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boo (피어라불꽃() 날 짜 (Date): 1996년05월26일(일) 16시08분56초 KDT 제 목(Title): [민문연] '청산하지 못한 역사' 명단 (2/2) #9 김봉우 (banmin ) [연구소][청산하지못한역사]명단및 약력2 02/20 01:56 418 line [[[[[제2권]]]]] 장 면(張 勉, 1899-1966)-갖은자 편에 선 구도자. 1936-동성상업학교 교장 1938-[조선지원병 제도 실시축하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8-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산하 비상시 국민생활개선위원회 위원으로 선임 1939-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 간사 1948-제헌국회의원 1956-제4대 부통령 1960-제2공화국 국무총리 #1938년에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비상시 생활개선 순회강연반을 전조선 13도에 파견한바 장면은 강원도 방면 순강반의 일원으로 참가. 김성수(金性洙, 1981-1955)-민족 지도자로 둔갑한 친일 자본가. 1919-경성방직 주식회사 창립 1920-[동아일보]설립 1932-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교장 취임 1938-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 및 이사 1941-임전보국단 감사 1945-한국민주당 창당 1946-대한독립촉성회 부회장 1949-민주국민당 창당 1951-부통령 당선 #보성전문학교 교장의 자격으로 1943년 8월 5일 징병제를 찬양하는 장문의 논 설을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기고함. 보성전문학교에서 '학도 출진 장 행의 밤' 행사 개최 격려사.보전의 '학부모 간감회'를 개최하여 학병권유. 학병 참가를 결의하는 '궐기대회' 개최. 신현확(申鉉碻, 1920- )-사계절을 행정관료로 꽃피운 끝없는 생명력의 화신. 1943-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 이후 일본 본토 동경 중앙관서의 하나 인 상무성 근무. 곧 군수성 군수 관리관으로 근무. 1959-부흥부 장관 1973,79-국회의원 1978-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79-국무총리 1986-삼성물산 회장 1988-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 1993-한일협력위원회 회장 #1960년 4.19혁명 후 3.15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구속됨. 이갑성(李甲成, 1889-1981)-독립유공자로 훈장받은 친일밀정. 1919-3.1운동 민족대표 33인 1927-신간회 발기인 1930-출옥한 후 경성공업주식회사 지배인에 선임됨 1946-독립촉성회 회장 1951-부통령 후보(신정구락부) 1962-독립유공자 대통령장 1965-광복회 회장. 3.1동지회 고문 #그가 밀정이라는 구체적 증거는 여러 가지를 들고 있지만 몇가지만 소개하면: 1)'주식회사 일만산업공사(日滿産業公司)전무취체역'이라는 직함 및 창씨명 이 와모도 쇼이치(岩本正一)가 새겨진 명함. 2)조선총독부 촉탁이었다는 증언, 또는 중국북경헌병대의 간첩이었다는 증언. 3)조선총독부 산업국장의 주선으로 일본 삼릉회사의 만주신경출장소 소장이었 다는 증언 등. 박순천(朴順天, 1898-1983)-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정치지도자. 1926-일본여자대학 사회학부 졸업 1940-황도학회 발기인 1941-이후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연사. 1945-건국부녀동먕 부위원장. 이후 각종 여성단체활동에 관여 1946-독립촉성 애국부인회 결성. 부회장에 선출. 대한부인회 회장으로 6년간 재직 1950-국회의원 1955-민주당 창당 참여 1956-민주당 최고의원 1967-신민당 전국구 의원 #1943년 3월에 경성의숙 부교장으로 있을때 여학생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강력 히 요구, 그때 부교장의 말을듣고 정신대에 지원한 여학생이 생존해있는 김금 진 할머니임. 한동석(韓東錫, 1909-1956)-권력을 쫓아다닌 일제의 주구(走拘) 1937-함남 경무과장 1940-함남 보안과장 및 고등과 겸무. 총독부 기획부 식산국 겸무. 1945-황해도 참여관 겸 농상부장과 조선식량영단 황해도지부 감리관. 1947-미군정 중앙경제위원회 사무장대리 1948-중앙물가행정처 차관 1949-한국원양어업주식회사 사장 1951-총무처 부장 1951-자유당 정권의 총무 #독립운동 탄압하던 악명높은 고등경찰에, 식량수탈에도 한몫 함. 박마리아(1906-1960)-면죄부를 줄 수 없는 친일과 권력욕의 화신. 1924-이화여자 전문학교 영문과 졸업 1932-미국 스카릿 대학 졸업 1935-YWCA총무 1949-대한부인회 부회장 1952-이화여대 문리대 학장 1954-대한부인회 최고위원 #1941년 '시국부인 대강연회'연사로, 42년 1월 경성된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의 지도위원으로, 임전보국단 부인대 좌담에선 '건국의 새 어머니가 될 우리의 감 격과 포부'라는 주제로 연설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함. 최순주(崔淳周, 1904-1956)-사사오입 개헌에 앞장 선 친미매판관료. 1930-뉴욕대학 졸업 후 연희전문 상과 교수 1948-조선은행 총재 1950-재무부 장관 겸 기획처장. 한국은행 창설 1954-제3대 민의원. 제3대 국회부의장. 대한무역협회장 #1954년 11월 27일 국민투표제와 초대 대통령 3선 조항 철폐등을 골자로 한 개 헌안에 대한 국회의 투표가 실시될때 최순주는 국회부의장으로서 사회를 맡아 부결을 선포하고 다음날 기상천외하게 사사오입에 의한 가결을 선포함. 이재학(李在鶴, 1904-1973)-현대사 정치파동의 감초. 1929-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졸업 1938-충청북도 시학(현 장학사)에 임명됨 1942-충청북도 사회과장 1944-충북 단양군수 1947-강원도 지사대리. 춘천 농업대 학장 1948-제헌국회의원 1954-자유당 원내 총무 1960-자유당 선거 기획위원 #3.15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되어 3년 6개월형 언도 받음. 백두진(白斗鎭, 1908-1993)-유신 옹호의 기수가 된 현실순응주의자. 1933-일본 동경상과대학 졸업 1934-45:조선은행 근무 1949-외자청장 1950-한국식산은행 취두(은행장) 1952-재무부 장관 겸 국무총리 서리 1953-국무총리 1961-제5대 민의원 의원 1967-71:국회의원 1970-국무총리 1973-유신정우회 의장 1979-국회의장 김정렬(金貞烈, 1917-1992)-일제에서 6공까지 노회(老獪)한 군인의 군력이동. 1940-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 전투기과 졸업 1941-태평양전쟁 초기 전투 중위로 대만 남부기지에 출격함 1943-일본 아케노(明野)육군비행갑종학교 졸업 1944-최신예비연(飛燕)전대장에 발탁.(스마트라, 자바, 팔렘방 등지에서 방공 근무) 1945-일본 패망 후 사이공 경비대장 1949-초대 공군사관학교장 및 초대 공군 참모총장 1957-국방부 장관 1981-국정자문위원 1987-국무총리 #3.15부정선거 혐의로 공민권 정지 당함. 한희석(韓熙錫, 1908-1983)-친일 내무 관료에서 3.15부정 선거의 주범으로. 1929-공주사범학교 졸업 1937-고시 행정과 합격 1938-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시보 1940-43:창령군수. 동래군수.평남지방과장 1949-내무부 지방국장. 상공부 공업국장. 내무부 차관 역임 1954-국회의원, 국회 내무위원장, 자유당 정무부장 역임 1960-자유당 정.부통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기획위원회 위원장 장경근(張暻根, 1911-1978)-독재 권력의 파수꾼으로 성장한 식민지 법조 엘리트. 1935-고등문관시험합격 1936-동경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1937-경성지방법원 판사 1941-경성복심법원 판사 1945-경성지방법원장 1949-내무부 차관 1950-국방부 차관 1953-한일회담 대표 1954-58:민의원 의원 1957-자유당 중앙정책위원장. 내무부 장관 #반민특위 공격의 총지휘자(당시 내무차관) 방응모(方應謀, 1890- ? )-얼론 내세워 일제에 아부한 교화 정책의 하수인. 1933-[조선일보]사장 1935-[조광]창간 1937-애국금차회 활동 1938-전선순회 시국강연반에서 활동.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 1941-임전대책협의회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1943-'출진학도 격려대회' 주최 1950-납북됨 #[지나사변 4주년], [만주사변 10주면], [일미회담], [대동아전쟁의 성전의식] 등 [조광]지의 권두언을 통해 자신의 친일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냄. 유광렬(柳光烈, 1889-1981)-친일 언론인으로 해방 후 우익 언론계의 거두. 1919-만주일보 서울지국 입사 1920-동아일보 창간사원으로 입사 1924-조선일보 사회부장 1926-시대일보 사회부장 1927-조선일보 사회부장 1931-중앙일보 지방부장 1932-매일신보 편집국장 1938-[매일신보]논설부장 1940-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1945-조선언론보국회 이사 * 해방후 조선일보, 자유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에서 활동. 1960-국회의원 1971-국사편찬위원회.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방송문화상. 신문문화상 수상 #1942,43년 등에 친일 성향의 글을 각잡지에 게재-[징병제 실시와 조선인의 각 오] [의무교육과 징병제] [대동아전쟁의 성전의의] 등등 이상협(李相協, 1893-1957)-친일 언론인의 대부 1920-동아일보 발행인 겸 편집국장 1924-조선일보 편집고문 1926-중외일보 발행인 1934-매일신보 부사장 1937-'제2회 전조선 명사 각도 파견 시국 순회 강연' 강원도 담당 1941-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1954-자유신문 부사장 서정주(徐廷柱, 1915- )-미당의 친일시와 해방 이후의 활동 1933-동아일보에 시 [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등단 1942-인문사에 입사.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을 함 1946-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회장 1948-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1961-시집 [신라초]로 5.16문예상 수상 1966-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77-한국문인협회 회장 1984-범세계한국인예술가회의 회장 #1942년부터 친일시를 발표:대표적인 작품-[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 머니에게] [항공일에] [헌시] [보도행] [오장 마쓰이 송가] 등등. 조연현(趙演鉉, 1920-1961)-순수의 정체:붓과 칼의 일치 * 해방 직후 [민국일보]문화부장. [월간문예] 편집주간. 1954-초대 예술원 회원 1955-[한국문학] 주간 1970-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장 1973-한국문인협회 이사장 * 대한민국예술상, 국민훈장동백장, 3.1문학상 수상. #1942년부터 친일성향의 글을 씀: [아세아 부흥론 서설] [니체적 창조] [문학자 의 입장] 등. 곽종원(郭鐘元, 1915- )-극에서 극으로 변신을 거듭한 '청문협'의 맹장 1945-조선청년 문학가 협회 활동 1957-예술원 회원 1962-숙명여대 문리대 학장 1968-예총 부회장 1971-건국대학교 총장 1973-문예진흥원 원장 1981-예술원 종신회원 1988-한국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1944년 4월호 [국민문학]에 대표적 친일문학론인 '결전문학의 이념' 발표. 노기남(盧基南, 1902-1984)-호교(護敎)위해 신을 판 성직자 1930-사제서품 받고 종현성당 보좌신부 됨 1942-경성교구장, 춘천교구장 서리 1942-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주교로 승품됨 1943-조선전시종교보국회의 천주교 대표로 참가 1962-대주교로 승품됨 1967-은퇴 선언 후 나자로 마을로 이주 #1938년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결성; 여기에 경성교구가 참여. 노기남은 천 주교 주교 라리보를 대신하여 경성교구를 40여개 성당을 돌며 친일 강론함. 갈홍기(葛弘基, 1906-1989)-이승만 정부의 충실한 대변인. 1928-연희전문 졸업 1934-미국 시카고대학 신학과 졸업 1934-연희전문학교 교수 1943-일본 기독교 조선 감리교단 연성국장 1948-숙명여대 문학부장 1952-외무부 차관 1953-공보처 장관 #1943년 조선종교전시보국회에 감리교 대표로 참여, 순회강연을 통해 학병참여 권유. [[[[제3권]]]] 이병도(李丙燾, 1896-1989)-식민사관을 계승한 이병도사관. 1927-'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보 1934-진단학회 창설. 대표 1945-62:서울대 문리대 교수 1960-문교부 장관 * 충무공훈장.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상. 국민훈장무궁화장. 인촌문화 상. 5.16민족상 수상. #식민사관 총서인 [조선사]간행 참여-식민사관의 이론적 기반은 한국사 또는 한국문화 발전의 타율성론과 만선사관, 일선동조론, 정체성론임. 유진오(兪鎭午, 1906-1987)-'일본의 영원한 승리'를 다짐한 한국현대사의 큰 별 1929-경성제국대학 법학과 졸업 1939-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0-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 1942-대동아 문학자 대회 조선 대표 2회 연임 1945-조선언론보국회 평의원 1948-대한민국 제헌국회 헌법 기초위원 1952-65:고려대학교 총장 1960-61:한일회담 수석 대표 1967-신민당 총재 #1940년 시국강연을 통해 친일사상고취 시킴. 1940년 [삼천리]에 '소감'이란 제 목으로 친일 글을 발표. 그밖에 매일신보에 '병역은 힘이다' 사설을 쓰고, 1944 년8월에 전국 항복 대강연회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친일강연을 함. 백낙준(白樂濬, 1895- ? )-제자들을 성전에 내몰고도 추앙받는 교육자 1927-연희전문교수 1941-친일좌담회인 '미.영 타도 좌담회' 참석 1944-경성대학 법문학 부장 1951-문교부 장관 1957-연세대학교 초대 총장 1958-반공연맹 아세아지구의장 1960-대한민국 초대 참의원 의장 #1943년 12월 5일 친일신문 [매일신문]에 '영원히 광망 뻗도록'이란 제목으로 친 일 논설 기고. 신석호(申奭鎬, 1904-1981)-친일사학자에서 국사학계의 거두로 1929-조선사 편수회. 해방 당시에는 수사관 재임 1934-진단학회 발기 1945-국사관 관장 1949-문교부 편수국장. 고등고시 위원 1951-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1958-한국사학회 이사장 1963-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1967-한국사학회 회장 #식민사관의 총서인 '조선사' 편수에 참여. 이선근(李瑄根, 1905-1963)-역대 부도덕한 정권의 밑받침이 되어준 이론가. 일본의 와세다 대학 졸업.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 역임. 1932-송도고보 교사 1939-만철(滿鐵)조사부의 연구원 1939-만주제국 협화회 협의원 1954-문교부 장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1978-정신문화원 초대 원장 조용만(趙容萬, 1909- )-친일인사에서 문단, 언론계의 원로로 1932-경성제대 영문과 졸업 1933-매일신보 학예부장, 논설위원 * 구인회 회원. 해방 후 국도신문, 코리아 타임즈, 서울신문사 근무. 1939-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53-74:고려대 영문과 교수 #1941년 12월 [조광]지에 '나의 노동봉사일기'와 44년 6월호 [국민문학]지에 '증 산현지파견 문인보고'를 게재 후방의 전쟁독려 촉구. 이밖에 '전국현단계와 국 민의 결의'(신세대,44.1) 등 많은 글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앞장 섬. 최 연(崔 燕,1899- ? )-친일경찰의 대부 1938-혜산진 경찰서 고등계형사 1945-경기도 경찰부 경무과장 1949-반민특위에 피검. '공민권 정지 10년' 판결 #혜산경찰서 사법주임이자 고등주임일때 보천보 사건이 수사를 지휘하는 과정 에 박달이하 약 3백여 명의 독립운동자들을 체포 투옥시킴. 곽영주(郭永周, 1924-1961)-정치깡패를 등에 엎은 부부통령. 1924-일본군 지원병으로 입대 1945-해방 당시 일본군의 헌병하사관으로 복무 1945-해방 후 수도경찰학교 수료 1947-경무대(당시 하지 관사)경비경차로 근무 1948-이후 경무대 경찰서 경호대에서 경위. 경감으로 근무 1956-총경으로 진급. 경무대 경찰서장으로 승진. 이승만의 경호책임자. 1961-경무대앞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모의 혐의로 사형됨 최운하(崔雲霞, ? - ? )-친일 사찰 경찰의 총수 1943-경무국 보안과 근무 1945-해방 직전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 미군정하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1946-수도관구경찰청 사찰과장 1948-임화 고문 치사사건으로 구속되나 무죄선고 1950-서울시 경무국장. 한국전쟁중 납북 노덕술(盧德述, 1899- ? )-친일 고문경찰의 거두 1920-경남 순서교습소 졸업 이후 울산경찰서 순사부장 1924--경부보로 승진. 의령, 김해, 거창, 동래 등 각 경찰서 사법주임 1930-경부로 승진. 서울, 인천, 개성, 종로 등 각경찰서 사법주임과 고등계주임 1934-평남 보안과장 1946-수도청 수도과장 1950-반민법 파동시 헌병중령으로 이직 1955-육군범죄수산단 대장 #일제로부터 훈7등 종7위의 훈장을 받음. 반민특위 및 정계요인에 대한 암살음 모. 김호익(金昊翊, 1908- ? )-고문 출신의 엘리트 친일 경찰 1934-고등문관시험 합격 1937-함남경찰부 경부 1941-경시 승진, 평남경찰 보안과장 취임 1945-미군정 경무부 차장 *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됨 노주봉(盧周鳳, 1901-1945)-해방 직후 암살된 친일경찰의 거두 1920년대 중반경 전남 보안과 순사부장, 그 후 경부보, 경부 해방직전 경시. 1945년 해방당시에 전남도 경찰부 보안과 차석. 김성태(金聖泰, 1910- )-순수예술지상주의자의 정치적 행로 1939-동경고등음악학교 작곡부 졸업 1942-'경성후생실내악단'편곡. 지휘자로 활동 1944-신경교향악단에서 활동 1945-음악건설본부 작곡부 위원장 고려교향악협회 지휘자로 활동 1947-서울교향단 이사 1949-문교부 예술위원회 서울시 문화위원 1954-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71-한국방송윤리위원회 회원 1973-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1984-예음문화재단 회장 1993-대한민국예술원 원장 #일제의 '국민가창지도대'의 요워능로 강릉지방 파견됨.(군국 가요 보급) 이흥렬(李興烈, 1909-1980)-항일 민족음악가로 둔갑한 일제 군국가요의 나팔수 1931-일본 동경의 동양음악학교 졸업 1936-경성방송관현악단 창설에 참여 1944-대화악단 지휘자 1945-경성후생악단 편곡 담당 1957-한국작곡가협회 조직 부위원장 1960-서울시 문화위원 1963-숙명여대 음대 학장 1967-예술원상 수상 #일제의 '국민가창지도대' 요원으로 순회, 각종 연주회를 통해 일제의 군국 가요 보급에 앞잡섬. 이승엽(李承燁, 1905-1953)-전향과 변신의 길 1925-조선공산당 가입 1940-전향, 대화숙 가입, 식량배급조합이사 1945-해방이후 조선공산당 정치국원, 중앙인민위원회 중앙위원, 남조선 노동당 중앙정치위원 1948-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법상 겸 조선노동당 대남당당비서 1950-서울시 임시인민위원장 1952-인민검열위원장 195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전복음모와 반국가적 간첩테러 및 선전선 동 사건'으로 체포되어 8월에 사형당함 정 백(鄭 栢,1986-1950)-동지를 팔고 전향한 권모술수가 1921-서울청년회 가입 1927-28:제3차 조선공산당 활동 1945-장안파 조선공산당 결성 1946-47:조공대화파, 사로당, 근민당 간부 1949-보도연맹 명예간사장 조일명(趙一明, 1903-195?)-출세와 변절의 길을 걸었던 사회주의자 1926-제2차 조선공산당 입당 1944-대화숙(大和塾)일본어 강사 1945-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 참가 1950-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7부 부부장, 지도과장, 민주 조선사 부주필 1951-문화선전성 부상, 중앙당 제14호 실장 1953-미국 간첩 혐의로 체포 -- 퍼오기 끝. * 헥헥.. 그것은 마치 자신의 의지로는 깨어날 수 없는 잠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