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4월 8일 일요일 오전 03시 49분 28초 제 목(Title): 권혁범/ 아는 것이 힘은 아니다 출처: 한겨레 21 [논단] 아는 것이 힘은 아니다 한국인만큼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셋만 모이면 자리를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토론을 예사로 벌인다. 특히 정치인에 대한 경력과 족보를 좔좔 꿰는 ‘정치전문가’도 수두룩하다. 명색이 정치학자인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박식하다. 심지어 몇 개월 뒤 이루어질(?) 정계개편의 큰 틀을 거침없이 예견할 정도의 ‘고수’들이다. 물론 얘기는 항상 정치인에 대한 욕설로 끝이 난다. 소녀가장과 국가보안법 요즘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교육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쟁점이며 따라서 누구나 할말이 많다. 주입식 교육, 붕괴된 교실, 낙후된 시설, 조령모개식의 입시제도, 개성적 자아를 말살하는 획일주의적인 교육내용, 사교육비의 살인적 부담 등의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물론 지독히 성차별적인 교육방식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모두들 장차관 시켜도 될 만큼 교육문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문제에서 ‘공적 자금’을 거쳐 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보이는 지대한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생각하면 오늘날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지리멸렬함은 세계적 불가사의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일반 시민들은 정치적 의식수준이 높은데 비해 정치인들만 유독 한심한 수준에 있다는 해석을 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 이러한 정치적 관심과 비판이 정치의 발전을 통한 삶과 복지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는 ‘지식’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슈의 구조적 제도적 차원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가령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요구될까? 학교의 경영이 민주화 합리화되어야 하며 교실이 정부 권력과 재단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교사들이 책임을 지고 교재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재단의 자의적 ‘인성평가’에 의한 교사/교수의 추방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립학교법’ 개정이 어떻게 교육현장의 개혁에 연결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급식비 인상이나 학군 문제, 수능 난이도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참여적 행동은 고사하고 법적 제도적 관심으로도 전혀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국사회만큼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연중무휴로 벌어지는 곳도 드물다. 방송에서 해맑은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소녀가장 얘기가 나가자마자 독지가들의 성금이 쇄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인본주의적 관심과 동정은 사회복지제도의 확충과 정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사회복지 지향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진보적 사회민주주의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후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소녀가장은 다시 생산되고 성금은 되풀이된다. 이 문제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어떻게 연결될까?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남북한간의 평화적 교류를 가로막는다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보안법을 축으로 한 분단체제의 지속이 진보적 사상과 세력의 성장을 억누르고 그것이 결국 창의적인 공교육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진보정당 없이도 교육과 사회복지제도가 선진적인 나라가 있는가? 국가보안법, 소녀가장, 사립학교법, 교실 붕괴는 모두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문제들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병을 키운다 한국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유별나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회구조적인, 역사적인 인식에도 도달치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지식은 문제의 구조적 성격에 대한 인식을 방해함으로써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며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파편화된 정치지식에 토대한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정치개혁에 기여하기는커녕 그것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 아는 게 힘은 아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병을 키운다. 물론 이러한 유형의 지식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하게 유포되고 지속되는 데는 대다수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교육 이민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도 사립학교법 개정에 침묵하고, 실향민의 아픈 상처를 얘기하면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불온한’ 움직임으로 매도하며, 소녀가장의 슬픈 사연을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하면서도 진보단체나 정당의 활동 소개에는 인색한 대한민국 언론의 ‘의도적인’ 이중성이야말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일지도 모른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kwonhb@dragon.taej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