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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5월  2일 수요일 오후 03시 38분 51초
제 목(Title): 둔황 불교미술탐구 서용씨 -한겨레 


중국 둔황석굴에서 4년여 불교미술 탐구 서용씨

 

  
 
"둔황은 불교 동방전파의 첫 관문" 
중국 불교예술의 극치인 둔황 석굴에 만 4년2개월 동안 묻혀 불교미술을 
탐구하는 한국인이 있다. 

간쑤성 란저우대학 둔황학 박사과정의 서용(39·사진)씨는 석가탄신일인 1일 
베이징에서 기자와 만나 “1천년 이상 변하지 않는 역사의 흔적에 매료된 것이 
지금껏 둔황석굴에 매달리는 이유”라고 밝혔다. `서역 벽화와 고구려 벽화와의 
연계성'에 관한 논문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둔황은 인도 불교가 
동방으로 전파되는 첫 관문이었다”며 “둔황 막고굴의 불교미술이 시작된 
시기가 전진(366년) 때로,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라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1900년대에 둔황 장경동에서 
발견된 것은 당시 중국뿐 아니라 신라의 승려들도 둔황을 지나 인도로부터 
불교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중국 서북부 간쑤성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둔황의 막고굴은 총 800개로, 이 
가운데 불화로 채워진 500여개는 전진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불교문화가 꽃핀 
중국 불교미술의 극치로 꼽힌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다 92년 8월 한-중 수교와 동시에 중국 
유학길에 오른 서씨는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벽화과에서 4년간 벽화를 
전공했으며 94·96년 두차례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당시 귀국을 
앞두고 머리를 식힐 겸 둔황에 들렀다가 벽화를 대하는 순간 “이것이 나의 
미래”라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둔황에서 벽화를 제작해 97년 광주 비엔날레 청년정신전에 출품하기도 한 
서씨는 “벽화가 현대에 무엇을 전해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97년 결혼한 그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연간 두어차례 
베이징에 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둔황에 머물고 있다. 베이징/하성봉 
특파원sb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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