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isto (석) 날 짜 (Date): 1995년12월22일(금) 21시45분09초 KST 제 목(Title): 발해사에 대한 몇가지 생각.. 발해는 과연 우리 나라의 역사일까요? 우리는 발해에 대해 고구려의 상속자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고구려계가 지배계급으로서 다수의 말갈족과 발해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지배층이 고구려계라고 해서, 그들이 고구려의 상속자임을 명확히 했다고 해서 과연 그러한 발해는 우리 역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배층의 친연성으로 과연 발해를 우리 역사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말갈족의 존재입니다. 과연 역사를 보는 관점을 지배층에 맞추는 것이 타당할까요? 역사 발전의 주체는 생산과 변혁을 담당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지배층의 친연성을 근거로 발해를 우리 역사로 판단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닌것 같습니다. 피지배층으로서의 말갈족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고구려에서 발해에 이르는 몇십년의 기간.. 말갈은 어디서 나타났습니까? 아니면 그 사이에 갑자기 고구려계와 다른 말갈의 정체성이 생긴 걸까요? 물론 고구려 자체가 다수 민족의 연합왕국이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발해사에서 말갈족이 가지는 위치로 미루어 본다면 고구려사 마저도 한국사의 범주에서 멀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요? 말갈은 어느 특정의 종족적 명칭으로 쓰였다기 보다는 중국측의 사서 전반에서 나타나는 중국 중심적 시각에 의해 동북아시아의 이민족을 부르는 범칭으로 파악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백산, 흑수 등 일곱 말갈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들을 고구려계냐, 아니냐로 분류하는 건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국민, 민족의 개념이 불분명한 이 시기에 동북아시아에 존재했던 여러 종족들을 명확히 아방, 타방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발해의 이중적 주민 구성 문제는 이 시기가 고대 노예제 사회의 중심부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계급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습니다. 즉 발해사에 나타나는 말갈이란 명칭은 그 당시의 피지배계급을 칭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 일반적으로 백성이라 불렸던 것처럼 말갈 또한 이 시기 동북아시아의 피지배계급을 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이러한 말갈과 우리가 지배계급으로 불렀던 고구려계와의 극심한 대립이 해동성국이라 불릴 정도로 강성했던 발해를 순식간에 멸망시켜 버린 원인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발해의 지배계급이 고구려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피지배계급에겐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들에겐 생존과 생존의 터전이 더 중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지배계급의 폭압적 지배가 발해 자체의 붕괴를 가져온 중요한 동력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으로부터 지배계급과 이해를 자신들의 이해를 동일시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끊임없이 주입되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허위적 질서가 깨어질때 그들은 완전하게 적이 되는 것이며 이때의 적대감은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민족적 유대나 정체성을 뛰어 넘는 훨씬 강력한 것일 겁니다. 발해의 멸망을 다시 살필때, 그것은 이러한 내부 질서의 붕괴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말갈과 고구려계의 이중적 민족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위의 논의 전개는 사료에 기반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저의 생각과 관심사를 말한 것일 뿐입니다. 잘 아시는 분의 자세한 설명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