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ontano (lontano) 날 짜 (Date): 2006년 12월 12일 화요일 오후 05시 21분 33초 제 목(Title): Re: 홍원탁 교수 동아시아 역사왜곡 인터뷰 1. 우선 fowm님께. > 그런데, 님은 보아하니 (2)가 틀렸으니 더이상 이 글 읽기가 싫다. > 이거 아닌가요? 첫 답글에서 "왜 이런 글을 퍼오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으니요. > 님같은 리뷰어 만날까봐 무섭습니다. 저같은 리뷰어 만날까 무서우시다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이미 다른 분들도 언급하셨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내용의 논문이라도 명백하게 틀린 부분이 포함된 채로 publish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그것은 후에 저자는 물론 저널과 리뷰어의 평판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겠지요. 더구나 그것이 reference 하나의 journal volume 숫자가 틀린 정도가 아니라 주장의 주된 논거로 제시한 것의 오류라면 그 논문을 accept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reviewer라도 저자에게 그 오류를 정정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논문의 게재를 거부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다만, 첫댓글 다신 분이 상당히 과격하게 "완전 엉터리 이론을 주절 거리는 것을 왜 > 퍼오느냐?" 라고 하시고 이유라고 든 것이 고작 만다린어보다 상하이 언어가 더 어미 > 변화가 있다고 하시니 제3자의 입장에서 읽으면 상당히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요. '만다린어는 중국어라기 보다 차라리 만주어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 '고작'이라뇨? 그리고 제3자가 왜 '무례'하게 느끼죠? 저는 fowm님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추측이고 인신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홍원탁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시는데 '내가 좋아하는 학설을 까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신 건 아닌가요?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설에 대한 것이라면 감정보다 논리와 근거를 앞세워야겠지요. 그리고 저는 홍원탁교수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갔을 뿐 글을 퍼오신 chopin님께는 왜 퍼오셨느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제가 fowm님께 공격적으로 대한 적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chopin님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지금도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하는 문제의 신문기사 내용에 대해서. (신문기사 특히 우리나라 조중동 신문기사는 인터뷰에서 앞 뒤 자르고 자기들 입장(신문사주 입장?)에 맞게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 건 저도 잘 압니다만 이건 정치관련 기사도 아니고 하니 기자가 홍교수의 말을 심각하게 왜곡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겠습니다. 즉 홍교수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입니다.) 2. 백제 일본열도 정복설 > 나는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검토해 보면 부여사람들에 의한 일본열도 정복이라는 > 주장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여 사람들이 아니라 > 백제 사람들이 일본열도를 정복하고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 왕국을 세웠다는 > 것이다. 누구라도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여러 번 읽어보면 직관적으로 그런 확신이 > 생기게 되어있다. 물론 주몽이 동부여(혹은 북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내려와 > 고구려를 세웠고,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한강유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고, > 사비(부여)로 천도할 때 남부여라고도 불렀으니 백제사람을 부여사람이라고 > 부를 만도 하기는 하다. 하지만 347년경에 선비족한테 깨진 부여사람들이 > 한반도를 무인지경처럼 휩쓸고 또 현해탄을 건너 야마토 왕국을 세웠다는 건 > 말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저는 '백제가 일본열도를 정복했다'는 설에 대해서는 크게 봐서 동의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현재 그렇게 믿고 있죠. 조금 있다가 자세히 얘기할 텐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 주체가 백제보다는 부여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도 어차피 이 학설 저 학설 주워듣고 그 중에서 제 나름대로 가장 그럴듯 해 보이는 걸 택한 것이니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 홍원탁 교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 주장의 근거로 드는 것이 겨우 '누구라도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여러 번 읽어보면 직관적으로 그런 확신이 생기게 되어있다' 이 말이라는 겁니다. 물론 홍원탁 교수가 썼다는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나름대로 더 엄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겠지만 겨우 이거라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저는 이 보드에서 홍교수의 논문을 읽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또라이가 아니라면 일본 역사학자들도 과장과 왜곡이 많다고 인정하는 역사서입니다. 야요이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인 BC 660년에 일본이 건국되었을 리가 없죠. 조몽 수렵채집인들이 국가를 세우다니! 신공황후가 만삭의 몸으로 달이 차서 밖으로 나오려는 아기(훗날의 ?神天皇)의 출산을 늦추려고 아랫배를 돌로 누르며 대함대를 이끌고 신라를 정벌했다는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대일본제국 만세'를 외치면서 할복할 또라이죠. 결국 홍원탁 교수의 이론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어떤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완전 구라이며 어떤 부분은 일부 사실을 어떻게 과장, 왜곡했는가를 나름대로 잘 살펴서 일관성 있는 얘기를 구성했다는 겁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진실성에 의문이 많은 사료를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제시한 이론은 심하게 말하면 '소설'일 뿐입니다. 홍원탁 교수의 학설이 나중에 고고학적인 발굴과 문헌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로 밝혀지고 역사학계에서 공인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저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홍원탁 교수의 주장이 기존의 여러 이론에 비해 매우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구성이 학설의 주된 논거라면 흥미의 대상이 될 수는 있고 다른 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건 되어도 백제가 일본을 정복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학설에 대한 태도입니다. 학자가 자신이 창안한 학설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평소에는 그렇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같은 분야의 동료 학자들에게 대할 태도이지 일반 대중을 상대로한 언론매체에서는 적절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고대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홍교수가 명시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기존의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을 배우라'는 뜻이 아님은 명백하다는 것을 다들 이해하실 것으로 압니다. (제가 틀렸나요?) 결국 홍교수는 대중들에게 내 이론을 읽어 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학계가 아닌 대중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부르짖으면서 호소한다면 저는 그에게서 황구라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습니다. 차라리 내 책이 재미가 있으니 읽어보라고 광고하는 거라면 더 낫겠습니다. 다행히 영어에 능통하셔서 영문으로 된 논문도 쓰셔서 서구학자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하셨다니 그것은 다행한 일이고 잘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놈의 나라가 서양에서 맞다고 하면 다 그냥 믿으니까. 한의학 빼고.)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편견일 수 있습니다만 문헌조사와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와의 비교 등에 있어서 더욱 더 치밀하고 엄격한 서구의 학자들이니 만큼 영문 논문에서는 좀 더 엄밀한 논증을 기대합니다. (이 단락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여 일본열도 정복설'에 대한 홍교수의 반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부여가 박살나던 때를 즈음해서 갑자기 백제가 팽창합니다. 백제를 세운 것은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맞습니다만 4세기 전례없는 확장을 이룬 백제의 지배세력은 온조의 직계후손이 아니라 부여와 관련있는 세력이고 백제의 왕통이 바뀌었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입니다. 근초고왕 이후의 왕들은 온조가 아니라 부여 구태왕의 후손이라고 하더군요. (이게 얼마나 신빙성 있는 학설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삼국사기 등의 사료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라는 것도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건국설화 3종세트 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나머지 둘은 온조 또는 비류가 부여에서 고구려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와서 백제를 세웠다고 얘기합니다. 김부식은 온조=주몽아들 설을 가장 믿을 만하다고 해서 정설로 내세웠습니다. 고구려도 부여에서 나왔지만 부여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던 반면 백제는 나중에 국호도 남부여로 바꾸고 수도 이름도 부여이고 왕실의 성도 부여씨로 정했습니다. 과연 고구려와 백제 중 누가 부여의 적자일까요?) 부여의 세력들이 떡하기 고구려가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만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짜잔~하고 나타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Ledyard 이론에 대한 홍교수 반론의 핵심인데 고대의 국경이라는 것이 오늘날 휴전선과 같이 칼같이 그어진 것도 아니고 기마병 위주의 군대라면 기동성을 이용해 금방 이동할 수도 있고 하니까 '한반도를 무인지경처럼 휩쓸고'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당시는 아직 고구려가 아주 강성해지기 전입니다. 광개토대왕이 태어날 무렵. 그리고 백제가 요서지역으로 진출했다는 때가 바로 근초고왕(346-375) 때입니다. 고구려가 떡하니 막고 있는데 백제는 어떻게 요서에 진출했을까요? 배를 이용한다고 해도 이미 당시 고구려는 요동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라이벌인 백제가 쉽게 요서를 먹도록 바로 옆에서 구경만 했을까요? 오히려 만주에 있던 부여가 모용선비에게 밀리자 먼 친척인 온조의 후손인 한강유역의 백제와 연합을 하고 가까운 요서로 내려갔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대쥬신' 어쩌고 하는 개소리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만 (대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 히틀러의 아리안 인종 이론과 뭐가 다른지...) 김운회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글 중에서 백제는 '반도부여', 야마토 일본은 '열도부여'라는 이론이 제가 본 이론 중에는 가장 그럴 듯해 보입니다. 제대로 된 사료 및 고고학 적인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 이상은 하지 않겠습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즉시 수정할 겁니다. 3. 중국의 동아시아 역사 왜곡설 > 내 생각으로는 동아시아 역사는 중국 중심으로 이천년 이상 왜곡이 되어 왔다. > 객관적인 사실은 중국 한족이 이민족에게 지배를 받은 기간이 지난 2천년 > 중국역사의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역사왜곡을 꽤 많이 해 왔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고 화북지역이 이민족의 지배를 1천년 이상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그러나 지난 이천년간 중국이 동아시아 역사의 중심무대였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중국의 일부라도 정복하지 않은 이민족이 동아시아 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고구려, 발해, 임진왜란 정도?) 한족이 지배하지 않는 시대였다고 해도 중국은 동아시아의 중심이었습니다. 한족이 피지배층이었다고 해서 역사에서 역할이 미미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정치권력 중심으로만 역사를 보는 과거 왕조시대에나 어울리는 역사관입니다. 중국역사학자들이 정복왕조를 세운 이민족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홍원탁 교수는 피지배층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 그 후 755-63년의 안록산-사사명 난을 전환기로 907년에 완전히 망할 때까지 > 당 제국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다. 그런 당나라를 온 세상의 사학자들이 > 얼마나 미화를 했나? 당나라가 후기 150여년간 혼란스러웠던 건 사실이고 또 잘 알려진 사실이죠. 역사학자들이 특히 중국역사학자들이 당나라를 미화하고 있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그게 단지 당나라가 초기에 돌궐, 고구려, 토번을 제압하고 수나라의 두배에 이르는 영토를 가진 대제국으로서 위용을 떨쳤기 때문일까요? 당나라의 국제적인 문화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틀을 제공했습니다. 당의 3성6부제만 해도 신라, 발해를 포함 많은 주변국들에게 받아들여져 오랫동안 영향을 끼칩니다. 고려와 조선의 중앙정치체제 역시 3성6부제의 수정된 형태로 볼 수 있고 이러한 견해는 역사학계의 주류 의견인 것으로 압니다. 심지어 관리들의 복식마저도 당나라 양식이 동아시아 전체에 퍼졌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당나라 때였습니다. CJKV 동아시아 유교문명의 기틀을 다진 것은 당제국의 문화수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자어 발음은 명, 청대 중국어보다 당, 송대 중국어에 훨씬 더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오류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수백년 후까지 일본은 중국인들을 唐人이라고 불렀습니다. 군사적으로 흔들렸다고 해서 당나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로마제국이 후대에 이민족의 침략으로 휘둘려서 명목상으로만 제국이었는데 그런 로마제국을 온 세상의 사학자들이 미화한다면서 비난하는 서양사학자가 있다면 그의 주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시겠습니까? 안-사의 난 이후 어떻게 흔들렸든 간에 당나라는 역사학자들의 미화를 받기에 충분할 만큼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동아시아 전체에 그토록 강력하고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문명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漢제국도 이런 면에서는 唐에게 완패입니다. 대단한 걸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까지 '美化'라고 하신다면 더 할 말은 없구요. > 그 이후를 보면, 명나라가 276년간 통치한 것을 빼고 한족이 제대로 중국대륙의 > 주인노릇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은 분석의 틀은 나 혼자 말하고 있는 > 것이 아니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내용을 담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이 비슷한 내용도 없다.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 '이 비슷한 내용도 없다'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더 지났기 때문에 이 발언이 최근 교과서에 관한 얘기라면 제가 교과서를 확인해 봐야겠죠. (저는 지금 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 교과서를 구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로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했던 세계사 교과서에는 틀림없이 송은 초창기부터 거란족의 요에게 밀려 지금의 하북성 지역인 연운16주를 빼았겼고 요를 몰아내려고 여진족의 금나라를 끌어들였다가 오히려 수도 개봉을 포함한 회수 이북을 모조리 금에게 빼았겨 강남으로 도망갔으며 결국 남송은 쿠빌라이 칸에게 정복당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청나라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라는 건 중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굳이 교과서를 뒤지지 않아도 다들 아는 사실이구요. 국사 교과서에도 짧게나마 언급이 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국과 그 주변 정세는 언제나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홍원탁 교수님은 저보다 연세가 훨씬 더 많으실 것으로 추측되는데 홍교수님이 중고등학교를 다니셨을 때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지 몰라도 제가 다녔을 때는 확실히 있었습니다. '이 비슷한 내용도 없다'뇨? 한국 역사 교과서가 중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홍교수님이 한국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교과서에 요, 금, 원, 청을 세운 사람들이 한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누락되어 있다면 저에게 반드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홍교수님보다 제가 먼저 교과서 시정을 요구하겠습니다. > 당 고종(618-26)이 수나라를 승계하고, 당 태종(626-49년)이 사방을 > 정복할 때 고구려에게는 크게 패했다. 몇 번을 졌어도 결국 당은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단 한번의 승리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 중국 한족은 이민족한테 침략과 통치를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정신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이 없었다면 당송8대가의 명문장도 아름다운 문인화도 청자도 성리학, 양명학도 다 없었겠죠. > 따지고 보면 중국이 지금처럼 영토가 커진 것도 원나라의 쿠빌라이칸과 >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청나라 건륭, 옹정, 강희 세 만주족 출신 황제들의 > 활약 덕분이다. 맞는 말입니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열 손가락에 들어갈 훌륭한 황제 셋이 청나라에 연달아 나와 150여년 간을 통치하면서 민생을 안정시키고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죠.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애초에 중국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뿐이겠죠.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청나라 영토에서 오히려 몽골공화국, 연해주, 대만이 빠져 있죠. (실수인지 의도적인 건지, 실수라면 홍교수의 실수인지 기자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건륭, 옹정, 강희'가 아니라 시대 순에 따라 '강희, 옹정, 건륭'으로 쓰는 것이 맞겠죠?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황제 자리에 있었던 할아버지 강희제의 61년 재위기간을 넘기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하여 재위 61년째에 아들 가경제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준 건륭제가 들으면 아무리 대청제국의 속국이었던 나라의 이름없는 선비가 한 말일지언정 자신을 할아버지보다 앞에 세우는 것을 보고 슬퍼할 겁니다.) 하나 딴지를 걸겠습니다. 쿠빌라이칸은 왜 나오죠? 명나라의 영토는 북송의 영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운남성 지역인 대리국(大理國)과 요동/요서의 일부 지역이 추가되었을 뿐. 쿠빌라이칸이 대리국을 정복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명은 그 정도의 영토를 가졌을 겁니다. 그걸 쿠빌라이칸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강희, 옹정, 건륭 황제 덕분에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이 만주와 내몽골과 신장과 티벳을 먹었다 수준과는 다른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만주, 내몽골, 신장, 티벳을 꽁으로 먹은 건 아닙니다.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이 있었고 몽골, 위구르, 티벳 모두 청이 몰락하면서 독립을 선언합니다만 그걸 모택동 군대가 진압하면서 장악한 겁니다. (제가 중국의 내몽골, 신장, 티벳 침략을 옹호한다는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 청나라 덕분에 역사적인 영유권 명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거저 먹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국이 지리멸렬했다면 다들 독립해서 소련 아니면 미국의 위성국가가 되었겠죠. > - 중국 한족이 동아시아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 > 그렇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치권력을 잡지 못하면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이룩해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건가요? 정말 궁금합니다. 이젠 아예 기자양반꼐서 먼저 나서서 추임새를 올리네요. > 지금 중국어의 표준말인 만다린어는 원래 요동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중국말이다. 처음 듣는 이론입니다. 요동지역의 한족이 만다린어를 쓴 건 맞습니다. 명대에 요동지역에 살던 한족이라면 대부분 북경 주변인 하북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일 테니까요. 청나라가 표준으로 삼았던 말은 당연히 수도 북경 지역의 말이었을테니까 비슷했겠죠. 그런데 제가 조사한 바로는 만다린의 기원은 명말청초보다 훨씬 더 오랩니다. 원대에 출간된 "中原音?"이라는 책이 만다린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원대니까 몽고말의 영향 어쩌고 하는 이론 역시 나올 수 있겠습니다만... -_-; 북경에서는 아주 먼 사천성도 만다린과 비슷한 말을 쓰고 있는데 12세기에 흑사병 때문에 사천성 인구가 많이 줄었을 때 화북지방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주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청나라 정부의 강요에 의해서 만다린이 퍼졌다면 북경에서 더 가깝고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교류가 더 많았던 상하이 주변 지역은 만다린과는 많이 다른 오어(吳語, Wu)를 쓰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분지 사천성이 북경어와 비슷한 말을 쓴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기 훨씬 전부터 만다린의 분포가 북중국에서부터 사천성을 포함한 중국 서남부에까지 이르렀다고 봐야 쉽게 이해되죠. 홍교수의 저 말은 마치 요동지역에서만 쓰였던 독특한 중국어 사투리가 만주족 덕분에 표준어가 되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중국사 왜곡 주장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하고 제 사견을 덧붙이겠습니다. 홍교수는 중국이 이민족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사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 적어도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교과서에서 똑똑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홍교수의 역사관은 왕조, 군사력, 정치권력의 주체가 어느 민족이냐를 따지는 문제에만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몽고가 정동행성을 설치해서 내정에 간섭하고 고려왕들은 모두 강제적으로 몽고 공주에게 장가들고 어렸을 때부터 볼모로 만주에 잡혀가 사는 바람에 고려말도 할 줄 몰랐던 고려말의 역사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고려민중과는 상관없이 몽고의 업적입니까? 여러 북방민족들이 오랜 기간 중국을 지배하고 한족 위에 군림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오랜 외세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이제 중국은 세계의 강대국인 반면 중국을 지배했던 유목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도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겁니다. 말타고 정복해봐야 그걸로 끝입니다. 결국 청나라는 짱깨들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죠. 어떻게 보면 19세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는 농경민과 유목민의 투쟁이었고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농경민이었습니다. 최후의 유목민 제국 준가르(Dzungar)를 박살내고 오이라트(서몽골)족 60만을 학살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족팔기군을 통해 더욱 강력해진 대청제국 군대였습니다. 생산력과 문화가 그 민족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말 잘 타서 뭐합니까. 홍원탁 교수의 동아시아 역사 인식은 우리가 역사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을 오히려 가리고 있습니다. 4. > 홍교수는 1981년 오사카대 모리시마 경제학 교수가 쓴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 > (Why Japan has succeeded)’란 책을 읽다가 일제 때 국민학교 역사 교과서에 > 나왔음직한 얘기를 그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모리시마가 고대에 마치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 같이 서술하는 것을 보고 > 한일 고대사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왜 관심을 > 가졌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 관심을 가졌는가'가 중요하지 않다뇨?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목적이나 동기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인지? 저는 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역사의 이해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신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것도 홍교수님의 학설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건 역사학자가 행사하는 폭력입니다. 관심이 없다면 배울 필요 없습니다.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역사학자가 할 일이지요. >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감정을 앞세워 대응하다가는 장기간에 걸쳐 > 조직적으로 왜곡된 논리에 어이없이 당하기 십상이다. 홍교수가 한일 고대사와 > 동북아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인식만이 >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구현한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홍원탁 교수가 감정을 앞세워 대응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아무리 미워도 (저도 밉습니다) 홍교수 수준의 엉성한 논리로 대응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겁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의 구현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은 맞습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그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민족의 구분이 꽤 오래 되었고 언어와 풍습이 차이가 커서 민족갈등이 폭발할 여지가 높습니다. 게다가 균형있게 세력판도가 나눠진 것도 아니라 중국이라는 괴물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그 주변 민족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죠. 그렇다고 해서 왜곡을 더 쉽게 들통나고 지적당할 더 허접한 왜곡으로 대응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