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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1Cust169.tnt4.se> 
날 짜 (Date): 2000년 12월  4일 월요일 오후 01시 26분 50초
제 목(Title): 서평/조우석, 김용옥 도올논어 


도올논어[1] 
조우석 
김용옥 지음
통나무, 2000  
  
 


일단 반가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어슷비슷한 생김새의 애송이 연예인들이 몰려나와 
시시한 말장난으로 찧고 까부는 프로그램 일색이라서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싶었는데, 공중파 TV 주말 시간대에 동양학 연구자가 출연해 공자와 논어를 
거론하다니 말이다. 그것도 무려 1년을 넘는 기간의 강의라니! 까짓 산술적 
시청률과 상관없이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본다고 해도 될 한국방송공사의 〈논어 
이야기〉는 공영방송이라는 채널의 행동반경을 한번 넓혀 보는 의미있는 사회적 
경험이다. 

실은 나는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20-20-20論’을 개진해왔다. 서태지 같은 
가능성이 높은 대중스타가 한두 명이 아니라 스무여나 명쯤은 돼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고, 강준만 같은 앞뒤 눈치 보지않는 삐닥이 고발자나, 김용옥류의 
‘학문의 흥행사’도 각기 스무 명쯤은 있어야 세상이 제법 살맛 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4천만 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실험의 주인공인 
김용옥 씨가 때맞춰 펴낸 단행본 《도올논어[1]》은 우리의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살펴보니 《도올논어[1]》은 공자와 《논어》에 대한 독립된 단행본이면서, 동시에 
현재 TV강의 내용의 흐름으로 봐서는 ‘방송 강의의 압축된 대본’으로 봐도 전혀 
문제 없을 듯하다. 따라서 나는 이번 신간이 갖는 전에 없던 종류의 위력에 
주목하려 한다. 단순 비교를 하자면 얼마 전 교육방송의 《노자와 21세기》가 
대공포 수준이라면, 한국방송공사의 강의와 《도올논어[1]》은 미사일 급, 그 
이상이라고 봐야한다. 매체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이고, 주제 자체도 
노장사상보다는 유교가 상대적으로 더 대중적이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신간 《도올논어[1]》은 근래 긴장감이 풀어진 馱作들이 섞여 나왔던 
도올의 근간들과는 선명하게 구분된다. 그 점 때문에 최근 몇 년 새 떠오른 우리 
사회의 유교 논쟁 내지,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무엇보다 비록 파편화된 형태로라도 우리에게 내면화된 유교의 유산과 
체질을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 기대된다. 어쨌거나 신간 
《도올논어[1]》과 강의 〈논어 이야기〉가 거론되는 어제오늘의 맥락을 나는 
이렇게 짚는다. 

우리는 달마 이래 의발의 전수 과정을 밝힌 선불교의 傳法 내지 傳燈의 과정이 
항용 그러하듯이 서양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호머의 《오딧세이》와 기독교 
성경의 텍스트 형성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 이상의 장구한 세월 우여곡절의 
집적이자 또한 적지 않은 음모의 과정까지 개입된 채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다. 《논어》 역시 그런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다만 문헌 비평의 
전통이 취약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런 요소가 가려져 왔을 뿐이다. 따라서 漢代 
이래 인간 공자와 《논어》에 대한 정형화된 사회적 선포(기독교식 표현으로는 
케리그마화된)는 조선왕조 이래 지금까지 우리의 엄연한 유산이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즉 비교적 소박한 인간학이었던 유교에 심드렁해진 동양 중세 
지식인들에게 매력 넘치는 형이상학의 소식을 전해준 불교와 도교, 그것의 
대들보와 서까래를 과감하게 차용해 만든 朱熹의 장려하고도 새로운 
건축물(性理學)이 이 땅을 포함한 동북아적 근세의 지평이자 세계관으로 기능을 
해왔다. 한반도의 경우 이 지평이 답답하게 느껴질 쯤에 다산 정약용이 다시 
원시유교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서학의 충격을 흡수한 새로운 經學의 수립’에 
도전을 했듯이―물론 그 성과가 얼마만큼 사회적으로 공유됐고, 재해석됐는지는 
별도의 문제이다―근대하고도 후기 근대를 살고 있는 우리야말로 의연히 공자와 
《논어》에 대한 재해석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형편에 나온 《도올논어[1]》은 기왕의 틀을 깨는 방식을 통해 어떤 암시를 
주는 데 성공적인 저작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라면 이 책은 분명 괄목상대할 
만한데, 그런 성공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밝히는 해석학적 
입장의 분명한 선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논어》 그 자체로의 회귀라는 나의 외침은 매우 소박한 요구이지만, 이러한 
소박한 요구는 결코 소박하지가 않다. 《논어》라는 텍스트의 이해는 공자 그 
인간에 대한 先理解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텍스트가 맥락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인간 공자에 대한 선이해는 다시 《논어》라는 텍스트에서 
발현된다는 패러독스에 봉착한다. 이 패러독스의 해결은 《논어》와 인간 공자 
사이를 왕래하는 인식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논어》는 분명 공자라는 인간의 
삶의 구조 속에 던져져야 한다.” 
(《도올논어[1]》 57∼58쪽) 

저자 스스로가 공표하는, ‘나의 편견일 수도 있는 해석학적 입장’ 선언이란 
공자의 삶의 역사적 사건의 나열에 몰입하지 않겠다는 발언이자, 동시에 
《논어》의 오리지날리티를 찾는다는 이유로 문헌에 대한 텍스트 비평에만 
시종함으로써 결국 미로에 갇히고 마는 식의 선택은 일단 피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텍스트 자체에 의지하되, 연구자인 나의 이해 구조를 들여다보는’ 
이런 이중의 긴장감 있는 작업에는 자칫 저자의 恣意에 따른 독단적 판단이 개입될 
요소가 없지 않지만, 나는 일단 장점부터 눈여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무엇보다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오랜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논어》에 대한 逐字的 해석 방식으로부터도 거리를 둘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사실 조선조 이후 우리에게 권장된 독서법은 ‘독서 百遍이면 義理가 自見’이라는 
이념을 전제로 한, 덮어놓고 달달 외는 방식이었다. 이 방면의 기네스 북 
기록감으로 金得臣이 《史記》의 백이 숙제 列傳을 무려 1억 1만3천 번 읽었다고 
하는 말이 전설적으로 내려오고 있고, 그것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해온 것이 고전을 
익히는 근대 이전의 방식이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저자 도올의 해석학적 입장 
선언은 세대별로는 근대학문 도입 한 세기인 지금 유교적 유산을 일정한 거리를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된 세대가 등장을 했음을 알리는 징후이겠고, 동시에 
전략으로 치자면 공자를 둘러싼 形骸化한 이미지를 해체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흔치않은 선택의 하나로 보여진다. 

구체적으로 책에서 드러나는 논의의 전개 방향을 살펴보자. 저자는 기존에 공자의 
삶에 관한 포괄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고 얘기해온 사마천 《사기》의 
‘孔子世家’를 음미를 해보지만, 동시에 이를 용도폐기 시킨다. ‘공자세가’란 
어차피 2차, 3차 자료를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고, 그것도 공자 사후 무려 4백년 
뒤의 텍스트에 불과한 것일진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할 순 없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공자세가’에 편입시킬 때는 그 자체가 케리그마이고, ‘編年體의 옷을 
빌려입은 신화’이자 픽션일 수 있다는 판단을 저자는 빼놓지 않는다. 

“나의 결론은 墨孟으로부터 사마천의 ‘공자세가’에 이르는 공자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소설이라는 것이다. (중략) ‘공자세가’는 공자에 관해 쓰여진 
최후의 장편소설이다. 그 이전의 모든 단편소설을 묶어 장편으로 편집한 것이다. 
물론 장편소설을 쓰는 가운데 사마천의 케리그마(선포)가 개입됐을 것이고, 그것은 
향후 모든 공자 논의의 祖型이 됐다. 그것은 최후의 장편소설이고 최초의 
장편소설인 것이다.”(29쪽) 

흥미롭다. 최선의 경우 우리는 도올의 신간과 강의가 위력 있는 장편소설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인데, 어쨌거나 그가 ‘비빌 언덕’으로 사용하는 것은 
‘맹자’ ‘장자’ ‘묵자’ ‘예기’등 4개의 문헌이고, 뜻밖에도 저자는 그 
중에서도 ‘장자’를 우선시 한다. ‘공자세가’라는 포괄적인 복음서의 등장 
이전, 그러니까 先秦 이전 제자백가의 심상과 문헌 속에는 공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니 이를 역으로 추적해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자를 희화화하는 
장자 속에는 거꾸로 맹자 계열에 의해 도덕주의로 俗化되기 이전의 공자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도올의 우상 파괴적인 공자상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TV 강의에서 일부 밝혔듯이 그가 밝힌 공자 가계의 실상부터 
충격적이다. 신비화 대신 대뜸 ‘賤民 공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자의 가계는 아버지(叔梁屹) 대까지는 성을 채 갖지 못했던 평민이었다는 
것이고, 숙량흘이 무당 계열 집안에서 어렵게 後娶한 세번째 부인(顔氏女)과의 
사이에서 무언가 정상적인 결혼이 못 되는 방식으로 출생한 ‘사생아 공자’의 
모습이 다소 의도적으로 강조된다. 

실은 조선조 당대의 사대부들은 물론 중국 사람들도 이런 사생아 공자의 가능성을 
일부나마 조심스럽게 다뤘거나 곤혹스러움 속에 쉬쉬 되어왔던 대목이다. 중국문학 
연구자로 원로에 속하는 차주환 선생이 최근 재출간해낸 《공자, 그 신화를 
밝힌다》(솔 출판사)의 경우 전형적인 공자 신비화적 서술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의 책에 따르면 공자의 애비 숙량흘에 관한 서술에서 그가 ‘혈통이 엄연한 
인물’이었다고 옹호하면서, 공자가 황제의 자손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실제로 이 책에는 공자의 족보를 그려넣어 黃帝 軒轅氏 이후 27대의 족보를 
그려넣고 있어 대조적이다. 물론 공자는 ‘生而知之의 하늘이 내린 聖人’으로 
휘황하게 서술된다. 글쎄다. 나의 경우 의도적으로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공자의 母系가 ‘무당동네의 판자촌에서 개차반으로 산 천민’이라는 식의 도발적 
서술에서 외려 더 심리적 공감과 리얼리티를 느낀다. 더구나 그런 사실이 공자의 
전기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부분 일치를 보고 있다면 말이다. 

이런 공자관이 우상파괴로 그칠 수는 없다. 외려 바로 그 파괴 위에 저자가 
겨냥하고 있는 ‘자기 계몽적 인문주의자로서의 공자像’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이다. 즉 공자의 斯文에 대한 갈망이란 ‘殷代的 의미의 종교주의 내지 주술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周代的인 의미의 인문주의로 문명의 축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저자는 이런 새 공자상을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가 말한 
‘근대화=脫주술’ 명제를 동원하고 있는데, 아마도 지금의 사정에서 가장 
설득력이 높은 이미지가 아닐까 판단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이 계몽적 저술에 속하기 때문에 책에서 상술되지 않아 아쉽지만, 
저자가 공자의 정치 사상을 맹자류의 도덕주의적 왕도 정치로만 한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점, 그리고 공자의 유명한 魯去(노나라를 떠나 유랑의 길을 밟는 과정) 
14년의 기대와 좌절을 기점으로 그의 사상이 후기 사상으로 전환하며, 그것은 
아마도 ‘삶과 죽음이 하나의 새로운 지평으로 융합되는 斯文의 세계’이자 인간 
정신의 내면적 고양이라고 암시하는 대목은 매우 암시를 많이 준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공자의 후대의 어록이 《논어》 자체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 정신의 내면적 고양’이라는 것이 모더니티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신문의 지면에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책의 후반부인 
《논어》 〈學而篇〉에 대한 흥미진진한 번역 대목이라고 언명을 한 바 있는데, 이 
판단은 지금도 변화가 없다. 다시 읽어봐도 앞서 밝힌 그의 해석학적 입장에 따라 
‘논리란 느낌의 총체성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밝히면서 逐語상의 
일치보다는 맥락의 일치를 앞세우고, 형식논리보다는 삶의 총체적 느낌을 우선시 
했다는 도올식 《논어》 번역의 한차례 때를 벗은 날렵한 번역이고, 무엇보다 
느낌상의 호소력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앞서 그린 공자상과의 
일관성도 인정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논어》가 유교의 최대 걸림돌이자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서처럼 인간 공자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그 유례가 없다.”(48∼49쪽) 

“우리는 너무 공자를 유가, 즉 유교철학이라는 선입적 편견 속에서 해석하는 데 
익숙해 있다. 공자는 단 한번도 유교를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인간을 말했고, 삶을 
말했을 뿐이다. 따라서 공자라는 인간의 생각 속에는 유불도의 모든 면모가 
엿보인다. 그에게는 楊墨도 孟荀도 韓非도 다 들어있는 것이다. 정통과 이단의 
분별심 속에서 공자를 읽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176쪽) 

사실 내 개인적으로 이번 책을 통해 도올에게 한 수 배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점은 실은 바로 이점이다. 그 동안 너무 오랜 세월동안 고전의 권위와 述而不作을 
강조하는 동양적 지평 때문에 ‘논어’ 밑에 깔려 자기 안목을 스스로 뭉갤 필요가 
없음을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논어》는 공자 사후 
여러 학파들의 전승과정을 통해 집적됐고, 따라서 주제의 통일성이나 시계열별 
나열 등 여하한의 유기적 구성을 취하는 데 실패를 한 채 지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반면 이런 《논어》의 무잡성이 특정 세력에 의해 단일한 색채로 공자가 
그려지는 것을 방지했다는 역설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즉 《논어》의 20편은 편집 시점과 편집 주체가 상이하기 때문에 그 서술 내용이 
공자 삶의 어떤 체험을 반영하는가, 공자 제자 집단 중 어떤 음모의 소산인가를 
古注와 今注를 염두에 두면서 섬세하게 헤쳐갈 경우 승산은 없지 않다. 이를테면 
저자의 好惡의 강력한 정서적 표현―나는 이런 정서적인 표현을 포함한 가치 
판단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동양의 고전 해독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편이다―이 동원된 다음의 인상깊은 대목 같은 데에서 적지 않은 암시를 받았다. 

“〈學而〉편은 매우 기분 나쁜 편이다. 맨 처음 제1장의 공자 말을 빼놓으면 
진부하고 도식화된, 공자의 후기 제자들의 말이다. 有子의 ‘本立而道生’이니 
‘孝弟가 仁之本’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은 너무 개념적이고 조작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말들이며, 살아있는 공자의 모습을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논어》에 대한 인상이 도식화된 가족주의적 규범 윤리, 그리고 복종만을 
강조하는 권위주의적 노모스로 왜곡됐다. 우리 조선조 유생들의 통폐가 이렇게 
잘못 편집된 《논어》의 체계에서 유래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有子(有若)나 曾子(曾晳) 등 ‘머리 나쁜 공자의 제자들’의 
손에 의해 규범 윤리화된 언명들과, 공자의 멋스런 언어의 운용―공자의 
언어감각은 누구라도 인정하는 그의 탁월한 요소이다―을 어렵지 않게스리 
구별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판단이 언감생심이나마 얼핏 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저자의 《논어》 해석의 실전 풀이 중 그럴싸한 도올 스타일의 集注로 인정할 
만하며, 앞서 언급한 ‘자기 계발의 인문주의자인 공자의 상’에 부합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는 ‘子曰 巧言令色은 鮮矣仁’의 대목을 꼽는다. 

종전까지 우리는 이 대목을 너무 오랫동안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修身의 덕목 
정도로 이해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도올은 노자와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선불교의 不立文字까지 포함시켜 ‘인간의 언어적 표현의 교묘함에 대한 깊은 
저주의 표현’이라고 장중한 철학적 언표로 치환시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그 유명한 노장의 ‘道可道 非常道’의 인식론적 세계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따라서 공자의 仁과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침묵의 세계’와 밀접하다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이상의 서평이 마무리되는 판인데, 어쩌다 보니 제 흥에 겨운 독서 감상문이 
돼버린 꼴이다. 지면의 경제적인 운용이 부족한 데다가, 솔직히 도올의 텍스트를 
비판할 능력의 미비 때문에 저자의 텍스트와 나 사이에 정서상의 느낌이 서로 
일치되는 대목에서 감탄을 내뱉은 형국이 됐다는 지적도 피할 길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유교라는 테마 자체가 평균적 한국인들의 내면상의 浸潤와 표면적 嫌忌가 
번갈아드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회에 오래전부터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던 책까지 소개하려 한다. 

문학작품을 무색케 하는 문장의 정교함이나 학문적 깊이 면에서 근현대 저작의 
하나로 꼽는 소신에 변함이 없는 그 책은 지난 1976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나온 
문고본 《예루살렘 입성기》이다. 연세대 민영규 명예교수의 이 책은 무엇보다 
기독교의 철옹성 도그마에 대한 가장 사려깊은 문제제기의 하나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금세기의 최대발견 중의 하나인 쿰란 문서를 토대로 하여 역사적 예수, 즉 
그리스도로 선포(케리그마화된)되기 이전의 예수像을 헤쳐나가는 이 기행문은 
아마도 성경을 가장 非신화화한 상태에서 읽을 때 나오는 결론이자 유추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묘사한 예수상이 不敬스러운가 하면 차라리 그 
반대에 속한다. 구하기 어렵지만 일독을 권하는 이 책이 문득 생각이 난 것은 
도올의 유교론과 공자상이 바로 민영규 선생이 그리는 예수상과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 조우석 / 중앙일보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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