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4월  8일 일요일 오전 04시 06분 31초
제 목(Title): 한겨레/인문학데이트 , 구승회 


출처: 한겨레 

[인문학데이트] 25. 구승회 

 개인자유의 절대가치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이 현대 지식인들을 새롭게 매혹시킨 
데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인간을 속박한 근대문명의 
독선적 사고를 배격하면서도 인간이성에 대한 도덕적 믿음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에코필로소피>를 출간해 학계에 생태철학 연구의 서막을 
열었던 구승회 동국대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아나키즘=무정부주의란 등식을 
깨는 데 힘써온 아나키스트다. 생태환경문제를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 통찰하고, 
이성과 도덕으로 자연, 인간의 공동체를 모색하는 그의 방법론은 특히 
명분론에만 집착해온 국내 환경운동에도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아나키즘 
관련 논문을 준비중인 동국대 대학원생 심지원(27)씨가 그와 에코 아나키즘의 
의미와 한계,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편집자

지구적으로 생각하되 자기동네부터 시작해야


¨아나키즘은 방종이 아니라 자기규제된 자유 강조
협조와 공생에 바탕한 소규모 자연공동체 지향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대등
탈중심적 관점이
에고아나키즘의 핵심¨ 

심지원=이번 데이트 주제인 아나키즘을 얘기하려면 아무래도 얼마전 상영된 
영화 <아나키스트>를 화제로 꺼내야할 듯 싶네요. 영화 보셨나요. 

구승회=비디오로 봤는데, 그다지 유쾌하게 보지는 않았어요. 영화 덕분인지 제 
아이들이 외출할 때 옷깃을 접고 나오는 걸 보고 “아빠 깃 올려. 그래야 
아나키스트야”하고 웃더군요. 역시 21세기에도 아나키스트는 빈정거림의 
대상인가 봅니다. 물론 영화제목은 흥행을 위해 붙였겠지만 줄거리는 20~30년대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이어서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아나키스트들의 모델과는 
크게 어긋납니다. 당시엔 두 부류가 있었는데, 영화처럼 낭만주의자로써 
사회참여 의지를 지니면서도 놀이로서 아나키즘을 추구한 부류가 있었고, 
<아리랑>의 혁명가 김산처럼 도덕적인 지성인 부류가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영화는 일면만 비춘 셈이지요. 

현대 아나키즘의 네가지 특징 

심=아나키즘하면 무정부주의자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부정적 시각이 강한데, 
그런 편견의 뿌리는 어디서 비롯됐는지요. 

구=아나키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백년 이상된 역사적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뿌리인 `아나키'는 원래 사람을 비난하는데 쓰는 용어입니다. 
19세기 초 프랑스 사회주의자 프루동이 정형화한 정치이데올로기로서 사용하기 
전까지는 매사 부정적인 인간형을 조롱할 때 쓰는 형용사로 쓰였습니다. 뒤이어 
아나키즘 혁명론을 정립한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바쿠닌이 마르크스와 논쟁할 
당시엔 마르크스의 동료 엥겔스가 아나키스트들을 슬라브민족주의자라고 
몰아세우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점들이 유포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스파링 
상대'였던 셈이랄까요(웃음). 국내에서는 일제가 불온한 조선인(불령선인)으로 
분류한 사람들이 대부분 아나키스트였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뿌리박힙니다. 실현불가능한 극단적 자유주의 이념을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견지한 만큼 일반인들이 일탈적인 몽상가들이란 편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봐요. 
심=말씀대로라면 최근 부각되는 아나키즘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는 
의미인데요. 현대 아나키즘의 기본 이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구=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과학적 공산주의라는 명쾌한 단문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나키스트는 그렇게 대답할 여지가 별로 없어요. 명징하게 체계화하고 
구조화한 혁명이념이라기보다는 일상 삶의 문제에 매우 가까운, 보편적인 
사람들의 심성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체로 네가지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첫째가 사회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인데요, 흔히들 말하는 
사회계약론과 달리 아나키즘은 사회가 인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자연적 
결사라고 보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방종이 아니라 
자기규제된, 즉 자주관리적인 개인적 자유를 강조합니다. `내 자유는 내가 다 
가진다'고 보기에 계약중심의 사회틀에 속할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구성된 사회니까 연대의 개념이 소중해지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세번째 특징은 협조와 공생에 바탕한 소규모 자연공동체를 주장한다는 거죠. 
고전 마르크시즘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며 세계주의와 국가소멸, 
평등사회 유토피아를 강조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더욱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 덧붙여서, 주어진 사회시스 안에서 평등한 분배와 위계구조의 
철폐가 어떻게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반성적 분노와 저항이야말로 사상적 기반이 
되는 셈이죠. 

심=현대 아나키즘의 사상적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고 알고있습니다. 다른 
사상과는 어떤 측면에서 연계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구=아나키즘은 포괄적인 사상체계입니다.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식으로 말하면 
거대담론인데, 여러 사상, 심지어 기독교, 불교까지도 연관시킬 수 있어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취약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운동의 영역들이 
확대되어 각기 다양한 지향과 목표를 갖게 된 상황에서 아나키즘적 틀은 
사안별로 각각 친화성을 지닐 수 있다는 장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외국인노동자 권익운동, 여성운동 등이 사안별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데 이들과 넓게 연대·협조할 수 있는 고리가 된다는 거지요. 세계화 
시대에 아나키즘은 분절화되는 문화집단간의 차이를 매개하고 절충하고 
조절하는 접착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한국적 아나키즘 양식으로서 계속 천착해오신 
에코아나키즘론이 눈길을 끕니다. 

구=아나키즘과 생태학을 접목시킨 개념이지만 아직 완결적인 사상체계는 
아닙니다. 살을 더 붙여야겠지만 분명한 지향점 가운데 하나는 환경생태문제가 
초계급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라는 점입니다. 청와대 산다고 오염된 서울공기를 
마시지 않을 수 없고, 부잣집, 판자촌 가릴 것 없이 서울시민이라면 
팔당저수지의 오염된 상수도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요? 따라서 환경문제를 
계급해방적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될 것입니다. 게다가 굉장히 글로벌한 
문제임에도 해결은 글로벌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고민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코아나키즘의 해법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서로 대등한 존재라는 
탈중심적인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는 환경운동의 명제를 실천하려면 자기 나라 자기 지역 자기동네의 
환경문제 해결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거지요. 

심=서로 부조하는 자발적인 지역공동체를 에코아나키즘의 구체적인 
실천방식으로 주장해온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가 지금껏 
종교나 사회단체에서 펼쳤던 소규모 공동체 운동과 어떻게 다른거죠. 

구=러시아의 19세기 사상가 크로포트킨이 역설한 상부상조와 공유의 아나키 
공동체가 가장 적절한 대안사상이라고 봐요.사실 아나키즘이 꿈꾸는 자족적 
생태공동체는 스스로 자동차나 기계류까지 만드는 완전무결한 공동체가 아니라 
환경자족적 공동체입니다. 이를테면 우리 마을에서는 구정물을 단 한방울도 
배출하지 말자거나 쓰레기수거차가 오지말게하자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어요. 

심=공동체개념이 인간의 거대한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란 비판이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구=자본주의체제의 광고와 같은 욕망의 확대재생산 방식이 아나키즘 공동체에는 
없습니다. 아나키 공산주의 공동체는 욕망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아니라 적어도 
강제된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마냥 고상한 
공동체는 아니지요. 독일 유학할 때 지도교수 집에서 석달간 사는데 68년산 
흑백텔레비전을 보고있어 깜짝 놀란 기억이 있는데, 아나키즘적 삶은 일상에서 
그런 삶의 양식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됩니다. 

환경자족적 생태 공동체 꿈꿔 

심=한국아나키즘 학회창립을 주도하셨지요. 학문편력을 비유하자면 
녹색외투에서 아나키즘 외투까지 걸치고 있는 셈인데 앞으론 어떤 옷을 선물할 
생각인가요. 

구=더이상 보일 색깔은 없어요(웃음). 검은 색깔이 흔히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데, 난 가능하면 무정부주의로 대표되는 극단 테러리스트, 허무주의자 
따위의 부정적 시각을 엷게 만들고 흑색과 녹색을 잘 조화시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항상 유연하게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에코이데올로기의 토양을 갈이하는 것이 제 구실이 
되겠지요. 

정리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

구승회가 말하는 구승회

삶을 계획하지 않아 자유롭다

내가 나를 말하는 것, 더욱이 혼잣말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강제된 회고에는 '계산된 인생'이 삽입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하랴! 거울은 
나를 비추지 못하고, 오직 내가 보여주는 나를 비출 뿐인 것을. 

어릴 적부터 남달리 수줍음이 많았다. 수줍음은 기질이라기보다는 그런 풍습에 
젖어 있던 안동이라는 곳의 독특한 유교문화와, 겸양을 최고 미덕으로 
가르치셨던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돌아보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는 원칙으로 살았다. 누구든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가능하면 나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밀이 적으면 
발걸음이 가볍고, 발걸음이 가벼우면 옳든 그르든 먼저 결정하고, 먼저 판단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전략의 치명적 단점은 결정과 판단에 대한 오류가능성을 누구보다 
많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포기하라!"는 보충 원칙이 
필요했다. 매사에 '지는 게임'을 하자는 것인데, 처절한 생존·승인 게임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태도만큼 든든한 배후는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는 게임에 임하는 자는 '계획'이 필요없다. 그래서 나는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는 인생을 계획할 수 없다!"는 제3원칙을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나키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삶을 자기계획 아래 둘 수 있다고 믿고, 
전략을 세우는 친구들을 경멸한다. 계획과 신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뜻을 세우기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떤 이념에 
대한 봉사도, 인생계획도 가져본 적이 없다. 돌이켜 보건대 참으로 찰나적이고, 
아슬아슬한 임기응변이었을 뿐이다. 



--------------------------------------------------------------------------------

구승회는 누구? 

△ 1956년 안동에서 태어남. 

△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민윤리학과 졸업(문학사). 

△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석사). 

△ 독일 다름슈타트대학교 역사·정신과학부 졸업(철학박사). 

△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 역임. 

△ 한국아나키즘 학회 창립회원. 

△ 현재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윤리문화학과 교수. 

△ 지은책: <논쟁: 나치즘의 역사화>(1994, 온누리), <에코필로소피>(1995, 
새길), <아나키·환경·공동체>(공저·1996,모색출판사), <철학의 변형을 
향하여>(공저·1998, 철학과 현실사)△ 옮긴책: <칸트와 더불어 
철학하기>(1993, 청하), <트러스트: 사회도덕과 번영의 창조>(1996, 
한국경제신문 출판부), <환경윤리학의 제문제>(1997, 따님), (2000, 민음사).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