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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3월  9일 토요일 오후 07시 37분 55초
제 목(Title): 이정우/ 르 코르뷔지에 


출처: 한겨레 21

[ 이정우의 철학카페 ]  2002년03월06일 제399호   
 

인간의 체취를 건축에 새긴다

현대건축의 선각자로 원초적 모델 제시… 단순함의 미학에 구조 지배하는 
기능성 추구 

인간은 형태(morphe)를 사랑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보는 것을 즐기는 동물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시각은 그 자체로서 즐거움을 준다. 우주는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다. 길게 올라가고 또 가지를 치는 나무의 형태, 
나선형으로 구부러져 올라가는 소라의 형태, 매우 불규칙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역동적인 모양새들을 만들어내는 구름의 형태 등, 형태들은 매우 
단순한 것(보름달)에서부터 극히 복잡한 것(생명체의 형태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형태들로 가득 차 있다. 그 형태들을 관찰하고 감상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재현하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즐거움들 중 하나일 것이다. 


현실에 뿌리내린 존재에 민감한 예술 



 
사진/ 롱상 교회, 1965년 프랑스 르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두 가지 유형의 벽면(얇은 조개껍질같은 벽과 육중하고 
모서리가 예리한 벽), 다양한 모양의 창문, 배를 연상시키는 육중한 지붕 등이 
특징이다.


우리가 오늘날 매우 심층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형상’(形相)-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 은 
처음에는 매우 구체적인 공간적 모양새를 뜻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알아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형태를 통해서이다. 나무가 공처럼 동그랗거나 달이 
막대기처럼 길어진다면, 사물들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알아본다는 것은 그 
알아-봄의 대상이 어떤 형태론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바로 
그 형태가 이데아요 에이도스이다. 그 개념이 발전해 나중에 사물의 ‘본질’을 
뜻하게 되지만, 본질의 원초적인 형태는 바로 ‘형태/모양’인 것이다. 

형태, 모양을 추구하는 것은 곧 사물을 고체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고체야말로 형태론적 안정감을 가지고 있으며 지성의 분석을 허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액체는 공간적 안정감 대신 힘과 역동성,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 고체적 존재방식과 액체적(나아가 기체적) 존재방식은 세계의 근원적인 
두 존재방식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철학 역시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을 
형성해왔다. 니체, 베르그송 이후 흐름과 시간을 강조하는- 고체적, 공간적 
제한과 분석적 사유의 딱딱함을 경고하면서 생성, 지속, 과정, 차이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는가 하면, 세계의 흐름과 운동 속에서 일정한 형태를- 
구조를 밝혀내고자 한, 복잡한 현실을 명료한 인식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 
흐름도 있다. 구조주의, 톰 등의 사유가 그렇다. 또 과학은 그 자체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형태를 지향한다. 

건축이라는 예술은 그 본성상 고체의 논리를 겨냥한다. 물 위에 떠서 살 수는 
없기에 말이다. 건축은 고체적 예술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건축이야말로 
형태라는 존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디지털의 
흐름 속으로, 정신없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공허한 가상현실로 흘러가버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건축이야말로 믿음직한 고체적 안정감을, 물질적 현실성을 
고수하는 가장 대표적인 담론일 것이다. 이 점에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디지털 문화를 추종해가려는 일부 경향은 유감스러운 것이다. 
건축만큼 ‘현실’에- 존재론적인 현실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까지도- 뿌리 둘 수밖에 없는 장르도 없기 때문이다. 


기능적 건축에 정신성 부여한 건축가 



 
사진/ 1925년, 파리 엑스포에서의 에스프리 누보관. 


현대건축을 구축한 대표적 인물들 중 한 사람인 르 코르뷔지에(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자느레)는 건축에서 형태의 구축성, 현대사회라는 시대에 건축이 
가지는 기능성을 추구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런 현실적 추구 위에다가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성까지도 부여하고자 했던 건축가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젊은 시절의 여행에서 특히 그리스에 심취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젊은 르 코르뷔지에는 넋을 잃었다. 이것은 시사적이다. 바로 
그리스 문명이야말로 ‘형상’ 개념을 탄생시킨, 시각과 빛의 문화이겠기에 
말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지중해의 건축물들에서 “단순한 기하학이 정사각형, 
입방체, 구형 등의 입체들을 지배한다”는 미학적 통찰을 얻어낸다. 
유클레이데스와 플라톤을 이어받은 이 통찰은 르 코르뷔지에 작품을 평생 
동반하게 된다. 그는 건축의 원초적인 모델로서 “세개의 평면, 여섯개의 기둥, 
하나의 계단”이라는 모형을 제시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온갖 장식들과 
불필요한 장치들로 꽉 차 있는 구식의 건축을 비판했으며, 간명하고 확고한 
현대건축의 기본 개념을 확립했다. 르 코르뷔지에야말로 현대건축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물론 오늘날 이런 관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미 지나간 미학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새로운 바로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미학에서 또 하나의 핵심개념은 기능이다. 현대성의 
찬미자인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의 기계문명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인식론적 
견고함, 미학적 튼실함에 누구보다도 경도된 인물이다. 그는 철근 콘크리트를 
과감하게 받아들였고, 자동차를 열렬히 애호했다. 그에게 건물의 “외관은 
내부의 효과”이다. 즉 구조는 기능의 효과이다. 이것은 생물학, 즉 
비교해부학을 연상시킨다.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과 빠른 다리를 가진 것은 
그가 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호랑이는 그런 구조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육식을 하게 된 것이다. 어느 것이 옳으냐를 두고서 오랫동안의 
생물학적 논쟁이 있었다. 구조와 기능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영원한 존재론적 문제이다. 각 인물, 각 담론들은 나름대로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단호하게 말한다. 기능이 구조를 지배한다고. 


왜 3류 르 코르뷔지에 미학만 남았나 


기능을 중시한 그가 다용도 주택이나 아파트, 대형 주거단지, 도시계획에 
열정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우리는 3류 르 코르뷔지에 미학으로 가득 
차 있는 건물들을 도처에서 보고 있다. 오늘날의 현대성, 현대건축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개념들이 깃들어 있지만 그 개념들이 훌륭하게 구현된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낙원상가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최근에 색칠을 
엉망으로 해서 보기 싫어졌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인도의 계획도시 
찬디가르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때문에 그의 생각이 충분히 구현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그의 야망을 대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능만을 추구했던 메마른 현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기능을 
중시했지만 거기에 늘 ‘정신성’을 부여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가 
건축인일 뿐만 아니라 화가이기도 하며, 또 상당수의 저작을 남긴 문필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롱샹 성당은 이런 그의 노력이 빚어낸 
걸작들 중의 걸작이다. 종교적인 정신성을 고도의 현대적 감각으로 빚어낸 이 
건물에서 우리는 르 코르뷔지에 미학의 절정을 본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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