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evin ((:------:)) 날 짜 (Date): 1996년02월28일(수) 23시25분09초 KST 제 목(Title): 베트남 '미라이 학살' 마라이는 실제로 학살이 이루어진 송미와 딘케의 인접 마을인데 미군들이 자기 편의 대로 송미와 딘케 등을 미라이 2마을, 미라이 3마을식으로 작전지도에 명기하여 불러서 미라이 학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베트남에서는 '송미학살'이라고 부른다 1968년 3월 16일 아침, 미군 1개 중대는 대형 헬리콥터를 타고 송미와 딘케 마을에 뛰어 내렸다. 무장 건십이 수천 발의 총탄과 로켓을 퍼붓고 난 다음이었다. 부락민 들은 도망가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폭격은 수시로 있는 일이고 그들은 베트남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을 보유한 양민들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 노인들 이었기 때문이다. 미군들은 마을의 회관 앞으로 모든 주민들을 모이게 했고 주민들 은 웃으며 순순히 따라갔다. 얼마 후 주민들은 미군이 기관총을 거는 것을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들은 신분증을 내보이며 베트콩이 아니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 일부는 총검에 찔려 죽고 더러는 우물 속에 떠밀려 들어가 미군이 던져 넣은 수류탄에 폭사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관총과 소총으로 사살당했다. 그리고 미군들은 모든 가옥에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미군의 작전은 끝났다. 이 작전으로 17명의 임산부와 어린아이 1백 73명을 포함한 5백 4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 미군의 피해는 단 한명의 부상자 뿐이었다. 그 유일한 부상자는 이 잔혹한 학살현장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여 스스로의 발등에 총을 쏘아 자해한 미군 사병이었다. - "말"지 96년 3월호에서 - - 누구와 함께 지난 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