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9월 13일 목요일 오전 10시 09분 01초 제 목(Title): 문성/ 9.11참사를 통해 미국이 배워야할 것 출처: 오마이뉴스 9.11 대참사를 통해서 미국이 배워야 할 것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긴급구조 911'을 연상시키는 9.11 대참사를 통해서 미국인들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학습해야 했다. 공포 혹은 두려움이라 이름지을 수 있는 그 무엇. 혹은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 등등.... 이전에 그들은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미 본토는 영원한 안전지대였으므로. 그것은 그네들에게 결코 깨질 수 없는 신화였다. 전쟁의 공포나 참화 따위는 헐리웃 제작자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불과했다. 언제나 '미국의 승리'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들이 '별들의 전쟁' 운운하며, NMD, TMD를 부르짖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적인 지상전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지 오래였을 테니까. 누가 그런 시대착오적인 전투씬에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임이 이번에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 지상을 넘어 우주에까지 뻗친다는 미국의 방위력은 비행기를 이용한 원시적인(?) 테러에 속수무책이었다. 총 대신 칼을 쥔 테러범들에 의해 여객기는 너무나도 쉽게 제압당했고, 하이재킹 당한 비행기는 미국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신화는 막을 내렸다. 세계를 좌우한다는 미국 경제의 핵심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 건물 2동이 여객기에 받쳐 삽시간에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세계를 지배한다는 미국 군사력의 상징 펜타곤은 피폭당해 구멍 뚫린 채 불에 타는 모습을 전 세계인의 눈 앞에 무참하게 드러내 보였다. 미국인들은 이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멀리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도 '적'들의 손에 의해 언제든지 유린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을까? 전쟁의 공포는 베트남인들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바르게 학습했을까? 그랬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두려움과 공포의 평등 앞에서만 세계의 평화는 운위될 수 있을 것이므로. 더불어 공유하지 못하는 불행을 기초로 논의되는 평화는 압제의 다른 말에 다름 아니므로. 미국의 평화가 중동지역에서 끝없는 전쟁으로 해석되어지는 모순된 현실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또한 미국인들이 이번 재난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이름 없는 소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무게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소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눈물이 자신들의 몸에 묻은 붉은 빛깔의 피와 다를 바 없는 등가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번 참사에서 세계인들이 보내준 동정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 될 것이므로. 오늘자 뉴스를 보니, 부시 미 대통령이 "군사적 응징" 운운하며 피의 보복을 천명했다고 한다. 90%를 넘는 미국인들도 "전쟁행위"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는 말도 들린다. 심지어 "핵무기 사용도 불사"라는 섬뜩한 말까지 나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아야만 자존심이 보상된다고 생각하는 마피아적 습성이 언제나 교정될 것인가? 기왕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며 거룩한 복수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것을 규정한 동해보복법(Lex Tallionis)의 숨은 뜻도 아울러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다. 정히 복수를 해야겠다면, 자기가 당한 그대로만 갚아주고 그 이상은 손해를 입혀서는 아니된다는 평화의 정신 말이다. 각설하고, 미국은 이제라도 세계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세계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미국의 평화'는 그럴 때에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01/09/13 오전 5:46:55 ⓒ 2001 OhmyNews 문성 기자는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의 일원으로서 이 시대의 언론개혁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