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5월  2일 수요일 오후 03시 48분 45초
제 목(Title): 박노자/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꿰뚫다 


출처: 한겨레 21

[박노자의북유럽탐험]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꿰뚫다

“구미의 상류층은 현대판 약탈자” 노르웨이 계통의 좌파 구도자 ‘베블런’을 
아십니까 


 
사진/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베블런은 개인의 구속없는 자유와 학술활동에서의 
철저한 비판주의를 갈구했다.


지식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대학교육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직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을 과연 ‘지식인’으로 불러야 하는가? ‘지식인’의 
관념이 지역·문화·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인텔리겐치아’(지식인)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19세기 중반의 
러시아사회에서 이 용어는, 자신의 사상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리고 많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이념을 실천하려는, 일종의 ‘사회비판자’나 
‘지적인 투사’를 의미했다. 그래서 원래의 ‘인텔리겐치아’ 개념은, 서구의 
‘intellectual’(지식집약적 전문직 종사자)보다는 동아시아의 
‘지사’(志士)나 ‘선비’에 더 가깝다. 그런데 구미지역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높은 보수를 받아 자신의 
지식을 파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당대 사회의 일상과 관습들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 ‘문화’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구미 자본주의의 원시적인 야만성을 
가장 잘 밝힌 구미의 지식인 중에, 노르웨이 계통의 미국 학자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1857∼1929)은 일종의 ‘전형’으로 꼽힌다. 


미국 상류층과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다 



 
사진/미국 최고의 부자동네인 캘리포니아주의 베버리힐스. 베블런이 보기에 
미국 상류층의 주요특징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과시적 소비, 즉 낭비다.


미국 이민 2세인 베블런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을 노르웨이 이민자들 사이에서 보낸 그는 노르웨이 말을 
평생 모국어로 하였고,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촌뜨기’ 
베블런에게 미국의 상류사회가 요구하는 고급 매너를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와 미국 상류층의 갈등은 
태생적으로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베블런을 상당히 흠모하는 현대 노르웨이 좌파들의 의견에는, 어떤 형태의 
주류이든 무조건 거부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안주를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의 품성에는, 국가와 주류 교회를 거부하는 19세기 노르웨이의 종교적 
반대파(이른바 경건파(敬虔派))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미국 상류층을 ‘현대판 약탈자’ 계층으로 보는 베블런의 사회비판 
의식은, 착취나 국가적 폭력의 세계를 악마적인 일로 취급하는 노르웨이의 
주류를 부정하는 종교적 반대파의 세속 부정론을 ‘사회과학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베블런 주위에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의 국왕에 대한 강압적 충성이나 
국민개병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민한 경건파 신도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사회비판론의 종교적 배경에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거부했던 당대 미국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의식 
저변에는 일반적으로 강한 종교적 성향이 깔려 있었다. 

파란만장한 베블런의 생애는, 개인의 구속 없는 자유와 학술 활동에서의 철저한 
비판주의를 갈구했던 그와 위선적 윤리와 시장성 있는 전문 지식을 요구했던 
미국사회가 어느 정도 잘 맞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한푼한푼 모아 어렵게 
고학을 했던 베블런은, 일찍부터 그 재능을 보여 27살에 이미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당대 사회·경제학의 통론·통설들을 우습게 여겨 
일소에 부치는 자신만만한 ‘촌뜨기 천재’ 베블런을 교사로 채용하려는 대학은 
당시의 미국에 없었다. 몇년 동안 아버지의 농가에서 농사와 독서를 해야만 
했던 그는, 39살이 돼서야 비로소 처음 전임강사로 강단에 서게 된다. 그러나 
당대 대학사회의 윤리관을 상류층의 위선으로 생각하고 혼외정사와 이혼을 
자유롭게 했던 베블런은, 한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지 못하여 이 대학 저 
대학을 늘 전전하는 신세였다. 

한때 그는 미국 행정부의 한 부서에 고용됐지만, 거기에서도 그의 ‘품행’과 
‘사상’이 문제가 되어 5개월밖에 버티지 못하였다. 늘그막에 평생의 고생으로 
신경장애 증세까지 얻어 언어 구사력을 많이 잃은 그가 죽기 전까지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한 자그마한 숲 속의 농가에서 보낸 3년은, 기복이 심한 평생 중 
가장 편안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사회와의 타협의 거부에 따르는 불가피한 
대가를 그는 충분히 치렀던 것이다. 

베블런의 사상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저서는, 그의 처녀작인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An Economic Study in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1899)이다. 지금 근대적 사회비판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 책을, 몇년 뒤에 독일에서 나왔던 그 당시의 또 하나의 저명한 
사회과학 저서인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1904∼05)에 대한 좋은 대조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갑부 국회의원의 
아들로 태어난 베버의 주요 주장은, 근대 자본주의가 바로 금욕·절약·근면성 
등의 프로테스탄티즘(신교)의 도덕의 연장선상에 배태한 것이고, 근대 
주도층(소유자·관료 계층)의 ‘합리성’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덕과 ‘합리성’이 전무한 비서구적 문화권(특히 인도나 
중국)들이, 서구에 대해서 ‘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은 베버의 서구 
자본주의 옹호론의 당연한 결론이었다. 


베버의 ‘합리성’을 전면적으로 반박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은, 베버의 이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보인다. 
베버는 자본가·고급 관료층의 ‘합리성’을 극구 찬양했지만, 베블런은 
“상류층의 소비구조를 분석해보자”고 제안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판 
‘귀족’으로 군림하는 정치인·금융 자본가나 산업 재벌들이 소비를 
‘합리적으로’ 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실 서로 경쟁이 되어 
아무런 합리적인 가치도 없는 고급 미술품이나 구식 무기 등을 수집한다. 그들 
사회에 어울리려는 사람은, 전혀 실용성이 없는 값비싼 복장을 준비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쓸모없이 경마장이나 사냥터에서 헛된 시간을 소비할 각오를 해야 
한다. 베블런에 의해서 유한 계층으로 규정된 상류층의 주요 특징은, 합리성의 
정반대인 ‘과시적 소비’(이 전문 용어를, 베블런이 최초로 만들었다) 즉, 
낭비다. 노동자로부터 수취되는 잉여가치의 상당부분이 ‘신판 귀족’들의 
낭비에 비생산적으로 소모되는 것은, 현대 산업사회의 발전을 억제하는 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적 유형으로서의 ‘신판 귀족’들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인가? 그들의 전신(前身)인 중세 귀족의 원형이었던 원시사회의 추장들이 
여자와 전리품을 놓고 유혈 전투를 일삼았듯이, 그들도 산업체제의 장기적 
안정이나 공익보다는, 사기·투기·착취를 통한 현대적 전리품인 사유 재산의 
획득에 훨씬 더 재미를 붙인다. 구미의 소수의 자본가와 관료의 경제·정치적 
세계 지배는, 베버의 ‘합리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천년 전 바이킹의 
소행을 방불케 하는 극심한 식민지 약탈의 장기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들이 
진실로 합리적이었다면, 깊은 신앙심은 안 가지면서도 교회의 의례에 
그렇게까지 치중했을까? ‘사냥’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런 현실적 필요도 없이 
원시적 가학심리로 동물을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을까? 사리사욕을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당시 구미지역의 상류층을, 베블런은 ‘현대판 
약탈자 계층’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본과 무기를 독점하는 이상 우리 
세계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바로 몇년 뒤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역시 베블런의 예견이 정확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시적 소비론’ 한국 현실을 반영한다 


물론, 현재의 과학적인 기준으로 보면, 베블런식의 사회비판은 학술이기보다 
일종의 문학적인 평론에 더 가깝다. 그리고 금융자본의 투기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핵심부 선진 자본주의 지배층의 성격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의 면이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도 현재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구체적인 경우- 예를 들어 비생산적인 
군비투자와 거의 정규적인 의례가 된 듯 국외에서의 대형 살육(전쟁)을 하는, 
미국·이스라엘 극우파- 베블런의 이론대로 지배층의 성격에는 퇴행적인 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핵심부에 잉여가치의 상당부분을 제공해 주는 
주변부·준(準)주변부에서는, ‘도상불이’(盜商不二: 도둑과 장사꾼이 다르지 
않다), ‘도정불이’(盜政不二: 도둑과 정치인이 다르지 않다)의 화려한 
시대는, 아직까지 막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 

탈세·사기·착취로 가로챈 거액의 돈을 사치와 낭비에 물 쓰듯이 쓰는 
파렴치한 정치적 장사꾼들, 중세 귀족 못지않게 자만과 거드름을 피우며 
폭력·폭언을 일상적으로 일삼는 국회의 선량들, 비합리적인 점이나 
교회·사찰의 의례에 대한 맹신·맹종…. 베블런이 100년 전에 그토록 준열히 
비판했던 미국의 초기·중기의 ‘약탈형’ 자본주의의 추태는, 지금도 한국이나 
러시아 등의 땅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베블런에 의해서 만들어진 
‘과시적 소비’보다 현재 러시아나 한국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베블런의 고국인 노르웨이에서는 좌파가 장기 집권한 
결과로, 법 제도가 약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등 자본주의 우파의 약탈적 
본질이 개량돼왔다. 러시아·한국 등의 피지배층도 그러한 정치적인 자각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지 않을 수 없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