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parkeb) 날 짜 (Date): 2001년 5월 23일 수요일 오후 01시 51분 59초 제 목(Title): 최남주와 스웨덴 왕실. 1926년 신혼여행 차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던 스웨덴 왕세자 아돌프 구스타프 6세는 경주에서 길고 소중한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그 해 10월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한 왕릉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고고학을전공한 그는 이 진귀한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힌다. 조선총독부의 호의로 뜻을 이루게 된 그는 작업장에서 한 젊은 발굴단원을 주목한다.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발굴 조사에 참여한 최남주(崔南柱) 청년이었다. ■발굴성과는 놀라웠다. 상단에 3마리의 봉황장식이 붙어있는 황금보관이무덤에서 나온 것이다.사슴 뿔 모양의 화려한 出자 형 정면장식은 북방계 문물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에 큰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였다. 이 무덤의 이름을 구스타프 왕세자의 나라이름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특징인 봉황에서 한 글자씩 따 서봉총(瑞鳳塚) 이라 붙인 것도 북유럽에서온 귀빈의 발굴작업 참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의 고대문화에 매료되어하늘같이 높은 신분임에도 흙일을 마다하지 않던 구스타프를 최 청년은 잊지 못하였다.왕세자도 경주문화 보존에 미친 식민지 청년을 친구로 여겨 자연스레 편지가 왕래하게 된다.그 때부터 시작된 경주 남산 불교유적 발굴에 계속 참여한 청년은 발굴유물의 탁본과 고미술품 복사본 등을 보내 주었고, 왕세자는 이를 모아 전시실을 꾸며 한국의 고대문화를 널리 전파했다. ■이런 인연으로 청년은 뒷날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 스웨덴 최고 훈장을받게 된다. 두 사람은 이제 이승에 없지만 2,3세의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구스타프의 손자인 칼 구스타프 왕은 한국방문 때마다 서봉총과 할아버지 친구의 후손을 찾았다. 최정필(세종대 박물관장)교수 등 청년의 자녀들도 지난해 11월 스웨덴 정부 초청으로 스톡홀름을 방문, 선대의 우의를 다졌다. 19일 열린 최남주 선생 추송비 제막식에 왕실 특사로 참석한 페터 하마스드럼의 축사는 국가간의 우의를 말해주었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 경주의 무덤이름의 유래가 나와서 퍼옵니다. 재밌죠. :) @공통의 관심사를 가졌다는 것이 후대까지 아름다운 인연으로 계속 이어짐은 사람사는 맛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