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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1Cust178.tnt3.se> 
날 짜 (Date): 2000년 11월 30일 목요일 오후 02시 01분 22초
제 목(Title): 권혁범/ 자아도취와 미국대선 


[논단] 자아도취와 미국 대선


 

시드니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를 보도하던 한국 기자가 호주인 관중 한 사람에게 
묻는다. 태권도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호주인은 영어로 대답하고 뉴스 자막에 
한글 번역이 나온다. “복싱보다 태권도가 좋다. 속도감이 있다.” 소파에 파묻혀 
있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귀에 들린 말은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매우 
기술적인 종목이더군요. 저는 그다지 복싱팬은 아니지요. 뭐라고 더이상은 설명할 
게 없군요.”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는 사람들 


단순히 번역 기술의 문제였을까? 내 생각으로는, 외국인들도 태권도에 반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기자나 편집자의 의지가 정확한 번역을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미리 심어진 어떤 가치편향이 매우 ‘창조적인’(?) 오역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것은 태권도의 세계적 인기도를 자동적으로 전제하려는 욕망, 혹은 
그것을 외국인으로부터도 반드시 확인받으려 하는 민족적 자아도취증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본다. 자가용을 사려 하거나 혹 산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의 눈에는 오로지 자동차만 눈에 보인다. 바로 코앞에 지나가는 
수많은 자전거를 의식하지 못한다. 갓 부모가 된 사람은 두눈에 오로지 갓난아기에 
관련된 물건만 보일 뿐이고 누구와 만나서도 오로지 자식 얘기에만 몰두한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외부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자신의 관심이나 세계관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때로는 타자의 모습을 자신의 주관적 마음에 따라 
제멋대로 왜곡하며 자신의 참모습마저도 보기를 거부한다. 자기 중심적 사유는 
자아도취증(narcissism)을 유발한다. 

개인의 자아도취는 그래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많은 폭소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민족적 자아도취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우선 그것은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못 보게 만든다. 내부 비판을 ‘불순한’ 음모나 
사대주의의 결과로 치부해버린다. 더 위험한 것은 다른 사회와 문화를 자기중심적 
잣대로 매도하거나 터무니없이 왜곡해서 ‘읽어’ 내버리는 습관이다. 그러한 
습관적 사고는 현실을 구체적인 사실에 바탕해서 읽고 탐구하려는 태도를 
치명적으로 방해하게 마련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언론의 보도 그리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한 아전인수격 반응은 참으로 놀랍다. 뽐내기 좋아하던 미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만천하에 벌거벗겨진 것에 대해 “깨소금이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그동안의 열등 콤플렉스나 미국이 취해온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한 반감을 감안해 
그렇다 치자. “거기에도 선거부정이 있네”라는 식의 카타르시스적 자기 안심 
강화논리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미국이 망할 
징조다”, “미국이 드디어 진보와 보수의 국론분열이라는 심각한 암초에 
걸렸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식의 반응을 내비칠 
때마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공부’는 ‘우리 공부’ 


여기서 미국 정치에 대해 이론적 논의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그런 유례없는 혼란과 당파적 대립의 와중에서 미국 대통령이 외유를 
가고(물론 한국 대통령도 그 점에서는 훌륭하다) 국지적인 소규모 시위와 치열한 
법적 공방만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명한 인권운동가이며 민주당 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의 플로리다주 ‘출동’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몇천명 규모를 넘지 
못했다. 안전 수위를 넘고 있는 당파적 설전도 결국은 법원 판결로 승패가 가려질 
뿐이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거나 지겨워할 뿐이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서, 심지어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미국사회는 
전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법치주의 문화나 제도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고 정치적 당파성이 맹목적 자아도취에만 매몰되지 않는 객관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치명적 위기를 
경험하고 그것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회다. 

민족적 나르시시즘은 여전히 미국문화와 정치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선입관에 맞춰 그곳의 현실을 단순화하고 ‘우리 식’으로 해석한다. ‘우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모든 노력은 미리 정해진 ‘우리의 관점’에 어긋나는 
수많은 사실을 외면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확대 
강조하게 만든다. 이게 정말 위험한 것은 객관적 ‘사실’에 부딪힐 때 그 
충격만큼의 반작용과 자기비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민족적 자아도취에 기초한 
반미감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대주의적 친미와 부당한 한-미관계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된다. 미국 공부는 사실은 ‘우리’를 공부하는 문제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 
kwonhb@dragon.taej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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