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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2월 13일 목요일 오후 07시 27분 00초
제 목(Title): 이정우/ 네델란드 정물화 


출처: 한겨레 21

http://www.hani.co.kr/section-021083000/2001/12/021083000200112120388024.html
상징의 해석에서 기호의 배치로

이정우의 철학카페 8|네덜란드 정물화 
중세의 ‘신의 섭리’를 뛰어넘는 근세적 담론 공간의 탄생 



 
사진/ 보스카르트 <벽감속의 꽃 정물화> 64×45cm 헤이그 미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어린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작동하는 것은 지시 행위이다.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그건 꽃병이야”라고 대답한다. 이런 언어 
습득 행위에는 기호와 사물이 일대일 대응한다는 의미이론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차 배우게 되는 것은 그 
‘지시’(reference)라는 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명사에 하나의 개별자가 대응하던 단순 구조는 깨지고, 이제 명사가 지시하는 
것과 형용사가 지시하는 것, 동사가 지시하는 것이 구분된다. 사물, 성질, 
사건이 범주화되는 것이다. 추상명사, 집합명사, 고유명사, 일반명사, 물질명사 
등이 구분되면서 ‘사물들’의 존재론 또한 넓어지고 복잡해진다. 어린아이들은 
말과 사물, 경험과 개념이 관계 맺는 방식들을, 즉 몸과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담론의 공간을 조금씩 익혀간다. 


어떻게 담론의 공간에 접근할 건가 


예술을 비롯해 인간이 하는 모든 담론적 행위들은 담론의 공간을 매개해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한 시대, 한 문화의 특정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 담론이 그 안에서 배태되고 형성되고 변환된 담론의 공간/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 말과 사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할 때이다. 예술사를 이해한다는 것도 결국 
예술과 상관적인 담론의 공간이 형성되고 변환되어온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담론의 공간은 등질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한 시대, 한 문화의 모든 
분야들을 조망할 수 있는 메타적 틀은 좀체로 얻기 힘들다. 그러나 한 담론의 
공간이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불연속으로 구성된다면, 담론의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식론적 층위(캉길렘)에서 
담론의 공간에 접근하는가이다. 우리가 매우 큰 층위에서 서구문화에 접근할 
경우, 근세적인 담론 공간의 탄생은 상징의 해석에서 기호의 배치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호는 상징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기호(좁은 의미의 기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상징이란 지시의 일의성이 깨지고 다의성이 성립하는 기호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할 때 ‘비둘기’는 특정한 종류의 새만이 
아니라 평화라는 추상적인 존재도 지시하게 된다. 하나의 상징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숨겨진 의미)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석학이라고 한다. 반면 하나의 기호가 정확히 하나의 대상만을 지시할 때, 
좁은 의미의 기호(이하 지시-기호라 부름)가 성립한다. 이때 한 지시-기호의 
의미는 고정되기 때문에 좀더 문제시되는 것은 여러 지시-기호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이다. 해석학은 상징의 숨겨진 의미를 수직으로 파내려간다. 
지시-기호들의 이론은 지시-기호들의 공간적 배치를 수평적으로 확인해간다. 
서구 근세문화의 탄생은, 매우 복잡하고 이질적인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상징의 해석에서 지시-기호의 배치로의 이행이 담론 공간의 변환을 핵심적으로 
말해준다. 


기호학적 사유 거쳐 과학적 담론으로 



 
사진/ 위로부터 브뤼겔 <꽃 정물화> 1606. 65×45cm. 밀라노 성 암브로시우스 
미술관| 게스너 <아이리스> 예를룽엔 대학 도서관| 후프나겔 <불의 삽화> 
워싱턴 국립미술관 


중세의 사유는 상징의 사유이다. 세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창조되었다. 그리고 
신의 섭리는 사물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사물들은 그 자체 언어였다. 말과 
사물이 분리되기 이전에, 이 세계 자체가 복잡한 상징 체계였다. 따라서 그 
상징들의 의미를 읽어낸다는 것은 곧 신의 섭리를, 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중세의 서구인들은, 나아가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의 
서구인들까지도 세계를 신의 섭리의 ‘나타남’(顯現)으로 본 것이다. 세계는 
거대한 상형문자이자, 신의 섭리를 연기하는 ‘세계-극장’(Theatrum 
Mundi)이다. 중세 예술이 얼핏 생각하기와는 달리 매우 역동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중세인들의 사유는 오늘날의 기호학적 사유를 통해서 과학적 
담론으로 화했다. 

따라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관류하면서 흐르는 굵직한 한 사유 
문법은 알레고리, 유비, 유사성, 공감과 반감, 조응 등이다. 사물들은 그 
자체의 의미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말하고(al-le gorie), 대우주와 
소우주, 호두와 뇌, 고딕 성당과 스콜라 철학 등등 모든 것은 유비를 통해서 
사상(寫像) 관계를 형성하며,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인간과 동물, 숫자와 
사물 등등은 유사성을 통해서 복잡하게 얽히며, 비슷한 사물들끼리의 공감과 
상반된 사물들끼리의 반감이라는 정(情)의 사유와 느낌이 담론들을 지배하며, 
달과 눈동자, 수염과 풀 등이 서로 조응한다. 엠페도클레스의 
지수화풍(地水火風), 피타고라스의 수들, 사계절과 여섯 방위, 오감(五感), 
색깔들, 인간의 신체 등등 모든 것들이 다의적인 의미들의 연쇄고리로 엮이면서 
거대한 상응 체계(system of correspondance)를 형성했다. 상징 해석학의 
세계는 충만한 의미로 출렁이는 낭만적 세계이자, 엉뚱한 유사성이 넘쳐나는 
허구의 세계이기도 하다(“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르네상스 시대의 회의주의와 박학(博學), 상대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서구 문화사의 시간을 날카롭게 쪼갰다. 젊은 
데카르트의 처녀작이자 그의 기본적인 사유가 밀집해 있는 <정신 지도를 위한 
제규칙>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들이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할 때면, 그들이 구분되는 경우에서조차도 그 하나에 관해 참이라고 인식된 
것을 다른 하나에도 귀속시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데카르트는 유사성을 
통한 의미의 무한한 증식에 제동을 걸고, 사물들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에 대한 
정확한 측정을 통해 ‘명료하고 분명한’ 인식에 도달하고자 했다. 데카르트의 
기획이 좀더 경험적인 형태로 전환되었을 때 가시성(visibilite)을 기반으로 
하는 고전 시대 특유의 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꼼꼼한 관찰에 따른 정교한 그림 


꼼꼼하게 보기에 기반한 가시성의 담론들은 식물학과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그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식물들에 대한 꼼꼼한 관찰, 행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구분들을 행하기, 관찰된 가시적 성질들을 배치하기(‘계통학’의 성립) 
같은 식물학적 태도는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브뤼겔(1568∼1625), 보스카르트(1573∼1621)의 정물화는 ‘명료하고 분명한’ 
관찰을 통해 꽃들의 가시적 성질들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냈다. 
린네의 식물학 도감을 연상케 하는 게스너(1516∼1565), 후프나겔(1542∼1600) 
등의 ‘사원소’(四元素) 그림 역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그림들은 또한 상징으로서 존재했다. 상징의 해석과 
지시-기호의 배치가 공존했던 것이다. 18세기 계몽 사상이 등장해서야 비로소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를 관류하면서 줄곧 이어오던 상징의 해석학은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elandamou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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