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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
날 짜 (Date): 2003년 12월  3일 수요일 오전 12시 30분 23초
제 목(Title): News]공주 수촌리 고분6기서 5세기 백제유�


경향신문  2003.12.2(화) 23:49


공주 수촌리 고분6기서 5세기 백제유물 쏟아져

이번 공주시 수촌리 백제고분 발굴은 일단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이후 가장 많은 
금동제 유물이 출토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 고분에서는 금동관모 2점, 
금동신발 3켤레 외에도 환두대도 3점, 귀달린 청자호·흑유도기 등 중국제 
도자기, 백제토기 등 30여점의 유물이 함께 출토됐다.

금동제 유물들이 발견된 곳은 목곽묘 1호분(묘광 기준 5m×3.8m)과 횡구식 및 
횡혈식 석실분. 목곽묘에서는 금동관모와 신발이 세트를 이룬 채 출토됐다. 또 
횡구식 석실분에서는 금동신발 1켤레가, 횡혈식에서도 금동신발 1켤레가 관모와 
세트를 이뤄 발견됐다. 아직 수습이 끝나지 않은 이들 금동신발 3켤레 중 
일부에서는 T자형 무늬와 용무늬 등이 확인됐다. 백제 금동신발의 경우 
무령왕릉 출토 2켤레를 비롯, 송산리 고분·익산 입점리 1호·나주 복암리와 
신촌리 등에서 각각 1켤레씩 발굴된 바 있다. 금동관모는 익산 입점리 고분,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 출토품이 있을 뿐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의미는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영역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 발굴단의 이훈 책임연구원은 “백제는 475년 고구려군에 의해 
왕(개로왕)이 전사한 뒤 아들 문주왕이 급히 웅진으로 옮겼다”면서 “백제가 
이렇게 창졸간에 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공주나 익산 입점리 같은 지방에 
관리를 파견했거나, 혹은 지방세력에 위세품(威勢品)을 하사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연구해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문주왕과 연결된 지방세력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온조왕이 AD 25년 충남 
아산지역에서 5일동안 사냥할 정도로 한성백제의 위세가 남쪽으로 뻗쳤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도 “공주는 
물론 익산 입점리에서도 5세기 중·후반의 금동제 유물이 나오는 것은 백제의 
영역이 이른 시기부터 금강유역까지 확장됐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HOGWARTS SCHOOL of WITCHCRAFT and WIZARD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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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pleased to inform you that you have passed every N.E.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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