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9월 8일 토요일 오후 03시 03분 38초 제 목(Title): 고종석/류시민 , 진정한 자유를 선동하자 출처: 한겨레 21 진정한 자유를 선동하자 고종석·유시민이 자유주의를 해부하다… 지금 한국의 자유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사진/ 고종석. 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영미적 전통은 개인적자유의 확대에, 유럽적 전통은 사회계급의 평등에 더 중점을 둔다. 나는 영미적 전통에 선 입장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박승화 기자)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자유주의란 혼란스런 개념이다. 오랫동안 그것은 반공을 내건 폭압적 권위주의에 둘러진 외피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최근엔 자유주의가 담고 있는 개인과 소수에 대한 관용의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자유주의자라 할 고종석 <한국일보> 편집위원과 문화방송 <100분토론> 진행자인 유시민씨가 자유주의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 사회: 자유주의란 무엇이라고 보나. 고종석(이하 고): 자유주의자 수만큼 많은 자유주의가 있을 수 있다. 넓게 보면 복거일 선생 같은 분은 래디컬 리버럴리즘 또는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으로 볼 수 있다. 국가의 개입은 없을수록 좋고, 시장을 순수한 형태로 놔두자는 자유지상주의다. 리버럴(liberal)은 유럽과 미국의 용법이 좀 다른데, 나는 미국적 리버럴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등에 대한 열망이 자유를 해쳐서는 안 되지만,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 사회불평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본다. 유시민(이하 유): 자유주의는 세계관으로서 하나의 이즘(ism)이다. 세계관이란 사회공동체의 기본질서에 관한 철학이며,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사이의 관계맺기에 대한 철학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관계맺기에서 가장 우선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이런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는 리버태리어니즘(자유지상주의)과 리버럴(자유주의) 두 가지로 나뉜다. 자유지상주의는 자유, 복지, 사회정의, 사회평화, 환경보호 등 일반적으로 꼽는 사회적 가치 가운데 자유를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본다. 가치의 상충이 일어날 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유를 절대화한다. 반면 리버럴은 자유를 절대가치 아닌 기본가치로 본다. 필요할 때는 가치들 사이의 절충을 받아들인다. 나는 어떤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은 극단주의라고 본다.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고: 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영미적 전통은 개인적 자유의 확대에, 유럽적 전통은 사회계급의 평등에 더 중점을 둔다. 나는 영미적 전통에 선 점진적 개선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의, 평등에 대한 추구 자체가 자유 훼손과정일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나는 겁이 많다. 유: 겁이란 게 참 중요한 포인트이다. ‘laissez-faire’(자유방임) 이념이 왜 2차 세계대전 뒤 신자유주의의 외관을 띠며 새롭게 제기됐는가 하면, 겁 때문이다. 좌우 양쪽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경험하면서, 국가가 좋은 목적을 내걸고 개인 삶에 간섭하는 영역이 넓어졌을 때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한다. 유: 특히 하이에크에게선 그런 두려움이 잘 보인다. 모든 국가의 개입은 종국적으로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 통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개입이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고: 우파쪽에서 그런 공포를 강변한 측면이 컸다. 우린 북한이라는 존재도 있었고…. 유: 자유주의적 계몽의 전통이 약한 조건에서만 전체주의로 간다. 북한은 고종황제에서 천황을 거쳐 장군님으로 이어졌다. 반면 서유럽은 인문적 교양이 높고 자유주의를 경험한 터라 여러 이즘들이 제도의 틀 속으로 들어왔다. 고: 계몽의 미성숙, 사회적으론 계급으로서의 시민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는 것인데…. 유: 남한도 이승만이 국부가 되고, 박정희가 초인으로 추모되는 건 국민 개개인의 사회원리에 대한 인식이 박약해서다. 광주항쟁 이후 의사(psedo) 계몽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아직 압도적 영향으로 사회를 재조직할 정도가 아니다. 고: 시민혁명의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에, 자유주의 바탕이 약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회: 두분은 자유주의를 주창하지만, 사민주의적 지향에도 일정한 공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고: 북유럽은 사민주의지만, 개인주의가 아주 승하다.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의 토대인데, 북유럽 모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정신의 영역에선 무제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마리화나 같은 경우도 통제할 필요가 있나 싶다. 유: 북유럽도 술은 엄격하게 통제한다. (웃음) 고: 사실 술이 더 해롭다. 음주운전은 사람 잡는 것 아닌가. 유: 그게 실은 자유주의와 관련된 결정이다. 골방에서 마리화나 피우는 건 개인을 훼손할 뿐이지만, 음주사고는 타인의 자유를 해칠 개연성이 높다. 그리고 사실 온건한 자유주의와 온건한 사민주의의 차이는 크지 않다. 59년 고데스베르크강령 이후 사민당은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독일의 의료, 교육, 주택복지 시스템은 모두 우파가 만든 것이다. 또 서구에선 우익과 극우, 극좌와 좌익은 서로 손잡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우익이 극우와 손잡느니, 차라리 좌익과 대연정을 한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외르크하이더는 그걸 깨고 우익·극우 연정을 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사회: 프랑스는 사회당이 공산당과 연정하고 있는데. 고: 프랑스 공산당은 사실 체제정당이다. 그쪽 극좌는 트로츠키다. 당신은 왜 자유주의자인가 사진/ 유시민. 자유를 절대화하지는 않지만, 자유없이 다른 가치를 이루기는 어렵다고 믿는다. 자유라는 가치를 사회적 콘센서스로 만드는 것이 자유주의자로서 할 일이라고 본다.(박승화 기자) 사회: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의 이해가능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이유는. 유: 나는 자유를 절대화하지는 않지만, 자유없이 다른 가치를 장기적으로 이루기는 어렵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치가 왜곡되는 것도 결국 자유라는 토대가 약해서이다. 나는 이 땅에서 어떤 주의를 따르는 정당이 집권해도 상관없다. 다만 개인, 자유라는 가치를 사회적 콘센서스로 만드는 것이 자유주의자로서 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고: 굳이 논쟁점을 만들자면, 나는 자유의 기본이 재산권이라고 믿는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이 그 시점의 사회정의에 부합할지라도, 일단 한번 허물어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유 선생님은 나보다 너그러울 것 같다. 유: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트 밀은 재산권법을 옹호했다. 그러나 밀은 당시 유럽의 확립된 재산권이 재산권법 취지에 맞게 형성된 것은 아니며, 수탈과 사기의 산물이라고 봤다. 우리도 헌법과 법률 취지에 맞게 재산이 조성됐느냐에 사회적 의혹이 있다. 나는 정당한 재산권 축적을 위한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 세계시민으로서의 개인에 대한 자유주의의 지향과 신자유주의 사이엔 논리적 친화성이 있다. 고: 김우창 선생은 “오늘날 미국인으로 태어나는 것과 시에라리온인으로 태어나는 것만큼 그 사람 운명을 달리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현상을 지양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민족주의가 해체돼야 한다. 그를 위한 좌표로서 세계정부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국가간, 민족간, 종교간 분쟁을 막거나 줄일 수 있는 마음의 방화벽이랄까…. 사회: 세계시민화가 자유주의운동의 목표라는 의미인가. 고: 운동이라기보다 한 개인으로서 미국인이건 시에라리온인이건 평등한 개인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굉장히 많은 집단들이 개인을 짓누르는데 세계시민이라 할 때는 그런 집단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유: 좀 생각이 다르다. 민족주의란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사실 시장과 마찬가지로, 대체할 만한 질서가 없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신자유주의가 뭔가. 상품과 생산요소 이동에서 국가의 장애물적 성격을 철폐하는 것이다. 생산요소 중에서도 노동은 안 되고 자본만 자유롭게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장벽을 없애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문제가 있다. 거래의 자유가 완벽해지면 전체적으론 좋아지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의 불평등이 생긴다. 한 나라 안에서는 국민국가가 사회정책으로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지구촌의 통합성을 유지할 만한 세계정부가 없다. 신자유주의는 원리상 좋은 것이지만, 국민국가에 규정돼 있는 현실적 조건을 도외시하므로, 지금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다. 고: 민족, 국가에 특별한 지위가 부여돼 있는 건 맞다. 그러나 현실이 이러니 이대로 가자고 할 순 없다. 유: 이대로 가자는 건 아니다. 신자유주의 없이도 세계시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인류문명이 지금껏 이룩한 모든 문명적 가치, 자유, 인권, 평화 등을 우리 사회에서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시민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 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니 껄끄러운데…. (웃음) 그러나 지금처럼 나뉘어진 체제에서 과연 앉아서 문명적 가치들을 흡수하기가 쉽겠는가. 공동체 깃발 내걸고 개인 희생 강요하는 극우 선동이 판칠 텐데. 중세유럽은 기독교 문명권이라는 느슨한 연대 속에서도 갈등을 겪었다. 유: 타당한 걱정이다. 우리 사회만 해도 학연 등 우연에 의한 연고에 원시적 친밀감을 느낀다. 시민의 가치규범과 사적 연고를 처리하는 데 뚜렷한 개인의 가치관이 서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오늘날 유럽연합은 두 차례 대전의 결과이다. 우리도 지역주의, 민족주의의 폐해를 경험하며 깨닫고 있다. 사회: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신자유주의가 간과한 노동력의 이동자유를 강조해야 하지 않나. 유: 내가 외교부 장관이면 G7(선진7개국)에 노동력 이전의 자유를 요구하겠다. 신자유주의가 그런 점에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다. 사회: 개인의 자유와 다수결에 기반한 민주주의와는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많다. 유: 민주주의는 이즘이 아니다. 우리말에서 ‘주의’라고 붙은 것 중 이즘이 아닌 것은 민주주의뿐이다. 민주주의는 절차, 과정인 반면 다른 모든 이즘은 세계관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제외한 모든 이즘과 결합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해 공동체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모든 측면에서 합리적인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민주주의 무용론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소수파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적 결정제도가 본질적으로 내재한 불합리성이라는 결함 때문에 소수파 존중의 원칙이 불가피한 것이다. 고: 유 선생님은 민주주의에 애착을 갖고 어떻게든 구원해보려는 것 같다. (웃음) 나는 데모크라시라도 분명 이즘이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핵심이고, 그래서 평등주의와 바꿔 쓸 수 있을 만큼 겹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어색한 것은 그래서이다. 민주주의는 평등주의와 가까운 만큼 자유주의와는 대립되는데, 그 둘을 억지로 봉합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진출에 따라 부르주아 법학자들이 양보를 위해 기형적으로 만들어낸 제도다. 민주주의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타락의 요소를 내재한 민주주의 자체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속성이고, 히틀러도 선거로 집권했다. 어쩔 수 없지만, 뭔가 마뜩지는 않다. 유: 만성병 다스리듯이, 잘 지켜갈 수밖에 없다. 달리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시장과 민주주의는 서로 닮았고, 친화력도 있다. 고: 유 선생님의 민주주의는 이미 자유주의로 탈색된 민주주의 같다. (웃음) 시장과 진짜 친화력이 있는 것은 사실 자유주의다. 내가 두려운 건 민주주의가 기괴한 선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거다. 가령,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도 형식적으론 민주주의의 명분을 구현한 것이다. 한국엔 자유주의가 있는가 사진/ 1987년 6월항쟁은 자유주의가 한국사회의 주요가치로 부각되는 계기를 이뤘다. 유: 민주주의의 오용이 문제다. 1인1표로 지도부를 뽑는 제도엔 대중의 직관적인 평등의식을 자극하는 원초적 매력이 있다. 그런데 우리만 해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기초가 박약하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면, 사회 전체의 자유주의 전통이 강해져야 한다. 사회: 자유주의에도 유토피아의 개념이 있는가. 고: 그런 건… 없다. 자유주의 자체가 선을 증진시키기보다 악을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유: 점진적 개선이 이상적이지만, 점진적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도 있다. 점진적 개선의 시스템이 없을 때, 가령 전두환 때 점진적 개선을 주장해선 안 된다. 그러나 포퍼나 하이에크 등에게서 경청할 바는 인간의 인식능력엔 한계가 있으며, 하물며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설계하려는 욕심은 분명히 실패한다는 것이다. 사회: 최근 방북단 사태를 어떻게 보나. 고: 강정구 교수가 약간 오버했다. 물론 이쪽에서 많이 부풀렸겠지만, 좀 못마땅했다. 유: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부적절한 지적 같다. (웃음) 남쪽 우익들의 태도는 저쪽이 자해한다고 우리도 자해하자는 식이다. 현명하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감옥에 집어넣으면 어디 무서워서 살겠는가. 고: 물론 잡아가둔 건 잘못이지만, 이쪽 보수파들이 그렇게 설칠 계기를 줬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의식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사회: 한국의 자유주의를 어떻게 보나. 고: 우리 사회엔 자유주의란 게 거의 없다. 자유지상주의자도 없다. 레토릭은 쓰는데, 이상하게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고 하고는 자본쪽 이익이 될 때는 노조도 쳐달라고 하고, 개입하길 바란다. 유: 세계관은 삶의 전영역에 동시에 적용돼야만 한다. 이른바 자유의 불가분성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업 영업의 자유를 주창하면서도 정치적, 사상적 자유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사회: 지금 자유주의자들의 과제는. 고: 바로 그런 점에서, 지금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집중할 문제라면 국가보안법 철폐라고 본다. 미국 대법원 판사였던 올리버 홈스는 “사상의 자유는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버나드 쇼도 “표현의 자유는 터무니없는 의견을 말할 자유”라고 말했다. 신념과 용기를 갖고 자유의 의미를 선동해야 한다. 사회·정리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