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5년 5월 29일 일요일 오후 11시 09분 38초 제 목(Title): 알렉산더는 정말 위대한 정복자인가? 영화마다 책마다 다들 알렉산더가 위대한 정복자라고 치켜세운다. 당시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세계를 정복했다고도 하고 (뭐... 서양애들이 알던 범위를 세계라고 착각하는 우월주의는 그냥 비웃으면서 넘어가 주자) 동서교통의 기반을 닦았다고도 하며 이집트 소아시아 아랍 메소포타미아 이란 인도까지 모두 정복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내가 보기엔 모두 개뻥이다. -_-;;;; 알렉산더가 했던 일이라고는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을 속공으로 침략해서 거기의 황제자리에 잠깐 앉았다가 일찍 사망한 것 뿐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제국의 대빵자리를 잠깐 가로챘을 뿐이며, 오히려 통일되어 있던 거대제국을 분열하게 만든 침략자에 불과했다. 이 주장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알렉산더가 침공하기 이전의 페르시아 제국의 규모를 알 필요가 있다. 로마가 엄청나게 높이 평가되는데 비하면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는 이상할 정도로 서양사에서 평가가 인색한 편인데, 기본적으로 이란고원에서 왕조가 발상했고 기원전 6세기 중엽에 키루스라는 훌륭한 왕때부터 정복전쟁을 시작해서 대왕이라고 불리는 다리우스 1세때에는 (알렉산더에게 패해서 나라를 말아먹은 다리우스 3세의 조상임) 폭발적인 팽창을 이루었다. 알렉산더가 침공할 때의 페르시아 제국의 범위는 오늘날의 국가구분으로 보면 터키,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수단,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예멘, 오만,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멘, 파키스탄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일대) 에 이르는 엄청난 것이었다. 지도 한번 펴놓고 봐라. 엄청난 땅이다. 이 시대에 로마나 유럽은 아랍인들이 보기엔 완전히 야만족의 땅이었고 경제규모나 문화수준으로나 정복할 가치조차 없는 깡촌이었다. 페르시아 인들은 실질적으로 당시에 알려졌던 세계를 정복했던 대제국이었다. 더구나 페르시아의 정치력은 상당히 우수해서 이 넓은 땅을 20여개의 주로 나누고 중앙정부에서 페르시아 귀족들로 구성된 지사들을 파견해서 다스렸으며 각 지역에 상당한 자치를 허용하고 각 민족의 문화적 독립성과 독자적인 언어의 사용도 관대하게 허용했다. (바빌로니아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의 귀향을 허락한 사람이 앞에 나오는 키루스 왕이다.) 더구나 페르시아 전역에는 이미 로마시대보다 수백년 앞서서 제국 전체를 연결하는 우수한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는 상업이 크게 진흥되고 지역간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로마에 대해 칭찬해 놓았던 것들, 여러 종족간의 도로를 통한 교역과 너그러운 지배에 의한 평화를 페르시아는 이미 로마보다 수백년전에 로마보다 더 큰 규모로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길(왕도)가 얼마나 잘 닦여있었는지, 오늘날까지도 서유럽어에서는 `페르세폴리스로 가는 길'이라고 하면 중요한 최고의 위치로 가는 과정이란 의미가 남아있을 정도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임.)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의 번영은 일순간이 아니라, 다리우스 1세때부터만 따져도 알렉산더 침공때까지 거의 200년 가까이 지속되어 있는 중이었다. 페르시아가 딱 한가지 실패한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뭐냐하면 그리스를 공격했다가 개피본 일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마라톤 전투(1차)와 살라미스해전 (2차)에서 패하는 바람에 그리스는 먹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가 간신히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지 결코 페르시아 제국에 타격을 가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고, 페르시아는 막강한 육군의 힘으로 결국엔 소아시아에 있던 그리스의 식민지들을 모두 손아귀에 넣어 버렸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페르시아 제국 전체의 크기에 비해 그리스는 정말 변방의 콩알만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알렉산더가 했다'는 일을 살펴보자. 페르시아의 영토였던 오늘날의 터키 땅에 상륙해서 쌈을 몇번 한 다음에, 터키와 시리아의 경계부근인 이수스에서 당시 페르시아의 왕중왕이던 다리우스 3세의 본군과 맞닥뜨려서 기병을 이용한 기습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다음에는 이집트에 잠시 들러서 무력시위를 좀 한 다음에 서쪽으로 밀려가는 다리우스를 따라가며 계속 공격해서 죽죽 밀고나가 페르세폴리스까지 점령해버렸다. 이때쯤 다리우스 3세가 부하에게 암살되고, 알렉산더는 지가 페르시아의 왕이라고 자칭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지방정권 일부가 반항하는 것을 진압하는데 시간을 보낸 후에, 알렉산더는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오늘날의 파키스탄)까지 밀고 들어갔는데 당시 인더스 강 유역은 페르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되 실직적으론 인도인 왕이 통치하는 자치지역 비슷한 상황이었고, 알렉산더가 한일도 한두번 싸움한 다음에 페르시아에 대해 인도인이 바치던 정도의 충성 - 왕은 계속 인도인이 하되 똘마니 부하로 말 잘듣는다는 -을 바친다는 협정을 맺고 돌아온 수준이다. 그러고선 페르세폴리스와 수사로 돌아와서 금방 죽어 버렸다. -_-;;; 멀쩡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갈갈이 쪼개어져 버렸고 로마와 파르티아 제국에 의해서 양분될때까지 수백년간 분열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알렉산더가 한 일이라곤 백년도 넘게 더 존재해 왔던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해서 그 왕의 자리에 잠간 앉았던 데에 불과하다. 콩알만한 그리스를 더하긴 했으나, 페르시아 제국 하나만 격파했을 뿐이지 다른 나라를 더 정복했던 것도 아니고 `정복자'란 칭호에 걸맞게 분열되어 있던 여러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래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고 알렉산더 정복 이후에도 별반 반발하지 않았던 수단이나 아라비아 반도 (오늘날의 사우디 예멘 아랍에미리트 쪽)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정복과 통일은 페르시아 인들이 이미 150년전에 다 해놓았는데 알렉산더는 그 왕자리만 살짝 대신해서 차지한 것이다. 그나마 일찍 죽는 바람에 멀쩡하던 제국만 붕괴시키고 분열만 조장해 놓았다. 어떤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이렇게 큰 제국을 이렇게 신속하게 붕괴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페르시아의 길이 너무 잘 닦여 있어서 침략군이 한번 기세를 타면 그 길따라 손쉬게 진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를 통일시킨 것은 알렉산더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알렉산더 정복이 바꾼 것이라고는 이러한 번영하던 교역에 그리스인을 참가시켰다는 것과 지배층에 그리스-마케도니아 인을 더했다는 점 뿐이다. 따라서 알렉산더의 정복이 통일을 통해서 교역을 증진시켰다는 칭송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교역은 이미 페르시아에 의해 달성되어 있었으며 알렉산더는 거기다가 그리스 인이라는 소수의 역할을 더했을 뿐이다. 알렉산더 본인도 그리스나 마케도니아에서 온 정복자가 아니라, 아케메네스 왕조와 다리우스 3세의 뒤를 잇는 새로운 페르시아의 왕이 되려고 애를 썼다. (이것때문에 그리스에서 데리고 온 부하들과 충돌이 엄청 심했다.) 알렉산더가 하고 싶었던 것은 후진지역 마케도니아와, 수준은 높았지만 콩말만한 그리스를 벗어나 세계제국이던 페르시아의 왕중왕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일뿐, 후세의 가필처럼 동양과 서양의 융합엔 별반 관심 없었다. 서양문명의 원류는 그리스이고, 그리스는 자기네를 침략하려던 페르시아에 대해 적대적으로 기술한데다가 엄밀하게는 그리스인이 아니지만 그리스인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면이 있다. 당연히 그 문명을 이어받은 서양사에서도 알렉산더는 과대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페르시아나 아랍의 입장에서 알렉산더를 평가해 보자. 이미 그리스만 빼곤 당시 알려진 전세계(?)를 통일하고 도로를 닦아서 교역과 평화로 번성하던 페르시아 제국을 기병의 속공으로 침략해서 분해시켜놓은 것 외에는 업적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입장에서 서서 본다면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도아케르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알렉산더는 정복왕도 아니고 통일을 이룩한 사람도 아니며 그저 존재하던 제국을 뽀샤놓았을 뿐이다. -_-;;; 알렉산더의 군사적 업적만 해도 그렇다. 소수의 그리스-마케도니아 연합군만으로 대제국 페르시아의 엄청난 쪽수를 격파한 업적이 대단하기는 하다. 그러나 농경민 보병 중심의 대제국이 소수의 야만(?) 기마병에 의해서 기습적으로 붕괴하는 일이 어디 한두번인가? 중국사에 익숙한 사람은 알 것이다. 흉노족부터 시작해서 만주족에 이르기까지 스피드와 기동력을 갖춘 기병부대가 쪽수만 많았지 둔하기 짝이없는 중국의 보병부대를 박살내면서 제국을 무너뜨리거나 황제자리를 꿀꺽했던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흉노의 족장 유연이나 청나라의 누르하치를 위대한 정복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중국부터 유럽까지 유라시아 전체를 정복한 징기스칸과 그 후계자들의 원나라만이 그런 칭호를 얻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알렉산더가 한 일이라고는 기병을 중심으로한 속공을 내세서 침략해서 페르시아 제국 딱 하나만 먹은 다음에, 뒷감당도 못하고 죽어서 멀쩡하던 제국을 뽀샤놓아 버리고 그리스 인들에게만 쪼끔 좋은 일 시켜준것 밖에는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정복자도 아니고 위대한 인물도 아니며 세계(?)를 통일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당시 문명의 중심에서 바라본다면, 오도아케르나 누르하치처럼 후진지역에서 힘만 믿고 처들어와서 제국을 붕괴시켜버린 문명의 파괴자에 불과했다. 덧붙이자면,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아주 박살내 버렸다. 언제나 아시아 (여기서 아시아는 유럽인들과 접촉했던 서아시아를 말함)에게 공포감을 가지고 있던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위대한 영웅일지 몰라도, 세계사 전체를 놓고 봤을땐 정복왕은 커녕 파괴자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