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6월 1일 금요일 오전 04시 19분 49초 제 목(Title): 김병호/ 호수만복 http://myhome.shinbiro.com/~chiangra/history18.htm 에 가시면 자료가 있습니다. 글로 퍼오면 표(그림)가 깨지기 때문인데요. 흥미있는 글입니다. 표가 핵심이거든요. 그래도 아래에 대체적인 글은 페이스트해서 올리겠습니다. 제18화 '간다(가)'와 '온다(오)' 청동기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도 '가'와 '와'와 같은 기본적인 낱말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우리조상의 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본어휘들은 과연 어디로부터 왔을까. 물론 '가'는 영어의 '고(Go)' 또는 힌디어 및 네팔어 '쟈오'와 가장 유사하므로 우리민족이 소아시아에서 아리안의 일 부족이었거나 혹은 그들과 같은 지역에서 이웃하고 살던 때부터 사용했었다고 생각된다. '와'는 우리민족이 인도대륙을 거쳐오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드라비다족으로부터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설득적이다. 지금도 인도의 드라비다족, 힌두족 및 네팔 일대의 주민들은 'Come'을 '와'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이와 같은 사실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몽고어 '야바흐'와 '이르게', 터키어의 '깃트'와 '게르'는 전혀 유사성이 없다. 그럼 다음 표를 보고 각 민족들의 '가'와 '와'에 상응하는 낱말들을 알아보자. 한 국 어 가(요) 와(요) 힌디어(인도-아리안어) *자오 *와오 우루두어(인도-아리안어) *쟈오 *아이오 드라비다어(소속불명) 푸오 *와 영어(인도-아리안어) *고 컴 다리어(인도-아리안어) 부구 비오 아랍어(인도-아리안어) 이드합 다할라 터키어(알타이어) 깃트 게르 몽고어(알타이어) 야바흐 이르흐 태국어(소속불명) 빠이 마 미얀마어(소속불명) 또아 라 중국어(시노-티베트어) 소우 라이 ** 우루두어는 파키스탄과 동남부 아프가니스탄 및 인도 중북부 지역에서 사용중임. 필자가 우리의 조상을 찾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세계 구석구석을 누빌 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필자의 탐사결과는 우리의 뿌리가 몽고족으로부터 나왔고 또 몽고민족은 우리의 사촌쯤 될 것이라는데 추호도 의심을 하고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까지 몽고를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두고 온 고향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필자뿐이랴.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필자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그릇된 선입견도 한 몫을 거들었다. 몽고반점하면 마치 몽고 사람과 우리 나라 사람에게만 있는 신체적 특징으로 알고 따라서 그들과 우리는 인종적으로 형제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몽골반점은 동북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20억이 넘는 인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에 불과하다. 13세기 징기스칸의 침입으로 유독 몽고가 서양 사람들에게 동북아시아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반점의 이름을 구태여 몽골반점이라고 부른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 민족의 몽골반점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쯤, 알타이어족이 만주와 한반도로 유입된 이후 출현했을 가능성마저도 있다. 또 후세의 일이지만 고려말 90여년 동안의 몽고점령 시기, 이 땅에서 살던 여자들이 그들에게 무수히 능욕을 당하고 거기다가 자기네들 나라로 붙잡아 간 15만 명 이상의 처녀들로 인해 인종적으로 혼혈이 되어 그나마 우리민족과 몽고족의 신체적 유사성이 생긴 것이다. 민족적으로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오죽하면 호수만복(湖水滿腹)이란 말이 생겨나고 조정에서는 여인들이 일정한 지역의 개울이나 연못에 몸을 씻으면 몽고 병사들에게 당한 못된 짓거리를 없었던 것으로 치부한다고 까지 했겠는가.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피임이나 임신중절 처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신을 하면 출산을 할 도리밖에 없었다. 더욱이나 몽고는 항복한 민족에게는 관대하였으나 저항을 한 민족에게는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가 끈질기게 대항을 했던 40여년 동안 몽고인들은 한반도에서 법과 질서도 없이 무슨 짓이던 자행했을 것이다. 이때가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큰 수난시기였던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추산이지만 이때 우리민족은 혈통적으로 30% 이상이 북방 알타이어족화 되었다고 추측된다. 혈통뿐만이 아니고 그들의 언어와 풍속을 차용했고 그 일부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민족학계의 일부에서는 왠일인지 북방일변도의 시각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민족사의 전체인양 단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민족과 몽고인 들의 유사성을 침소봉대까지 해가면서 강조하는 것은 민족의 수치스런 역사를 스스로 들추어내는 꼴은 아닌지? 최근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TV와 신문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 실크로드와 황하유역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우리민족의 기원을 찾는다고 몽고 등지로 대규모 취재팀까지 보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결과는 세계 공통이라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풍습들 외엔 우리민족과의 동질성을 밝혀낸 것이 별로 없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의 성황당과 오보(돌무더기)가 몽고의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먼 옛날부터 같은 풍속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 다. 성황당과 오보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티베트로 넘어가고 티베트가 몽고를 지배하던 때 몽고 사람들도 비로소 이와 같은 풍속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몽고의 오보는 신성한 물건이기보다는 오히려 허허벌판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내용 면에서도 많이 다르다. 이제 우리의 뿌리가 북방계의 알타이어족이 아니라는 점을 더욱 확실히 밝히기 위해 편의상 중국의 고대문헌을 인용해서 비교해 보기로 하자. 중국의 고대문헌에는 우리 나라와 알타이 어족이라고 생각되는 북방민족들의 풍습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으나 여기서는 종족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되는 신앙, 장사법 및 언어적인 내용만 발췌하여 비교하여 보았다. 여기에 인용된 문헌은 중국의 25사서(二十五史書) 중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양서(梁書)』, 『위서(魏書)』,『수서(隋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당서(唐書)』 등이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옥저, 예, 왜 등은 신앙, 장사법, 언어 등이 대개 비슷하다. 특히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슬피 울었으며 제사를 지내던 풍습도 같았다. 그러나 알타이어계라고 생각되는 북방계의 부족인 읍루(숙신, 물길, 말갈)와 거란족의 풍습은 우리와 같은 점이 전혀 없었다. 부족명 신앙 장사 언어 기타 <우리민족> 1. 부여 ·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 (영고) ·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데 곽(槨)은 있어도 관(棺)은 없다 가족은 흰 옷을 입는다. ·기록 없음 ·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는다. 2. 고구려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동맹) ·그외 조상과 용을 섬긴다. · 땅에 묻은 후 봉분을 한다. · 가족은 슬피운다. ·부여와 비슷하다. ·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는다. · 남녀의 구별이 없다. 3. 백제(마한) ·2,5,8,11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소도) · 땅에 묻고 봉분을 하며 관(棺)을 쓴다. · 가족은 슬피운다. ·고구려와 비슷하다. · 몸뚱이에 문신을 하는 사람이 있다. · 변한 사람은 모두 문신을 한다. 4. 신라(진한) ·해와 달에게 절을 한다. ·그밖의 기록은 없다. · 땅에 묻고 봉분을 한다. ·가족은 슬피운다. · 마한과 같지 않다. · 중국과 비슷한데가 있다. · 남녀노소가 분명하고 예의 범절이 밝다. · 편두(偏頭)를 한다. 5. 옥 저 ·기록없음 · 가매장을 한후 뼈만 추려 묻는다. ·고구려와 비슷하다. · 민며느리제도가 있다. 6. 예(濊) ·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무천) · 호랑이를 섬긴다. ·기록없음 ·고구려와 비슷하다. · 긴 창을 쓴다. · 같은 성끼리 혼인하지 않는다. <일본민족> 1. 왜(倭) · 하늘의 신을 섬긴다. · 그밖의 기록을 없다. · 땅에 묻고, 가족은 흰 옷을 입으며 슬피운다. 또 관(棺)을 쓴다. · 각 지방이 달랐으나 후에 통일 되었다. · 모두 몸뚱이에 문신을 한다. · 남녀노소가 분명하고 예의 범절이 밝다. <알타이어족> 1. 읍루 2. 숙신(肅愼) 3. 물길(勿吉) 4. 말갈(靺鞨) ·기록 없음 · 그날로 들판에다 장사 지낸다. · 부모가 봄이나 여름에 죽으면 선 채로 묻고, 가을이나 겨울에 죽으면 시신을 사냥감의 미끼로 사용한다. ·슬퍼하거나 우는 법이 없다. ·부여와 같지 않다. · 땅을 아래로 깊이 파서 토굴 속에서 산다. · 똥은 방에서 누고 오줌으로 세수를 하는 등 가장 더럽다. <거란족> ·기록 없음 · 시체를 나무위에 매달아 놓는다. 3년후 뼈를 추려 불태워 버린다. · 슬퍼하거나 울지 않는다. ·기록 없음 ·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면서 유목을 한다. 우리들의 조상이 북방의 알타이어족들처럼 부모가 죽으면 부모의 시신을 담비 등을 잡는 사냥감으로 사용하였으며 술먹고 춤추며 노래하였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민족학계를 주도하고 있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제 이 땅에서 청동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어법(語法)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추적을 계속해 보자. 한마디로 저자는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운도 따랐다. 우리 나라의 학자들이 그간 북방에만 매달려 있었고, 남서쪽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기 때문에 저자는 뜻밖의 대어들을 줄줄이 낚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