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7일 토요일 오후 12시 03분 06초 제 목(Title): 이병한/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맹활약 출처: 오마이뉴스 위기의 동아일보 버렸던 기자가 언론판을 휘어잡다 [동아투위 26년] 떠난 6명 현직 언론사 사장 맹활약 이병한 기자 han@ohmynews.com "동아여 휘지마라. 우리가 있다." 1975년 1월 13일 정신여고 졸업생 일동 "동아일보 배달원임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975년 1월 15일 신동지국 배달원 15명 일동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꺼야." 1975년 1월 18일 이대 S생 ▲3월 16일 동아투위 위원등 100여명이 '75년 대량해고에 대한 사죄와 원상회복'을 요구하면서 동아일보앞 횡단보도까지 행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75년 유신독재정권에 의한 동아일보 광고사태 때 쏟아진 격려광고의 문구 중 일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서슬퍼런 독재정권하에서 자유언론을 수호하려고 일어났던 동아일보를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한때 시장점유율 1위였을 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의 광고탄압에 독자들이 광고를 실으면서 지키고자 했던 가장 '괜찮은 신문' 동아. 그 동아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가 조사한 '2001 인쇄매체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구별로 신문을 구독하는 비율은 전체의 51.3%이며, 그중 조선일보가 13.7%로 1위, 중앙일보가 13.2%로 2위, 동아일보가 10.1%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 중앙이 근소한 차이인데 비해 동아는 차이가 제법 되는 확실한 '3등'이다. '동아 3등'은 다른 조사들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고 언론계 종사자들을 말한다. 한 언론시장 분석가는 "현재 동아는 다른 지방에 비해 호남에서 '전통적인 1위'를 고수하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와의 갈등과 이 지역에서의 한겨레신문 약진 가능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전체적인 시장에서의 '동아의 위기'는 더 확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은 신조어인 '조중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매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4대 일간지'에서 '조중동'으로의 사회적 용어 변동에 담긴 의미는 '한국일보의 급격한 퇴조'와 '동아일보의 위기'다.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꺼야!" 그 동아의 위기 1975년 동아일보는 유신정권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려 했던 젊은 기자 130여명을 해직했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이들은 현재까지 언론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최학래 씨는 <한겨레> 사장으로 재직중이고 성유보 씨는 한겨레 편집국장을 거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으로서 언론개혁의 중심에 있다. 또한 이종덕 씨는 부산<국제신문> 사장, 장윤환 씨는 <대한매일>의 논설고문, 양한수 씨와 박종만 씨는 <디지털타임즈>의 이사와 편집국장, 정연주 씨는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활동중이다. 현직이 아닌 전직까지 따지면 동아투위원들의 언론계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권근술·김두식·김명걸 씨는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이종대 전 국민일보 사장, 정동익 전 월간<말> 사장 등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동아일보 해직자의 언론계 활약상은 단지 75년 해직자에 그치지 않는다. 80년 동아일보 해직자인 김근·박권상·전만길 씨는 각각 <연합뉴스> <대한매일>의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또한 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지금까지는 권력이 언론 자유를 유린했는데 90년대 들어서는 언론 자본이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으로 떠올랐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불화를 빚던 경영진에 사표를 던진 김중배 씨는 최근 MBC의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렇게 현재 언론사 사장 중에서 동아일보 출신은 무려 김근, 김중배, 박권상, 이종덕, 전만길, 최학래 등 6명에 이른다. 75년 동아 대량 해직사태 이후 26년이 지난 2001년 오늘, 동아일보는 위기를 맞고 있고 해직기자들은 이렇게 언론계 안팎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맹활약 동아일보에서는 쫓겨났지만 다른 매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온 동아일보 해직기자들. 이들은 동아의 현 위기 상황의 중요한 원인을 '인재의 유출'에서 찾고 있다. 성유보 이사장은 "언론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인재 아니냐"면서 "예전 대량해직은 동아일보의 현 위기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75년 3월 27일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던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은 "75년 당시 동아일보는 5년, 6년, 7년, 8년, 9년차 핵심들을 반이상 잘랐다"면서 "당시에도 허리가 없어질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동아의 위상 하락은 복합적이지만 대량 해직의 영향이 차차 나타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능력있고 끼있는 기자를 대량 해직했던 동아일보는 26년 후 정체성의 위기까지 겪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수적 논조와 김대중 정권 비판에 어설프게 편승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신세대 독자 공략이 비교적 효과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비해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또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지만 '족벌언론' '사주전횡'에 대한 사회적 비판 고조도 짐이다. 김재홍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3월 15일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입사할 때)는 언론사들 분위기가 편집국장, 주필과 생각이 달라도 기자들 나름대로 일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편집국장, 주필과 생각이 다르면 같이 일할 수 없게 돼 버렸다"면서 "그런데 편집국장과 주필은 사주에 장악돼 있어 제작방침과 논조가 일원화돼 왔다"고 말했다. 결국 사주에 의해 언론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다원주의가 인정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혼재해 있는 신문사가 발전할 것"이라며 "(입사) 당시 동아는 일등신문이었고, 지역적인 색깔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없었다"고 동아일보에 뼈있는 충고를 던졌다. 김 전 동아 논설위원은 78년 동아일보에 입사, 햇수로 23년 간 언론계에 있었다. 그는 80년 4월 '동아자유언론선언' 사건으로 해직됐으며 88년 2월 복직했고 지난 2일 경기대 교수로 발령받아 언론계를 떠났다. 그는 동아일보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을 한 셈이다. 23년 동아 기자의 마지막 말 "입사 당시 동아는 일등신문이었다" 언론개혁이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2001년 3월 1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2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동아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 위원 뿐 아니라 함세웅 신부, 강원룡 목사, 진관 스님, 신경림 시인,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사는 1975년 대량해고를 사죄하고 원상회복 시켜라"고 요구했다. 26년 전 3월 17일 새벽 3시 술에 취한 보급소 직원 및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괴한 등 200여명에 의해 회사 밖으로 강제 축출됐던 이들은 "족벌언론 해체하고 민주언론 ⓒ 오마이뉴스 이병한 쟁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동아일보사 앞 횡단보도까지 행진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지만 언론계 안밖에서 맹활약을 했고 또 하고있는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만 26년 전에 유신독재와 동아일보사의 야합으로 동아일보사로부터 쫓겨난 이래 이땅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당시의 분노와 슬픔 따위는 이미 극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아일보사의 반민주적 폭거의 원죄가 소멸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론자유가 사회적 자유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오늘 이 '민주화시대'에 동아일보사가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1975년 '3·17대학살'에 대한 동아일보사 사주의 진실된 반성은 필수적이다." 한 언론계 중진은 "70, 80년대 시국의 고비마다 '동아'의 이름을 들을때 뭔가 기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몇몇 과거사를 깨끗히 청산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한다면 다시 '전통의 동아의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문은 그 나라의 문화재산"이라면서 "좋은 신문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때문에 그 몫은 사주나 직원들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스러운 것은 동아 내부에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2001/03/16 오후 11:49:43 ⓒ 2001 Ohmy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