때 시각 밤 11시 50분!)

가야 한다며 먼저 떴지만, 나머지 하나는 술집 문 닫는 새벽 2시까지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더니 자기가 먼저 2차로 노래방에 가자고 발의한다.



어쩐지 노래방에서 우리에게 대우가  좋더라니, 나중에 물어보니 그 여성은

한 때 그 노래방에서 일 했었단다.  리모콘이 고장난 노래방 6호실에서

연소자의 예의로써 그랬는지 아니면 남아있는 직업의식의 발동이었는지 몰라도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인간 리모콘 역할에 충실하며 과일도 가져 나르고

콜라도 갖다 주기에 소흘함 없던 모습은

참 싹싹하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마주 앉은 나에게 묻는다.

저.. 담배 피워도 되죠?

아... 예, 물론이죠  피우세요  그런데 흡연은 태아 건강에 해로와요.

히히히.. 아이 형!  낄낄낄... 그러고는 우리 모두 함께 뽀끔뽀끔 너구리 사냥.



나는 안다.  아무도 이 글을 읽고 놀라지 않을 것을.

놀라기는 커녕 별 일도 아닌 것 가지고 뭐나 되는 일 마냥 너저분하게

글로 써서 올리고 지랄이냐고 욕 하실 분도 계실 것도 안다.

나는 그저 헷갈리고 있을 뿐.

과연  내가 겪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껴야  시대에 뒤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적절히 싹수도 파아란 훌륭한  젊은이라고 소문이 날까?

오늘 내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해 주었다.

에이... 니가 못 낄 곳에 껴서 놀았구만.

79년생?  그럼 몇살이지? 

이게 그들의 대답의 전부다.

솔직히 나 역시 내가 본 말띠 신여성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또,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그들을 옹호할 의양도 없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직접 일 했었다는 ex-professional이라기에 평소에 궁금했던

노래방 기계에 달려있는 이런저런 버튼들의 기능을 물었을 때

머리 하나 거리로 바로 앞에 코 맞대고 있던 (순전히 내 자리와 인간 리모콘 자리의  

지리적 특성 때문) 나를, 동그란 눈을 깜빡 거리며 빤히 쳐다 보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던 그 얼굴을 보며,

아, 예쁘다... 하고 느꼈다면,

나는 욕을 먹을까?

애들 가지고 (근데, 술먹고 담배 피는게 애냐?) 이상한 생각한다고?

아니면 후배놈 여자친구 보며 의리 없이 흑심 품는다고?


정박


P.S.

내 사랑하는 후배 JH는 오히려 더 순진했다.  나이는 그 말띠 여성보다  

쬐끔 더 먹었지만.

여자 앞이라고 노래방에서 하는 노래를 무슨 대학가요제 나가 하는 노래 마냥

얼굴 빨게져 가며 최선을 다해 부르는 모습은 나의 고삐리 적 모습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여자 친구 중엔 그런 진보된 신여성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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