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5월 11일 금요일 오전 08시 37분 54초 제 목(Title): 노형석/ 내 맘에 펄럭이는 극우사관, 이인� 출처: 한겨레 “내맘에 펄떡이는 극우사관도 보라” 관련기사 유봉학 교수 “지나친 영웅사관 언제든 독소 발산” 이인화 교수 “개인의 힘을 믿는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에서 비판의 과녁은 일본 극우파의 신자유주의 사관이었다. 이는 `천황' 중심의 신국론과, 민족적 긍지라는 도덕적 과제가 사실보다 선행하는 역사주관주의 등이 침략행위 은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만큼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과연 식민통치와 군사독재의 경험을 지닌 한국사회는 이런 역사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새로운 물음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일본 우익사관과 비슷한 논리구조의 우경적 역사해석이 사회적 영향력을 보이지않게 넓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학계쪽에서는 우리 내부의 역사인식, 즉 사관문제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사관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사학자 유봉학 교수(한신대)는 대중역사서 <정조대왕의 꿈>(신구문화사)을 통해 이런 풍토에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조의 독살설을 모티브로 쓰여진 이인화씨의 베스트셀러 소설 <영원한 제국>이 조선군주의 위상과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영웅사관을 답습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조를 죽인 폭력에 의해 근대화가 좌절됐다는 식의 설정은 역사에서 폭력의 위력에 대한 무의식적 신봉을 전제한다”며 “역사가 개인에게 이끌려가는 것이 아닌데도 정조 우상화가 확산된데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대중인식의 논리를 문제삼아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인화씨의 우익사관은 가부장적 열녀관을 주장해 파문을 빚은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과 함께 지식인 사회에서 논란이 제기돼온 것이긴 하다. 하지만 대중의 역사인식에 침묵해온 강단사학계에서 유 교수의 본격비판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우경사관이 매체들을 통해 대중화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셈”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체로 우경사관은 90년대 이후 두가지 흐름을 이어왔다. 우선 그 한쪽에 영웅사관이 있다. 소설가 이인화, <선택>의 지은이 이문열씨, 몽골민족의 정신찾기를 역설해온 <월간조선>편집장 조갑제씨 등이 대표적 논객들이다. 다른 쪽에는 환웅, 단군조선 등의 실체인정을 주장해온 `한배달'`단단학회' 등의 재야학계와 종교단체 `홍익문화운동연합'을 비롯한 민족주체사관론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자는 가부장적인 보수사관과 영남남인의 지역정서를 바탕으로 근대사와 인류사적 측면에 집중한다. 후자는 고대상고사 복원을 통한 혈통적 순수성과 민족자존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웅사관류가 가부장적 지배자에 대한 향수를, 민족주체사관론은 유신시대인 70년대 정책적 지원 아래 태동했다는 점에서 박정희와 인연이 있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보수문인 중심의 영웅사관론자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이인화씨의 경우 90년대 초 <영원한…>에 이어 박정희를 빗댄 독재자의 청년시절 일대기인 대작소설 <인간의 길>, 고구려-당나라의 전쟁사를 다룬 <초원의 향기> <려인>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올초에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세계사 속의 한국인'시리즈를 통해 최치원, 충선왕 등을 중국과 유라시아사를 움직인 주역으로 재평가하기도 했다. 또 이문열씨는 <선택>파문 이후에도 여러 강연이나 글 등을 통해 진보학계로부터 비판받는 신라중심 고대사관을 균형사관이란 이름아래 옹호해 왔다. 극우사관의 대변인으로 평가받는 조갑제씨는 박정희 평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이후 몽골기마민족의 신화재현을 역설한 몽골기획을 <월간조선>에 연재해 팽창적 민족주의를 호소한 바 있다. 독재자나 절대군주에 대한 이상화·신화화는 이들 주장을 하나로 엮는 코드다. 언론인, 문인 등의 비전문가 중심이며 보수매체 <조선일보>를 주된 매체삼아 우익사관을 전파한다는 점에서도 지금 일본극우논객들과 닮은 꼴을 지닌 셈이다. 이런 확신적 우익사관과 달리 상고사를 둘러싼 주류학계와 재야의 사관논쟁은 복잡미묘하다. 기존 학계는 `일제 황국사관과 방법론이 다르지 않다'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반면 재야쪽은 강단의 실증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등에 대중적 관심과 최근 단군의 실체를 기정사실화한 북한쪽 사정까지 감안하면 이들을 극우사관론자로 단정하기란 쉽지않다. 물론 재야학계쪽이 상당부분 우익적 배경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70~80년대 군부와 교육계 인맥들의 후원으로 상고사 복원운동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80년대 <규원사화> <환단고기> 등 단군관련 고서들의 가짜책 논란과 단군사적의 실체인정에 얽힌 국사교과서 파동도 이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98년에는 단군상 세우기 운동을 전개해온 단학선원과 김지하 시인이 손을 잡으면서 국수주의 논쟁을 낳기도 했다. 특히 재야학자모임 `한배달'쪽은 지금도 교과서개편과 관련해 법정소송과 새 검인정 교과서 집필을 준비중이다. 강단연구에만 몰두해온 학계와 기존 역사-대중의 틈을 파고든 비전문가집단의 대립으로 사관논쟁은 별 수확이 없었다. 그러나 교과서파동으로 현실과 역사해석의 관계설정이 과제로 떠오른 이상 비판과 포용을 위한 경계짓기 또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는 “사관문제가 정체된 근본이유는 학자층이 엷고 다양한 차원의 연구성과가 축적되지 않은 탓”이라며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관논의를 위한 학문적 지반을 넓히는 것이 전제”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나친 영웅사관 언제든 독소 발산” <‘정조대왕의 꿈’펴낸 유봉학 교수 “역사 왜곡은 현실인식의 왜곡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도 그런 맥락 아닙니까. 제가 소설 <영원한 제국>을 문제삼은 것은 잘못된 조선후기사의 이해가 현실 정치와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관점마저 그르치게 만든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정조대왕의 꿈>의 지은이 유봉학 교수는 서두부터 자신의 `이인화 비판'이 소설적 상상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대중속에 깊이 뿌리내린 역사의식을 문제삼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조 정치사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무엇보다 “정조의 우상화를 통해 일인군주가 역사를 이끌어야 발전한다는 식의 영웅사관이 언제든 현실에서 독소를 발산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책을 쓴 동기가 됐다”고 했다. “<영원한 제국>이 제기하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1인의 존재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정조가 계속 장수했으면 근대화가 정착됐을 것이란 발상입니다. 이건 결국 현실의 논리로 보면 독재자 박정희를 부각시키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러나 문헌에 전하는 정조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1장 첫머리에 독살설의 오류를 먼저 지적한 뒤 영웅사관의 문제점을 반박하는 내용들을 뒤이어 넣은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그의 30년 연구공력이 응축된 <정조대왕의 꿈>은 드라마나 소설로 덧씌워진 사관의 굴레를 벗기고 정조시대 정치, 사회, 문화상을 쉽게 풀어쓴 대중역사서다. 정조대왕의 이상과 좌절, 개혁정치와 그 귀추, 사상과 문화의 갈등, 그의 만년 기록, 측근 신료의 인상기 등을 통해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정조시대의 실체를 조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가장 개혁기운이 만개했다는 정조시대의 역사를 반추하는 책의 구절들은 일반인들이 이 시대에 갖고있는 편견을 겨냥해 독살설과 화성천도론을 둘러싼 여러 통설들의 허구성을 차근차근 반박하는 구성이 눈에 띈다. “독살설의 허구성은 그가 죽기 7개월 전의 행적에서 또렷이 드러납니다. 청년 사대부를 끌어들이며 개혁정책을 추동한 정조였지만 북학론이나 서학이 융성하면서 말년에는 자신의 이상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죽기 직전 세도정치의 시조인 외척 김조순을 끌어들여 정국 주도권을 맡긴 것도 다 그의 의도였지요.” 최근 비사학자들이 일반대중 사이의 사관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일단 사학자로서 반성해야할 일”이라면서도 “정조정치사 연구자만 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연구기반이 빈약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사관논쟁은 쉽지않은 일”이라고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인화 교수 “개인의 힘을 믿는다”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는 유봉학 교수가 제기한 비판에 대해 “책의 지적은 개인적 변수를 배제하고 민중의 힘을 강조하는 70~80년대 집단주의 역사관의 틀을 맴돌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영원한 제국>은 개인의 역사 속 위상을 중시하는 90년대 이후 사회경제사학의 흐름과 정조가 장수했다면 역사적 국면이 변했으리란 믿음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며 “개인의 구실을 무시해버리면 소설자체의 가능성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 주체가 집단인가, 개인인가의 논쟁에 주목한 것이지 좌우사관의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설명되는 작품은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이 교수는 또 “문학은 개인의 가능성을 수용하는 장르이다. 따라서 인간중심적인 입론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힘을 믿지않는다면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 안으로 담론들이 수렴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