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isces ()
날 짜 (Date): 2001년 7월  2일 월요일 오전 03시 21분 29초
제 목(Title): Re: 명성황후



국모라는 개념이 절대적 권력과  연관된 개념으로 해석하셨군요. 저는 

그런 개념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왕조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왕과 왕비로 

투영되어 해석됩니다.  그래서 국모라는 말을 국가라는 실체를 대표한 

것으로 사용했고 그런 대표를 일제가 시해한 것에 한마디 한 것입니다. 

시해에서 시자를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착취계급과 비착취 계급의 분류는 근대 이후의 개념입니다. 물론 착취와 

비착취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왕조는 그 당시의 정치 행태였습니다. 그 시기의 일을 오늘의 시각으로 

시비를 결정해 버리면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일제와 일제가 만든 착취 

계급이 과연 이전의 우리가 만든 착취 계급과 똑같은 연장선상에서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착취 게급이라도 오천년이상 동안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통해  정제되어 지배하던  나름대로의 권력이 일시에 무너졌습니다. 

그 전환기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맞서 나름대로

싸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역사는 지배자의 

시각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기록은 

우리 사관이 아니라 일제의 사관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씨조선 이라는 말은 조선 왕조 에도 사용되지 않았던 말입니다. 

이씨조선과 민비라는 말이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일제가 만들었다는 말을 

무시하셔도 할말이 없습니다.


조선왕조는 우리 역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많은 정치 행태를 달리하면서 

지금껏 존재해왔습니다. 역사서 자체가 어떤 사관에 의해 기술된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평가받는 이유는 왕도 권신도 

당대에는 열람할 수 없는 사초를 기초로 한다는 철칙이 있었고, 언관이라는
 
견제 세력에 의해 보호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대부들의 쿠데타를 정권 전복의 개념으로 해석하셨군요. 제가 말을 잘못 

쓴 것 같습니다. 왕이 개혁을 하려면 항상 정당한 이유를 대어야만 했고

왕의 실정이 나타나면 왕권은 약화 되었습니다. 육조 중심의 내각이냐 의정부나

비변사 중심의 내각이냐에 따라 왕권시대이냐 신권시대 이냐로 해석됩니다.

왕권 중심의 권력은 왕이 모든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의정부(내각)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고, 결정이 신하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왕이 

재가만을 하면 의정부의 권한이 강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왕권이 강했던 

왕들로는 태종, 세조, 숙종, 영/정조 으로 예를 들수가 있고 신권이 강했던 

왕들은 조선 왕조 대부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왕은 세종으로 

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이전 태종이 왕권에 도전할 말만한 

모든 세력을 다 제거하고 왕위를 물려 줬기 때문에 세종은 권력 유지에 힘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고, 자기가 키운 학자들에 의한 정치를 행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이 없는데다

많이 증발되어 버렸기 때문에 만족시켜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정조 다음에

즉위한 순종은 아버지의 문화정치를 계승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논리적 반대와 

계속된 가뭄, 홍경래의 난등으로 왕권이 축소됩니다. 대동법은 많은 일반

민중들의  특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조때 조광조에 의해 제기 되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선조 때 처음으로 시행되어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정조 

시대가 되어야만 전국단위로 시행되었습니다. 물론 함경도와 평안도는 계속

배제 되었습니다. 토지 개혁의 방법이었던 직전법은 왕권이 강했던 세조와 

성종때 제대로 시행되었지 다른 왕들의 시대에는 다시 이전제도로 환원되었거나

논의조차 없었습니다. 명종도 시행하려고 했으나 시행선포만 선언하고

유명 무실되었습니다. 정조대왕 또한 관심을 가졌으나 시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균전법 또한 개혁책의 일환으로 영조 때 이익에 의해 제기 되었지만

시행되지 못합니다. 선조는 사림의 세력으로 훈구를 몰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사림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동서 대결에 의한 분쟁과 두차례의

왜변으로 권력이 축소됩니다. 중종이나 인조 반정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조선 왕조는 왕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신권에 의한 

사대부 정치라고 하더군요.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