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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4년 1월 16일 금요일 오전 12시 57분 12초
제 목(Title): Re: [질문] 무신정권이 왕조가 못된 이유?



저도 고려의 무신정치나 일본의 막부정치나 본질적으론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무신정권이 왕조가 되지 못한 이유도 일본에서 천황이 없어지지 않고

막부제도가 생긴 이유와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대로 무신들이 직접 잡기에는 권위가 부족하니까

허수아비 왕을 내세우고 자기들은 실권을 휘두르는 것이 더 편했을 거라는..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때가 거의 비슷

합니다. 정중부의 난은 1170년,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은 1192년.

그래서 저는 귀족적인 색채가 강하고 호족연합적인 성격을 띄는 중세 

국가가 전성기를 지난 후에는 역사적인 필연(?)으로 군사정권이 등장하게 

되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증명할 능력은 없으나..)


오히려 저는 한국과 일본이 왜 무신정권 이후에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게

되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군사정권이 메이지 유신

때까지 700여년이나 계속됐는데 한국에선 불과 100년이 안되어서 붕괴했지요.

저는 그 이유가 외세의 침입여부라고 생각합니다. 무신정권이 붕괴된 순간은

최씨집안의 4대째가 몽고에 항복하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때부터 

였습니다. 실질적으로 무신정권의 붕괴 자체는 몽고의 침입으로 정부가 

강화도로 도망가면서부터 시작되었고요. 

일본의 막부체제가 붕괴한 때도 막부 창건이래 처음으로 외세에 정부가 굴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전부터 허약해질대로 허약했지만 결국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는 동경만에 미국전함이 나타나 개국을 강제했을때 치명타를 입었지요.

다시말해서 왕을 허수아비로 남겨두었던 숨은 실세들은 더 막강한 외세의

간섭 아래에서는 견디지 못했던 것이고, 일본에서 막부체제가 수백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사이에 일본이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거나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고려의 무신정권과 일본의 막부체제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신정권은 결국 몽고에게 손을 들었지만, 가마쿠라 막부는 

(순전히 태풍 덕이긴 하지만) 몽고를 막아냈던 것이죠. 덕분에 가마쿠라 막부

자체는 오래 못갔지만 막부란 형식의 체제 자체는 오랜 수명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고려에서는 몽고 때문에 무신정권이 붕괴했고 실질적인 몽고의 속국이

되어 왕의 권위가 갈수록 추락했습니다. 고려가 잘나갈때는 황제를 칭했었

는데, -조 또는 -종 이던 왕의 칭호도 충*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왕비가

몽고인으로 지명되다 보니 갈수록 왕의 핏줄이 몽고족화 되어가는 바람에 

고려왕이 전처럼 확고한 권위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론

몽고에 의한 이런 왕의 권위약화가 (권력의 약화가 아니라) 이성계의 역성

혁명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무신정권이 세워지던 때의 고려황제는 몇대째 권력을 휘두르며 한반도의

중세의 번영기를 이룩했던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이성계가 등장하던 때의

고려왕은 몽고의 똘마니에 핏줄도 고려인인지 몽고인인지 구분이 안가는 

상태였으니 제거해 버려도 무신정권 보다는 정치적 부담이 덜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한가지 첨언하자면, 왕조를 갈아치우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계처럼 또는 조선시대의 수많은 역적모의(?)처럼 힘을 가진

신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을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정치적인 부담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배신자로 찍히기 

때문에 앙으로 군림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충성심을 얻기 어렵단 

이야기죠.

자기가 왕으로 모시던 사람을 배신해서 등뒤에서 찔러죽인 사람이 `인제

내가 왕이다'하면 그 사람을 따르는 이가 몇명이나 될까요? 

왕조를 갈아치우는 또하나의 방법은 중앙정부로 부터 떨어진 지방에서 

어떤 명분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켜서 최소한 일정 지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다음 다른 지방과 정부군을 무력으로 격파하여 냉랭하게 실력을 보인 다음에,

그 실력을 바탕으로 왕조를 새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주로 중앙정부의

권위가 지방에 미치지 못하는 혼란기에 나타나는데, 반란자가 왕의 가까운

신하가 아니기 때문에 배신자라는 정치적 부담이 훨씬 적고, 중앙정부군과 

싸워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실력'을 보여줘서 권위를 세울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2번째 방법에 의한 왕조 교체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왕조교체가 가장 빈번했던 나라가 중국인데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혼란기에 단명했던 왕조 몇몇을 제외하면) 중국 전체를 장악했던 왕조는

대부분 지방의 세력이 들고 일어나서 중앙정부를 군사력으로 전복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연 경우이지, 중앙정부의 권력자가 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국왕의 신하였던 자가 황제를 배반하고 

찬탈을 통해서 제손으로 황제가 되어서 중국전국을 장악했던 예는 

아마 송나라의 조광윤이 거의 유일한 예일 것입니다. 

(조선이 국가체제나 사상 면에서 중국의 송나라와 매우 유사했다고 간주되는데

이런 면에서도 닮았을지도...)

한반도에서도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가 바뀌는 과정을 보면, 두번째 형태

입니다. 왕건은 신라의 벼슬아치가 아니었고 개성 일대의 세력을 규합해서 

여타 지방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거나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신라를 흡수한

것입니다. (물론 궁예에게는 왕건이 쿠데타였지만 궁예는 미처 권위있는 

왕조를 세우지 못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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