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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Nfrie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아틸라 (로즈마리)
날 짜 (Date): 2004년 7월  7일 수요일 오후 02시 04분 09초
제 목(Titl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여성, 193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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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북(在北) 시인 백석. 
      내가 그의 시와 만나게 된 건 감동하기 잘하는 한 선배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인문사회과학서점 <알서림>의 단골이었던 그 
선배는, 군대시절 밤마다 모포를 뒤집어 쓰고 몰래 백석의 시집을 읽으며 
감동해서 울었다면서 나에게 그 감동에 동참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 또한 백석의 시에 푹 빠졌을 때 나는 그 선배의 말이 결코 
군대시절에 대한 과장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입 
속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내 온 몸 가득 물밀어 오르는 백석의 시가 주는 감동을 
숨죽인 모포 속의 그 좁은 공간에서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으랴! 그 상황에서 
울지 않고 그것을 감당하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그러나, 정말이지 값지고 귀중한 백석의 시를 우리가 다시 찾은 지는 이제 고작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다. 1987년 11월 <백석시전집>(이동순 엮음, 
창작과비평사)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시는 다른 월북(越北) 작가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정권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석시전집>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백석의 시들을 다시 품어안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후 시와 산문은 물론 동시와 평론을 포함하여 8·15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까지를 담은 <백석전집>(김재용 엮음, 실천문학사, 1997)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그의 책이 출판되었다. 이제 백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시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 해도 서슴지 않고 꼽는 시인(-<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우리교육)"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백석의 시와 삶을 애절한 사랑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 있으니 바로 김자야(金子夜)에세이 <내 사랑 백석>이다. 
이 책은 193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22살 나이의 기생이었던 자야가 26살의 
영생고보 영어교사였던 시인 백석을 만나 단박에 사랑에 빠지고, 이후 
1939년까지 함흥과 서울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다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했던 일들을, 80이 다 되도록 평생 잊지못하다 쓴 그리움의 기록이다. 
      백석은 자야를 만난 첫 날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며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곧 각자 가까운 
거리에 하숙을 정하고 사랑을 싹틔운다. 자야가 추억하듯, "당신은 학교의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나의 하숙으로 바람같이 달려왔다. 우리는 
새삼 그립고 반가운 마음에 두 손을 담쑥 잡았다. 꽁꽁 언 손을 품속에 데워서 
녹이려 할 양이면 난폭한 정열의 힘찬 포옹, 당신은 좀처럼 풀어줄 줄을 
몰라했다"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일본에 유학한 인텔리이자 촉망받는 시인과, 
지금과는 조금은 다를지라도 당시로서도 낮은 신분으로 여겨졌던 기생과의 
사랑이었기에 평탄할 수 없었다. 백석은 집안의 강권에 못이겨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세 번씩이나 해야했고 그때 마다 둘은 커다란 상처를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여러 번 가슴 아픈 이별과 눈물의 재상봉을 해야 했으며 결국 1939년 
백석을 만주 신경으로 홀로 떠나보냄으로써 자야는 그것이 영영 이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이별을 하게 된다. 
      이러한 3년 동안의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또 때로는 가슴 
아팠던 사랑의 기억과 관련된 곳곳에서 자야는 백석의 시를 떠올리는데, 자야의 
추억 속에서 백석의 시는 역시 한없이 아름답게 또 때로는 슬프게 되살아난다. 
특히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자야를 찾아 함흥에서 서울로 달려와 고작 
"단 하룻밤 이마를 서로 마주 조아리다가 학교의 출근 때문에 다음날 번개같이 
함흥 천리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던 백석이 이별의 말 대신 주고 간 누런 미농지 
봉투 속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주는 감동은 그냥 시집만을 읽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다란 것으로 다가온다. 
      또한 자야의 추억을 통해 우리는, 만주로 떠난 1939년 이후 백석의 
시세계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커다란 도움을 얻는다. 백석의 시 중 가장 
으뜸인 것으로 꼽히는 '南新義州 柳洞 朴氏逢方'의 그 쓸쓸하고 아름다고 정한 
갈매나무와 같은 시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흰 바람벽이 있어' 中 )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야는―-이 이름 역시 백석이 지어준 아호(雅號)이다―-책의 끝에서 
이제 자신도 하나의 넋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상기하며 "당신의 순정이 
서려있는 정열의 시 한 수! 이것이야 말로 나 혼자 쓸쓸히 돌아가야할 저승길에 
진실로 크나큰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흰 당나귀 타고 당신 곁으로 가는 
자야! 오직 흐믓하기만 합니다. 영광스럽기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사랑 백석>이 출간된 지 4년 뒤 자야는 자신의 말대로 백석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아침 신문의 한 귀퉁이엔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물론 백석의 연인 자야로서가 아니라, 3공화국 시절 밀실정치의 
근거지였던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자 시가 1000억원이 넘는 그 대원각 터를 법정 
스님에게 기증하여 길상사라는 절로 다시 태어나게 한 김영한이라는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였다.  



<이상 펀 글>



.......짜잔...... better tomorrow..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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