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5일 월요일 오전 04시 19분 44초 제 목(Title): 장경섭/ 사대적 미국주의는 가라 출처: 경향신문, 우리모두 [시론]‘사대적 미국주의’는 가라 〈장경섭·서울대 교수〉 “우리 미국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수년전 TV로 중계된 국회 청문회에서 한 질문자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미국 시민이나 이중국적자는 아니었다. 다만 미국에서 배우거나 익힌 ‘선진적’ 제도와 관행에 비추어 한국의 ‘후진적’ 현실을 비난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잠재의식 속에서 아예 미국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필자가 있는 대학에서도 여럿 봐왔지만 생중계되는 국회 청문회장의 일이라 충격이었다. 연초에 한 유력 일간지의 신년 특집호를 펼치니 대다수 지면이 미국의 유명 학자, 기업가의 인터뷰나 기고문으로 덮여 있었다. 국내 인사의 글은 이 신문이 한국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해, 늘 그러하듯이 미국 관변학자들의 생각을 크게 소개했지만 보수든 진보든 국내 인사의 생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평상시 북한문제를 포함해 국제문제에 대해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행으로 모자랐던 모양이다. 한때 북한이 정치·군사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했었다면 우리 언론이 남북관계에 대해 지적인 통미봉남을 하는 느낌이었다. 해방 후 한국인들은 군사, 정치, 경제, 문화에 걸쳐 미국에 대한 절대적 의존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적 제도, 문물, 이념의 절대 부분은 우리 현실에 맞아서가 아니라 미국이 권유·강요했거나 미국을 모방했기 때문에 이 땅에 존재한다. 미국적인 것은 미국적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정당화되며, 이를 당연시하거나 강화시키려는 한국인들이 사회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불문가지로 한국인들의 입장이 되었다. 주한미군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보면, 막상 한국의 대미 종속을 유지시키는 것은 한국인들 자신인지 모른다. 서구 열강이 동양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사회에 대해 자의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유포한 것을 동양주의(Orientalism)라고 한다. 일본도 조선에 대해 비슷한 책략을 폈었다. 이와 대조되는 현상으로 한국인들에게서 일종의 ‘미국주의’(Americanism)가 엿보인다. 자신이 추종하고 모방한 국가인 미국의 존재를 과잉 미화하거나 절대시함으로써 의존적 현실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이다. 수많은 엘리트가 자신이 미국적이거나 미국(인)과 가깝다는 점을 내세워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해왔다.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언제나 한국의 정계 거물들로 북적이며 누구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왔다고 꾸며대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현 정권은 한국인들의 미국주의에 두 가지 상반된 영향을 미쳤다. 출범 직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적 경제질서와 개혁요구에 가장 충실히 따름으로써 김대통령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사람”이라는 국제여론의 평가를 받았다. 이는 다분히 반미적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에 대비된 것이었다. 한국이 전형이었던 국가주도 경제개발 모형에 대한 미국경제 기준의 비판은 그렇게 해서 한국인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대북포용정책에 관해서는 오히려 한국이 미국을 선도하고 나섰다. 남한의 지속적인 대북지원과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의 역사적 화해와 다각적 교류·협력 다짐이 이루어짐으로써 한반도 신질서 구축에 한국이 선도하고 미국이 따르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한국 “거인”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미국인의 생각을 통해 접근하는 시대가 근본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를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되돌릴 수 없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 준수가 선언된 것과 관련해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한 한국의 반대 표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제 겨우 남북한이 평화공존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한반도에 NMD가 백해무익한 데 이를 어떻게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주의에 젖은 일부 언론과 정·학계 인사들은 민족이익을 위해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 최종 편집: 2001년 03월 02일 18:5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