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oveNfrie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sonata (배영현) 날 짜 (Date): 1995년06월26일(월) 04시46분10초 KDT 제 목(Title): 열시간의 기다림 끝에 ... 수화기를 놓고 삼십분...... 이제야 조금씩 내가 살아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수화기 건너 편에서 들려온, 조그맣지만 뼈 속 깊숙히 시리도록 차가왔던 그녀의 목소리는 잠시나마 나에게 죽음을 생각케 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아침, 난 잠깐만이라도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메세지만을 남긴 채 무작정 기다리기를 열시간... 이럴 줄 예상했었고 기다리는 데는 유난히 자신이 있었기에 밤을 지새우리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며칠동안 잠을 설친 내 몸은 내 생각을 따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거꾸로 침대에 쓰러졌고 조금 전에, 마지막이 되어버린 전화를 위해 힘든 몸을 일으켰었다. 언제부턴가 그녀에게는 밤에 전화를 걸면 안되는 것으로 세뇌되었다. 그녀의 집안 사정, 내 행동을 더욱 소극적이게 만들어버린 그 이유때문에 많이 망설였지만 이제는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건, "...... 자꾸 이러면 예전의 좋은 기억들도 ..." ======= 지난 겨울, 논문 작성과 해외 심포지움 참석 그리고 연이은 워크샵 준비 등으로 몹시도 지쳐버린 나에게 그녀가 처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천사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어려웠던 내 감정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그녀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너무나 잘 만들어 졌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 둘의 세상보는 눈은 무척 많이 닮았고, 그런 만큼 편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이에 누가 보더라도 오랜 친구로 착각할 만큼 친해졌다. 그랬다. 그녀를 만나서 보는 것만으로 무거웠던 내 기분은 그새 풀렸고, 그녀가 점점 나의 천사가 되어 간다는 오해(?)의 씨앗도 키워갔던 것이다. 매일 밤마다 새벽까지 전화를 하고, 한 그릇의 음식도 아무 꺼리낌없이 나눠 먹었으며, 가벼운 감기로 콜록거리는 나를 억지로 끌고가 약을 사먹게 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 철없는 오해는 무럭무럭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어려웠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 사정때문에 그녀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1월의 어느 날, 우린 여느 때처럼 만나서 쇼핑도 하고 저녁도 먹은 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녀는 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오늘은 부모님이 안계시니까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학위 논문 작성으로 지친 몸에 술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한잔 두잔, 그녀는 나보다 속도가 더 빨랐고, 결국 결코 보이지 않겠다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만날 때마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날 기쁘게 해 주었지만, 그녀는 늘 걱정의 그늘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 걱정때문에 나 같은 건 눈꼽만치도 마음에 두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해의 나무에 눈이 가렸던 나는 그녀의 작은 소원을 듣고서 나도 그녀에게 내가 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큰 위안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그러면서 나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 슬픔의 근원을 얘기해 주었다.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말이다. 어쨋든 내 눈물에 그녀의 눈물이 조금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녀의 집으로 가는 좌석버스 안에서 살며시 기대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깨에 느끼면서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스킨쉽이었다.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난생 처음 느껴본 이성의 살결이었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오직 그녀를 마음으로 안아 주고픈 안스러움만이 가득했다. 도저히 다른 생각이 그 마음을 열고 들어 올 수 없었다. 그럼, 이런 건 스킨쉽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 그로 인해서 내 오해의 나무는 기둥이 우람할 정도로 자랐고, 며칠 후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되었다. 설날 연휴 하루 전, 보잘 것은 없지만 힘들게 만든 내 논문이 제본되어 나왔다. 살짝 숨기기는 했지만 그녀에게도 짧은 감사의 글을 적었다. 그리고 나도 논문을 전해줄 여자친구가 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날 저녁을 그녀와 함께 했다. 그것이 내 기억에 남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날 밤, 전화기를 잡은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베게를 온통 눈물로 적시면서 '고백'이라는 오해의 열매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바보같이...... 지나치게 침착한 기계 속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것이 사랑(?)의 열매가 아닌 오해의 열매일 뿐이란 걸 알았어야 했다. ======= 오해의 나무를 미리 잘라버리지 못한 난, 그때부터 시들어 썩어가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2월 한 달은 특례시험을 준비하느라 또다시 바빠졌다. 그러면서도 난 전과 꼭 같은 감정으로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고, 한두번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통해 그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또. 만나려고 하는 약속은 번번히 실패했지만, 그래도 가끔 전화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난 시험때문이라고 핑계를 삼으면서 아직도 그 오해를 자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전화 횟수는 줄고 있었으며 전화 속 그녀의 목소리도 예전과 같이 않았다. 싫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오해였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개학 후에도 주말마다 내가 약속을 하려 할 때, 언제나 다른 선약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분명 내 오해 속의 천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머리로는 오해라고 인정하면서 마음 속에선 그렇지 못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조그만 기대의 새싹을 다시 키우고 있었나 보다. 그 새싹이 무참히 짓밟혀 이렇게 아프게 될 줄 모르고.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도 잘 하지 못하면서, 대신에 매일 그녀의 호출기에 메세지를 남겼다. 마치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그리고 그때부터 여기에 있는 글들을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번의 새싹은 지난 번처럼 쉽게 겉자라 나지는 않았다. 매번 기대가 무너져 다시 싹을 틔우게 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여기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다양한 생각을 배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의 글들이 내 생각에 이상한 변화를 주었다. 내 마음조차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내 짐작에 그녀의 마음이 쉽게 열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조차 아직 오해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나이때문에 단순히 연애나 해보자고 남자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이 나이의 다른 여자분들도 비슷하겠지만 그녀는 그 걱정의 그늘때문에 그 생각이 더 강했던 것이다. 결국 나도 그녀를 감정만으로 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내 기대나 마음 속의 생각들이 그녀에게 채 전달되기도 전에 매번 무너져 버리자 허무함이라고나 할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그리는 마음만은 변함없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사랑의 조언이 오히려 이런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 전화 연락은 아예 끊겨 버리고, 아니 하려는 용기가 없어져 버리고 그냥 습관처럼 호출기 메모함만을 매일매일 채우고 있었다. 그녀도 주말마다 연락을 바라는 내 메세지를 듣지 않았는 지 못했는 지, 전혀 응답을 주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고 해야 좋았을 것이다. ======= 학기 초에 그녀에 대한 오해 대신 조그만 기대를 키우면서, 난 한가지 일을 시작했다. 색종이를 잘라 종이학을 접었다. 전부터 우울할 때는 한번씩 접어서 날개를 펴보곤 했는데, 이제는 뭔가 내 마음과 기대를 담을 대상으로 그것들을 접었다. 유치해 보이지만, 사랑의 정표로 천마리의 종이학을 선물한다고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접었다. 매일매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은 많은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며칠씩 밤을 지새운 적도 있고, 학교를 빼먹으면서 까지 이 일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학을 접는 동안만은 그녀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다시 갖기는 힘들 것이다. 천여마리의 종이학을 투명한 상자에 담아서 그녀에게 전해 주려고 했다. 아마 만난 지 백일째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몇주동안 연락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종이학을 건네 주기는 커녕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그리고 종이학 접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많은 생각으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이걸 그녀에게 주어야 하는가, 그녀에게 주어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6월에 접어 들면서 세 개의 상자에 종이학을 채웠고, 그녀의 무관심으로 인한 고통때문에 어뚱한 일을 생각했다. 그래. 남자가 째째하게 이러지 말고, 나는 네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분명하게 밝힌 후, 깨끗하게 그만두는 것이다. 지난 주 사흘동안 그녀의 아파트엘 찾아 갔다. 매일 상자 하나와 이별(어떻게 감히 이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의 편지를 들고. 그리고 마지막 날인 지난 수요일은 그녀의 생일 전날이었다. 정말로 운이 없다. 하필 이럴 때 생일일게 뭐람. 처음 그녀의 생일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멋진 생일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 어쨋든 마지막 날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흑장미 스물다섯 송이도 함께 했다. 그녀를 보면 흔들릴 것 같아 계속 수위실에 놓고 나왔지만, 장미 만큼은 직접 전해 주려고 했는데 할 수 없었다. 우리, 아니 나의 종말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고이 지켜온 기대의 새싹을 짓밟는 첫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도데체 내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멍청한 나는 짓밟힘이 시작되었는 줄도 모르고 곧바로 후회에 밤을 지새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 결국은 오늘, 열시간의 기다림 끝에 뿌리까지 짓밟혀 버렸다. 열시간동안 기다리면서 뭘 원했던 것이지 ? 뭘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 분명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면서 내일도 와서 기다려야지 하고 또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음을 알기에... 난 "Out of sight, out of mind" (맞는 지 모르겠군) 라는 말을 철저히 믿는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겠다. 나와 그녀 사이에 이것말고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내 마음은 첨 만났을 때 그대로인데 어떻게 그녀는 그렇게도 차가와질 수 있는 것일까 ? 여자는 그런 것인가 ? 초보자의 무지에 나조차도 답답함을 느낀다. 나의 유치했던 지난 감정들을 여기에다 어찌 첫사랑 운운하면서 적을 수 있겠냐만, 어쨌든 나의 '초보연애'는 지금 엄청난 사고를 당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이 냉정해 졌지만, 여전히 난 그 몸서리치는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 기대의 새싹은 다시는 살아 나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시 살리고 싶지도 않다.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없앨 것이다. 그리고 잠시 떠나겠다. 학교도 여기 키즈도. 키즈엔 아이디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이럴 때 참 좋다. ======= 유치하고도 바보같은 제 마음을 지루하게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끄러움에 도저히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기 때문에...... 제 글에 [Re] 같은 것은 달지 말아 주십시요. 부탁입니다. 떠나는 제가 볼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보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르니까요. 더 이상의 고통은 이제 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