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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2월  4일 화요일 오후 01시 17분 20초
제 목(Title): 조우석/서평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출처: 월간중앙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진짜 커밍스’의 시선

조우석의 독서일기

 
 

 
 


 올초 지명도 높은 미국인 변호사 제프리 존스(48·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펴낸 신간 ‘나는 한국이 두렵다’(중앙M&B)의 경우 한국의 앞날과 관련해 
장밋빛 전망을 들려줬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직전 한 한국인 저술가가 
펴낸 책이 제목 그대로 ‘한국호 침몰-이대로 가면 진짜 망한다’(지만원 지음, 
현암사)라고 돼 있었던 것과 정반대에 속하는 것이 거의 환상적 그림에 속한다. 

이를테면 ‘한국경제는 확실히 뜬다’는 것인데, 그저 대강 뜨는 정도가 아니라 
아시아 대표주자로 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그는 한국호(號)란 
2025년 전후 슈퍼파워 미국에 제동을 걸 ‘새로운 세상의 빅브라더’라고까지 
언명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존스는 ‘아시아를 둘러봐도 그런 역할을 맡을 나라가 한국 말고는 없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존스는 이렇게 분석을 한다. ‘일본은 기업가정신이 취약하고, 
잘 나가는 싱가포르 역시 도시국가의 한계가 분명하다. 중국? 아직은 그 잠재적 
힘이 현실화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대신 한국은 환태평양의 한복판에 있는 
데다 닷컴기업과 굴뚝산업이 조화를 이뤄 유리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물론 저자가 정신없이 우리를 띄워준 것만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통신은 AOL 하는 식으로 한 분야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핵심역량 구축이 필수이며, 그것은 삼성·현대·LG·SK 그 
누구라도 시대의 흐름만 명쾌히 파악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운을 
뗀다. 우정어린 충고임에 틀림없다. 어쨌거나 이 책을 들여다보면, 존스는 
청국장을 즐기고, 한국 특유의 정(情)의 문화에 푹 빠져 사는 자신의 삶도 담고 
있어 관심있게 볼 만하다. 

한인 교포2세가 바나나라면, 자기는 속이 노란 달걀족이라고 고백하는 이 
한국통의 못말리는 응원은 과연 고맙다. 덕담에 속하는 그런 말은 그러나 
정교한 분석이 상대적으로 덜한 외국 법률변호사의 ‘응원’으로 들으면 충분할 
노릇이다. 즉 그 말은 ‘얼큰한 말의 매운탕’ 정도로 생각해야지 술로 알고 
들이킬 수 없다고 보는 쪽이다. 

자, 이번에는 사회과학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의 ‘응원’이다. 커밍스가 
누구인가. ‘한국전쟁의 기원’ 등 한국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온, 
그래서 국내의 역대 정권에 반대해온, 북한을 방문하기도 한 좌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유지해온 대표적인 미국인 학자가 아니던가. 

그런 그는 알고 보면 한국 현대사에 관한 가장 방대한 저술을 펴낸 외국 저술가 
중 한명으로 꼽히고, 어쨌거나 한국학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대표적인 사람으로 
꼽힌다. 평화봉사단으로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딘 1967년 이후 한국 현대사와 
한·미 관계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국내 학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주인공이다. 

그 결과 두세달전 ‘고개숙인 수정주의’라는 문제적 저작을 펴낸 전상인 
교수의 표현대로 1980년대 이후 국내 학계는 현대사의 해석과 관련해 ‘커밍스 
콤플렉스’와 ‘커밍스 알레르기’라는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심리상태를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커밍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펴낸 책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한 틀과 시야는 제프리 존스의 ‘덕담’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쨌거나 그가 펴낸 책의 우리말 번역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로 돼 
있지만, 원제가 앞서 제프리 존스의 경우와 유사한 분위기라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KOREA’S PLACE IN THE SUN’. 원서의 제목에서 한국을 ‘해 뜨는 
나라’의 일원으로 묘사한 것이다. 본디 1997년도 저작으로 한국어판 이전에 
미국의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돼 미국인 독자 일반을 위해 만들어진 책에 붙어 
있는 이런 제목은 무슨 의미이고 어떤 복선을 깔고 있을까. 

아마도 국내 일반의 독자들이 보면 감동적으로 들릴, 이런 말을 커밍스는 
던진다. 책의 맺음말 대목이다. 필자의 경우 이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가졌음을 고백한다. 
‘한국은 (미국 등 제1세계에)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며, 세계는 이제 
한국인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있는 참이다.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대로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보통사람들의 위상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단한 가족애와 교육의 미덕에 대해 놀라운 믿음을 지닌, 기백이 
넘치고 근면하며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도자로부터 좀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고,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간여해 왔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인을 모르는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여때껏 받아온 대접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724) 

앞서의 존스와는 또 다른 뉘앙스일 수밖에 없는 커밍스의 의도는 말하자면 이런 
얘기로 요약된다. 그가 구사한 용어인 ‘태양’ 혹은 ‘태양계’란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산업화된 선진국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커밍스의 말로는 
현재 일본만을 태양의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이야말로 얼마 
전부터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등과 달리 근현대는 물론 고대사까지 포괄하는 이 책은 
비교적 넓은 시선으로 한국과 한국사회를 이렇게 조망한다. 물론 책의 
서문이라서 덕담의 분위기를 상당부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감안해 접어 들을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아온 커밍스의 이미지와는 다른 따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의 위상을 잠시 외부의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는 대목을 축약해 인용하려 한다. 

‘한국은 중요하고 선진적이며 의미심장한 나라다. 비록 제국주의 시대에는 
고래 등살에 낀 새우였을망정, 또 냉전시대에는 강대국들 사이에 양쪽 볼이 
맞닿을 정도로 옴쭉달싹 못하게 끼어버린 약소국이었으며, 한국전쟁 후에는 
가난하고 분단된 국가였을망정 이제는 세계 속에서 적절한 위상을 다시 차지한 
나라인 것이다. 한국은 대략 영국만한 크기에 남북을 합쳐 통일독일의 인구에 
맞먹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 


브루스 커킹스에 대한 오해와 신화 

만약 한국이 중국에 붙어 있는 반도 모양의 갑(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일본이나 영국을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듯 말이다.…근대적인 것들은 우월성의 표시가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저울에 새겨지는 눈금과 같은 것이다. 한국은 그 저울의 
맨밑바닥에서 20세기를 시작해 거의 꼭대기에서 20세기를 마감했다.’ 

따뜻한 시선과 덕담에 취하지는 말 일이다. 역시 커밍스가 커밍스인 만큼 이 
책은 그러나 상당히 엄격한 학술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주 등을 생략해 
일반이 읽도록 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술 넘기기 어려운 정교한 서술을 하고 
있고, 커밍스의 비판적 시선이 살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외양은 고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전개 일반을 다룬 총제적인 
서술이다. 전체 10개장 중에서 앞의 2개장에서는 한민족의 기원과 근대 
이전까지의 역사서술을 하고 있다. 단군신화가 빠질 수 없으며,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를 매우 잰 걸음의 서술로 조망한다. 당연히 자기 전공이 아니라는 
고백과 함께 다른 연구자들의 업적에서 인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근대사에 해당하는 1905년 이후 해방에 이르는 일제시기에 대한 할애인 
제3장에 이어 그의 전공영역인 현대사 부분은 정교하고, 따라서 밀도 있는 
서술을 한다. 한국전쟁이 두개의 장(제4, 5장)으로 구성됐고, 이후는 
산업화(제6장), 4·19 이후 민주화운동(제7장), 북한의 현대사(제8장), 미국 
속의 한인들(제9장), 한반도 관련 국제정치적 이슈들 모음(제10장) 등으로 
구성됐다. 

어쨌거나 우선 눈길이 가는 부분은 그가 밝히는 ‘진짜 커밍스의 모습’ 
대목이다. ‘진짜 커밍스’라는 표현은 한국현대사와 관련해 비판적 시선을 
유지해온 주인공으로서 끊임없는 오해의 중심에 서 왔던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두가지 당혹스러움을 고백하고 있다. 먼저 
‘한국전쟁의 기원’을 놓고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고 말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지도 않고, 주장한 적도 없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자신의 견해라며 한국의 일간지들이 한때 연신 보도했던 것은 명백하게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또 한가지 더 당혹스러운 것은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김일성의 전쟁책임론을 지적한 부분이나 남한의 산업화 과정의 
성과를 일부 인정한 점 등을 놓고 “(예전과 달리) 커밍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커밍스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대한 기본적 판단은 바뀐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1950년 6월25일에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는 이른바 그의 수정주의적 관점은 일관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전은 (그 누구의 도발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책 읽는 이들이 다소 모호한 표현이라고 판단할 수 있음을 느껴서인지 커밍스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역사가가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으로 빚어지는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따라서 자신은 한국전쟁과 관련해 전쟁의 시작, 즉 
도발이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밝히기도 한다. 본디 비판적 시선을 유지해온 사회과학자인 
커밍스는 그의 조국인 미국이 해온 행위를 비판적 시선에서 비춰보려고 
노력해온 작업이라는 것, 따라서 30여년 동안 비밀문서들 속에서 밝혀낸 
‘한국사와 관련된 진실’은 아무래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잘못된 사회계몽적 
성격의 냉전적 신화라는 틀과 모순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보수적 성향의 
한국사회에서는 커밍스와 관련한 온갖 오해와 신화가 벌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를 사볼 것인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입해 정독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고대사와 중세사 등에 대한 서술 부분은 비교적 객관적 시야에서 한국사를 볼 
경우 이렇게 중립적이고 건조한 서술이 되는구나 하는 점을 감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후 세계 각국의 역사 서술이 애국주의적이고 
자국(自國)중심주의로 서술돼온 것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근현대사 대목 역시 비슷한 구조다. 이를테면 해방 이후 정국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적 위상과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을 한다. 

‘(남한의 보수세력들에 의해) 영입된 망명정치인들, 그러나 친일의 오명은 
없지만 본질적으로 독재의 경향이 있는 선동가들.’(286쪽)또 해방정국의 
남한사회에 대해서는 당시 뉴욕에 거주했던 한인의 입을 빌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경찰국가 중 하나”라고 규정하는 대목도 일정하게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결국 그의 전공 영역인 한국전쟁의 해석과 관련해 그 
전쟁의 내전적 성격을 지적하는 커밍스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논란이 
될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은 단순히 내전만이 아니라 요즘 
탈(脫)수정주의 이론의 방향을 틀어가는 국제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전쟁에 숨어 
있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전의 요소도 종합적으로 끌어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을 고려해 보자. 결국 커밍스의 시각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한국사를 보는 커밍스의 
시각이 보다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충분히 흥미를 돋운다. 

결국 이 책은 탈 이념의 시대와 민족의 개성을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 식민지를 거쳐 한국전쟁과 산업화로 이어진 과정을 전통과 
단절되는 근대화로의 한 측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단절적 역사의 이면에 
놓인 연속성에도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의 유교 전통을 북한의 
체제 유지와 권력 세습을 이해하는 데 적용하고 또 산업화된 남한에서 근대와 
전통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도 눈을 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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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중앙일보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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