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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tide91.microsoft> 
날 짜 (Date): 2000년 11월  3일 금요일 오전 03시 01분 16초
제 목(Title): 정운영/ 누가 '에비'를 두려워하랴 


[정운영 칼럼] 누가 '에비'를 두려워하랴


소싯적에 읽은 이어령 교수의 '에비 문화론' 이 가끔 나를 괴롭힌다. 아기가 보채면 
할머니나 어머니는 흔히 에비가 온다는 '협박으로' 울음을 그치게 만드셨다.

요즘과 달리 착하고(!) 어수룩했던 우리 때는 제법 그것이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비를 부르는 어머니도, 울음을 그치는 아기도 그 에비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에비를 두려워한 것이다.

*** 아기울음 뚝 그치게하던…

우리 경제에 에비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 나는 시장을 들고 싶다. 모두가 시장 
만세를 외친다.

정부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국정지표로 내세우고 기업은 시장원리를 염불처럼 
되뇌면서도, 정작 시장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준칙(rule) 이냐, 재량(discretion) 이냐의 논쟁은 경제학계의 해묵은 숙제다. 
정부가 준칙만 정하되 재량은 당치 않다는 것이 고전파 경제학의 주장이라면, 
준칙만으로는 경제가 멋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재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케인스 
경제학의 반론이다.

나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후자 편이었다. 먼저 기업은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지만, 정부한테는 국가이익이라는 한층 포괄적인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기업은 재산과 경영의 '세습' 을 불가침의 원리로 받드는 데 비해 정부는 
'선거' 를 통해 주기적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혈연 밖의 전문경영인도 있고, 또 세습만도 못한 요식행위 선거도 
있기는 하다.

최근 나의 이런 소신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래 우리 경제가 드러낸 온갖 혼선과 시행착오는 
바로 '시장 에비' 에 대한 오해의 소산이었다.

경영부실로 태산 같은 빚을 져도 정부가 대신 물어주는 관행이 기업이 생각하는 
시장이었다. 부도나 법정관리 따위의 칼을 들이댔다가 되레 당하느니 미적미적 
시간을 끌면 정부가 어떻게 구해주겠지 하는 배짱이 금융계의 시장원리였다.

빚을 못 갚으면 자산을 팔고, 그래도 안되면 문을 닫는 시장의 상식은 아예 그들의 
사전에 없었다. 결코 시장은 그처럼 흐물흐물한 에비가 아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고무줄 관행이 아니라, 파산과 퇴출을 비롯해 자신의 
실패에 분명히 책임지는 냉혹한 현실이다.

정부 또한 1백9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도 계속 헛물만 들이켰다. 
정부 소유의 기업과 은행에조차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한시가 급한 구조조정의 
칼을 뽑지 못했다.

그러고도 40조원을 더 달라고 국민한테 손을 내민다.

살릴 기업은 살리고 죽을 기업은 죽게 하겠다는 '공자 말씀' 을 다짐한 것이 벌써 
몇번인가? 누구 눈에도 어김없이 쓰러지고, 또 쓰러져야 마땅할 기업에 퇴출 아닌 
구출의 특혜를 베푼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민주적 시장경제가 '민주적' 은 
고사하고 시장 준칙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대우.대생.동아.현대 사태의 늑장 처리에 
따른 혈세 낭비를 크게 줄였을 터다.

대마 퇴출이 던질 사회적 충격 때문이라는 설명도 의심스럽지만, 퇴출 비용보다 
더한 구출 비용을 들이고도 회생이 안된다면 대체 그 책임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재량이 탈선으로 치달은 추한 작태는 생각만 해도 혈압 오르는 금융감독원 
일각의 비리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고양이에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라지만, 실은 고양이가 화낼 일이다. 고양이가 
감독을 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어떤 고양이가 그러던가?

벤처 투기로 왕창 거머쥐면 내 돈이고, 쫄딱 망하면 본전 돌려받는 그 희한한 
짓을…. 

*** 시장 준칙은 무시 탈선만

결국 기업도 정부도 준칙은 밀어놓고 재량의 탈선만 즐긴 것이다. 정부는 얘야 
그러면 '에비 온단다' 며 건성으로 말렸고, 기업은 "에비 좋아하네" 라면서 
귓등으로 넘기는 이 한심한 '에비 타령' 속에 국민경제만 골병들었다.

정부 약속이 헛일이라면 시장이라도 믿어보고, 재량이 옆길로 샌다면 준칙이라도 
붙잡자는 허탈한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재벌 놀이부터 배운 애송이 벤처 사장과, 코스닥을 주무른 사채 전주와, 거기 
놀아난 감독 관청이 - 그리고 KKK라는 권력 실세가(?) - 협잡 열연을 벌인 무슨 
게이트인지가 막판에 재를 뿌렸지만, 그럴수록 서둘러 구조조정을 끝내라는 여론의 
반향은 이만저만 다행이 아니다.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매서운 각오와 결단으로 이번에는 국민이 믿을 '개혁 작품' 
을 내놓아야 한다.

에비가 아닌 시장의 준칙으로!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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