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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reumi (구르미)
날 짜 (Date): 2001년 7월  3일 화요일 오전 08시 28분 30초
제 목(Title): Re: 고종, 명성황후, 조선


1. 단군은 착취자인가?

 단군은 제정일치시대의 제사장인 존재로 보입니다. 후에 등장하는 왕권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정신적이기만 한 권위를 가졌습니다. 따라서 착취자의 시조로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후대에 등장하는 왕과 모든 지배자들의 시초라고 보아도 그러한 평
가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인격과 
국가가 동일시되던 시대에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런 권위가
없다면 국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구분은 사실 모호한것입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이른바 
착취자의 후손이지만 지금 착취당하며 살 수도 있고 피착취자 계급에서 나온 사람이
더지독한 착취자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이른바 착취자들이 세운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국인이라는 민족도 존재하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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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구분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  착취자의 후손이 피착취자가 될 수도, 또는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점이 역사적인
*  특정시기의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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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가 제대로 방위되지 못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경우 힘없는
민중이 당하는 고통은 국가가 그들을 착취하는 경우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국가의 탄생은 인구가 늘어나고 인지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었고, 왕과 귀족 또한 역사 속에서 그 역할이 필요했기에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착취와 피착취라는 이분법으로 인간을 갈라서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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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돌아보면, 왕후장상,농민,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는가에 따라 인간을 차별
*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이런(착취와 피착쥐라는 이분법으로 인간이
* 갈라서 평가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면 인간에 대한 대단히 몰역사적인 이해라고 
*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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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그의 말과 행위로 평가받는 것이지 계급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계급이
인간을 평가할 때 작용하는 것은 그가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를 따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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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공산주의의 사상적 지도자중인 하나인 알튀세()는 맑스주의의 인간주의적 
* 해석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논지를 폅니다.

* "사유를 통해 추론된 추상적인 범주인 '인간'(Man)은 역사를 만든다고 할 수 없으며, 
*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인간 주체들로서의 사람들(men)만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

*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인간주체로서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사회적 
* 인간관계 (계급관계를 포함하여)속에서 인간(집단)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 (역사주의, 인간주의 등에 관한 논의는 
*   http://prome.snu.ac.kr/~skkim/lecture/lecture5/hegelmarx/hm34.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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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종과 명성황후, 조선의 멸망

  고종과 명성황후는 개인적인 능력면에서만 본다면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독립협회를 분쇄하는 과정이나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잡는 과정을 보면 매우
명석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멍청하면 절대로 그런 일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의회정치의 도입은 당면한 시대적 요청이었지만 그것을 시도하던 
독립협회를 고종은 깨부셔버립니다. 그는 의회가 왕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고종과 명성황후, 그리고 대원군까지도 구시대적인 권위의 확립만을
원했고 권력의 분산과 같은 새로운 개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과
권력을 나눠 가지던 사대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조선의 지도층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겪은 것입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이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 게 원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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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에서 의회정치의 도입은 오랫동안 상업자본의 축적을 통해 상당한 재력과 
* 지적 교양(관리능력)을 갖춘 신흥 부르조아 계급이 정치적으로 진출하게 
* 되면서 이들과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는 봉건 영주계급간의 세력균형을 
* 유지해야할 필요에 의해 도입됩니다. 
* 그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농민봉기들을 무시해서도 안 되겠죠.

* 여러 국사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맹아이론"을 제기했지만, 조선후기의 급격한 
* 계급 분해와 새로이 등장한 상업자본은 당시 사대부세력이나 왕조에 어떤 
* 정치적 위협이 될만큼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 독립협회들 비롯한 개화파의 취약함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하겠습니다만....
* 고종,명성황후,대원군이 권력분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죠.

* 서구에서 그 전단계로서 많은 유럽의 나라들이 절대주의국가의 과정을 거칩니다. 
* (이에 대해서는 Perry Anderson의 "Lineage of Absolute State"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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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멸망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당시의 전세계적인 제국주의의 물결
아래서 한정된 우리의 자원과 역량으로는 식민지화는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일본의 손에 넘어간 게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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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스러운 일"이라함은 어떠한 점에서 그러하죠?
*     문맥을 잘 파악하지 못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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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고종은 조선의 멸망 과정에서 너무나 비열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내가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암살 위협에 벌벌 떨면서도, 한 나라의 멸망에 관한
책을 읽어주는 궁녀를 자신을 능멸하냐면서 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책임에 대한 자각은 있었으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성황후는 
비참하게 살해당함으로써 국가멸망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다. 조선의 고관들 중에
국망의 책임을 진 이는 민영환 한사람 뿐입니다. 그마저 없었다면 조선은 우리들에게
치욕스럽기만한 국가였을 겁니다. 한심한 것은 여자 하나와 그 친척 하나가 죽음으로
책임지는 동안 손놓고 바라보던, 일본에 끌려다니면서 귀족행세나 하던 조선의 
왕족들이죠.



3. 조선이라는 나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정말로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무력하게 멸망당한 게
싫었고, 그렇게 꽉 막힌 사고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하면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사상적인 막심한 피해(유교라는)를 주고 있는 게 싫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위험한 것은 역사란 것을, 나라란 것을 그렇게 어느 한 쪽으로만
생각하면서 좋다, 나쁘다로 예단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선 사대부의
미의식은 우리가 전세계에 자랑할 만할 예술품들을 만들어내었고, 그들의 투철한
역사의식은 우리에게 귀중한 사료들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편협한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면을 생각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좋건 싫건 조선은 우리 역사의 한부분이고 우리는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폄하도, 칭송도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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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조선후기에 발전하기 시작한 "실학"은 유교의 적통을 잇고 있다고 봅니다.
* 우리가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에 있느냐 하는 점에서 회의적이죠.....,
* 그러한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던 시기의 후유증에 대해 무감한(불감증?)
* 게 아닌가 합니다.
* (북한의 조선시대의 유학,실학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는 우리(?)가 아직 
*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식명칭이 "조선민주주의 
* 인민공화국"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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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도 명성황후라고 불러줍시다. 고종은 제대로 불러주면서 그 아내는 제대로
    안불러주면 이상하잖아요? 여성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 행위의 공과는
    냉엄하게 판단하되 이름은 제대로 불러주자는 겁니다. 똑같은 욕을 해도
    곱게 말하는게 말하는 사람 체면도 깎이지 않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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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은 고종황제라 굳이 부를 필요를 못느끼는데(그냥 고종이면 되니깐..)
*  민중전은 (우헤헤.. 스테아찌.. 당시 '중전'이라고 부를 수 있던 사람은
*  고종뿐였겠져.. 나머지의 궁궐내 사람들은 중전마마라고 불렀을 것이구.
*  궁밖의 사람들은 황후마마(?),왕비마마~ 등등을 썼겠져..)  명성황후라고 
*  저두 부를 생각입니다.(흠.. 근데 고종은 고종이라고 제대로 불러주는건데
*  민중전을 명성황후라고 부르면 이상하네.. 좀 더 생각해봐야지...
*  "민비"는 일제의 의도가 엿보여서 맘에 들지 않습니다.)
*  뭐라 달리 부를 말두 없는 것 같아서요. 그때의 공식명칭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  하지만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굳이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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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좌파)하늬구름  雲心如水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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