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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Tao ( 烏有先生)
날 짜 (Date): 2000년 10월 23일 월요일 오후 09시 15분 07초
제 목(Title): 조정환의 자기비판적 박노해론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슬픈 초상
 


 박노해씨가 출소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그간에 그는 신문과 방송과 강연을 
통해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 모습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이에 대해 
지난 1980년대 말 노동해방문학론을 정립해 진보문예운동 진영의 대표적 논객으로 
활동했던 문학평론가 조정환씨가 '말'에 자신의 생각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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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수감 이후, 특히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의 출간 이후 박노해가 
전개하고 있는 변화된 사유의 노선에 대한 반응은 내용과 표현 모두에서 매우 
다양하다. 그가 혁명과 노동계급 기반을 떠나버렸다며 배신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적대의 시선들, 그의 전위주의와 소영웅주의는 8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는 냉소의 시선들, 사회주의로부터 전향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자세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하는 긍정의 시선들 등은 그 다양한 
반응들 가운데에서 뚜렷이 변별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80년대 한국의 
노동계급 운동을, 아니 나아가서는 20세기의 세계 노동계급 운동을 규정해온 
(그러나 이제는 종말에 이른) 사회주의의 전략과 노선에 대한 여러 입장들로부터의 
변별적 태도표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사회주의의 붕괴와 사노맹의 해체, 그리고 노동해방 문학운동의 
실종 이후 박노해의 철학적·시적 사유 노선을 사회주의 정치 전략 및 미적 전략의 
좌절과 현실 적응 시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적응’은 좌절을 종말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닌 만큼 그 좌절을 낳은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아님을 
여기에서 미리 말해두자.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글은 박노해의 변화에 대한 
하나의 비판이다. 그러나 박노해는 (적어도 나에게는) 결코 비판의 대상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너 속의 나’일 뿐만 아니라, ‘우리 속의 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노해에 대한 비판은 동시에 나와 우리에 대한 비판이다.

박노해의 문제제기

광주에서 민중의 민주화 요구가 폭발한 지 3년 뒤인 1983년 박노해의 등장은 
우리들의 관심을 공장으로 돌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시들이 1960년 이후 
박정희 국가자본주의 정권이 추진한 급속한 경제개발과 근대화 과정의 뒤안길에서, 
이른바 근대화의 역군인 노동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통해 드러난 것은, “드르륵 득득/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으로/장미빛 꿈을 잘라/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끝도 없이 
올린다”(『시다의 꿈』)로 그려지는 ‘긴 공장의 밤’이었다. 그 세계는 ‘나의 
인생’이 ‘일당 4,000원’에 팔리고(『나는 얼마짜리지』), “긴 노동 속에/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사라져” 버리고(『지문을 
부른다』), “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손 무덤』)가고, “늘씬한 
정순이는 이렇게 살아 무엇하냐며/맥주홀로 울며 떠나고/영남이는 위장병에 
괴로워하다/한 마리 폐닭이 되어 황폐한 고향으로 떠”나는(『어쩌면』) 세계다. 
그곳은 단순한 가난의 장소가 아니라 비참의 장소였다. 
그러나 『노동의 새벽』(이하 『새벽』)에서 드러난 박노해의 탁월함은 그가 
노동자를 단순한 희생물로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조국 번영과 
복지국가 건설로 미화되는 근대화 개발이 비참의 생산 과정임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 비참의 장소가 곧 꿈과 투쟁의 탄생 공간임을 그려낸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하나로 연결하고 싶은/시다의 꿈”(『시다의 
꿈』)의 탄생, 자신을 기계로, 알 낳는 양계장 닭으로 보며 “저들은,/알 빼 먹는 
저들은/어쩌면 날강도인지도 몰라/인간을 기계로/소모품으로/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점잖고 합법적인 날강도인지도 몰라//(…)/우리들의 피눈물과 절망과 고통 
위에서/우리들의 웃음과 아름다움과 빛을/송두리째 빨아먹는/어쩌면 저들은 
흡혈귀인지도 몰라”(『어쩌면』)라고 보는 적대의 눈의 생성, 그리고 
“사랑은/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사랑은 갈라섬,/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사랑은 회오리,/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 일어서/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여 피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사랑』)이라는 전복적 감성의 출현, 이것들은 “죽음 같은 노동과 삶이, 
핏발 선 싸움이 준/뼈저린 각성”(『허깨비』)의 산물이었다.
『새벽』이 이미 이 시들의 형상화 범위를 훨씬 넘는 시대를 체험한 우리에게 
아직도 감동을 주고있다면 그것은 광주에서 맹아를 드러낸 봉기 주체들이 공장에서 
집단적으로 생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자본과 산업 노동자를 축으로 하는 사회적 
적대의 재구축을 드러내고 투쟁을 통해 열릴 ‘노동해방’의 꿈을 제시한 때문일 
것이다.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새벽』의 시적 사유가 비참 속에서 적대를 발견한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적대의 
전개를 보여주기는 어려웠다. 비참은 구체적이고 절실한 형상을 얻지만 주체는 
무형상의 감정과 꿈과 의지로만 등장한다. 적대가 이렇듯 불균형적이고 미발달 
상태에 있음으로써, 시에서 제시되는 전망은 소박한 인간주의와 추상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시에서 투쟁의 무기가 노동조합과 조합적 연대로, 투쟁의 중심 
목표가 재분배로, 희망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그 시의 강한 노동자주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인간’, ‘평등’, ‘민주주의’, ‘통일’ 등 부르주아 혁명이 산출한 
언어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동자의 자존심 위에 기초짓는데, 그것은 “밤을 지새며 
노동하고 생산하는 하늘 우러러 떳떳한”(『밥을 찾아』) 자존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자존은 자본과의 적대를 밀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자본에 포섭된 노동자의 형상이며 자본 속에서의 자존이기 때문이다. 즉 
『새벽』은 비참을 극복하려 하고 해방을 추구하지만 그 노력은 자본에 포섭된 
노동자 형상에 대한 이러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만큼 그것이 제시하는 전망 역시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박노해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년 노동자투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반성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열어나가는데, 그 시기는 그가 공장에서 추방되고 
학생·지식인 운동의 혁명적 민주주의 분파와 결합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 
결합의 산물은 정통 볼셰비즘 전통의 한국적 수용으로서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사노맹이었다. 
이후 박노해는 사회주의의 발견을 ‘노동해방의 본명’ 회복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제주의, 조합주의와의 투쟁을 선언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결별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한 볼셰비즘적 사회주의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노동계급 전위당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 
노동계급의 정치지도자들이 집권하는 날, 이 사회의 억눌린 모든 가능성들은 
놀라운 현실성을 획득할 것이고 우리 조국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을 나는 
확신한다”는 박노해의 진술은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는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집권은 인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의 유일한 길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자율성이 전 사회의 생산 속에 영구히 지속될 것이고 그 사회 속에서 인간은 
임금노예적 강제노동에서 벗어나 ‘기쁜 노동’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가 추구한 민족민주혁명, 민주주의 공화국의 수립, 민족통일,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 계획경제 등은 오직 전위당 건설과 그것의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의 
관계 속에서만 실제적 의미를 갖게 된다.
1991년경에 전개된 정치적·조직적 상황은 그의 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왔고 그것의 현실 적합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는 법칙이자 진리로 내면화되어 있었던 그의 사회주의 이념에 충격과 균열을 
가져왔다. 수년 뒤 박노해는 “사회주의의 붕괴는 목숨 걸고 지켜온 내 신념의 
바탕을 붕괴시키는 충격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충격의 깊이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 (노선을 불문하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 사람들의 경험과도 일치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노해는 이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여 자신의 변화의 동력으로 바꾸어 나갔는가? 
“내가 꿈꾸던 그 사회주의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을 때는 끔찍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숨막히는 절대주의, 유일주의, 관료 사회의 부패상, 피 어린 숙청, 저급한 
평등주의, 전통 가치와 문화의 파괴, 개성과 인간성의 상실… 그 참담한 삶의 
풍경.” 그는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참상’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소리 
높여 주장하던 그 사회주의를 이 땅에서 이루어냈을 때, 나는 과연 그것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들인들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피 묻은 스탈린 일당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그는 좌절한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변명하고 싶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소리치며 도망가고 싶었다.” 
이러한 좌절과 도피, 이념적 재기를 위한 반복적 시도 끝에 그는 결국, 사회주의 
붕괴를 사회주의의 ‘패배’로 받아들이면서 그 패배의 원인을 ‘마르크스 사상의 
바탕에 깔려 있는 서구 이성주의’, 그것의 ‘이원론적 근대 사유 틀의 한계’, 
‘20세기 초반의 생산력 수준에 가로막혀 있는’ 그들의 ‘우주관, 생명관, 인간 
이해’에 돌린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이 사회주의 붕괴의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박노해의 몸철학과 개혁적 진보주의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박노해의 철학적 해석은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1990년대 초 
한국의 탈마르크스주의적 반응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실제로 그의 분석 언어는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계급적·정치적 분석을 회피했던 당시의 탈마르크스주의 
조류의 언어들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붕괴의 원인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있었다고 본 한에서 그의 새로운 작업이 비마르크스주의 
방향에서의 새로운 철학 정립의 시도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7년여의 ‘삭발, 침묵, 절필, 정진’ 끝에 그가 내놓는 대안철학은 몸철학이라 
명명된다. 
그것의 정립명제는 매우 간단하다. 우주는 몸이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몸적 
존재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원론’(?)을 대체하는 박노해의 혁신 철학은 몸 
일원론이다. 그러나 몸은 양극적인 것들의 갈등과 조화를 본성으로 한다. 우주는 
음과 양의 갈등과 조화이며 인간은 이기성과 공동체성의 갈등과 조화이다. 이 
양극의 조화가 깨질 때 모든 존재는 병들고 죽는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유적 
본질의 존재’라 규정하며 인간이 가진 사회적 공동체성에만 주목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바탕인 몸의 욕망과 이기성을 올바로 보지 못했다.(…) 인간성과 노동계급 
일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위에 세운 유토피아는 절대 유일주의 특성인 일면성과 
무성찰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 공산당이 집권하는 순간부터 추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전에 이미 그 안의 인간이 무너져 
있었다. 먼저 인간이 서야 한다. 그렇다. 다시, 문제는 인간이다.”
박노해의 몸 일원론 철학은 곧장 정치학으로 발전한다. “인간의 진보란 개인의 
자유의 확대이다. 그리고 그 개인은 천지인이 합일된 우주적 개인이다. 60억 인류 
가족 모두와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노동하고 자기를 실현하고 욕망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큰 개인이다. 우리는 그런 성숙한 인간성을 가진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와 참여에 기초한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좌우 양 날개의 ‘무게중심’을 잡는 ‘중용’의 정치, 
‘몸통’의 정치를 통해 가능하다. 현실에서 그것은 인간의 본연인 자본주의와 
인간의 당연인 사회주의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일이다. “자본주의 안에서 
민주복지 개혁에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미래 진보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이룩한 생산적인 요소와 가치로서의 
사회주의, 생태주의와 여성주의, 영성주의 등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21세기의 진정한 진보운동’인데 여기에는 선례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회주의적 가치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바탕에 접목시켜 온 (…) 서유럽의 
‘열린 사회주의’이다.”
박노해가 제시하는 몸철학의 역사관은 그가 서유럽의 ‘열린 사회주의’(사노맹 
시기의 그가 비타협적으로 비판해 온 사회민주주의)의 때늦은 수용을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이론적 축이다. 그것은 “진보의 본성은 변화이다. 세상 만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 
그러나 그에게는 ‘눈물겨운 희망’의 역사관이다. 그는 근대사를 생존단계와 
생활단계(혹은 문화단계)로 구분하며 한국은 서구가 오래 전에 도달한 생활단계에 
이제서야 도달했다고 파악한다. ‘진화한 새 인류’로서의 신세대의 탄생은 그것을 
증거한다. 서태지가 표출한 새로운 ‘노래 문법’, 새로운 ‘감성’, 새로운 
‘리듬과 비트’는 구세대에게 ‘농경 시대, 산업 사회의 낡은 껍질을 한꺼번에 
깨뜨려 버린 정서적 충격’을 던진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의 운동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생존단계의 낡은 패러다임, ‘정치권력과 자본이 한 
몸이고 그에 맞서 민중이 적대하던 패러다임’에 묶여 있다.
생활단계에서 권력은 ‘정치권력, 시장권력, 시민권력’으로 3자 정립된다. 
시장권력은 정치권력에서 분리되어 사회의 무게중심, 몸통이 되었다. 운동은 이 
무게중심과 통함으로써만, 즉 몸통함으로써만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시장은 타도할 적이 아니고’ ‘우리의 개척지’이며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이 시장이 아주 거룩해지는 것’, 즉 ‘높은 정신가치와 지식과 
인간성이 높은 시장가치로 평가받는 시대’이다. 이것이 ‘지조와 변절의 양 극단 
사이에서 바른 변화의 길을 창조적으로 열어’ 나가는 방향이다. 한국에서 그것은 
어떤 형태로 드러나야 하는가? 블레어의 제3의 길의 중도노선을 아직 우익이 
득세하고 있는 한국적 사정에 맞춰 왼쪽으로 살짝 구부리는 ‘중도 좌’의 노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고 시도하는’ 김대중 정부의 ‘중간잡기’ 개혁에 
대한 ‘지원과 참여, 섬세하고 지혜로운 비판과 압력, 무엇보다 김대중 이후의 
보수 우경화에 대비한 처절한 자기개혁과 자기 실력 키우기’. 이것이 박노해의 
진보주의 개혁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 개혁은 누가 담당해 나갈 것인가? 계급보다는 세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된 박노해는, 그것을 80년대를 이끌어온 386세대의 현장정신과 
생활단계에 출현한 신인류인 신세대의 3N(New, Now, Network) 정신을 결합하는 것, 
그것들을 나눔과 참여와 연대의 정신으로 살려 내는 것에서 찾는다. 이러한 정신이 
강고한 수구기득권 세력과 ‘경쟁’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 각 분야의 
스타,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은 박노해가 그리는 진보운동의 주역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좋은 상품’이 되고, 높은 시장가치로 평가받아 생활진보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며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릴 위험이 있는 극우와 극좌를 
경계하면서 미래 사회의 몸통을 가꾸어 나갈 ‘창조적 소수’, 이 시대의 ‘진정한 
전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인가 삶인가

나는 90년대에 이룬 박노해의 변화를 동구의 볼셰비즘적 사회주의에서 서구의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변화로 읽었다. 서구 이성주의의 한계가 그 자신의 철학적 
반성의 출발점이었지만 그의 귀착지는 서구 사회주의였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 
특히 유럽 여행 이후의 그의 글에서, 서구문화는 우리가 따라 잡아야 할 어떤 
모범으로 예찬된다. 그렇다면 그는 서구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을 추수하고만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몸철학과 중용의 정치학에 따라 정치권력과 시민권력 
사이에 있는 시장권력이라는 몸통을 건강하게 키우고자 한다. 
상품과 시장은 이제 그의 사유의 중심에 놓여 있다. “생존을 지키겠다고 
정리해고를 무조건 반대해 나갈 때, 이 시기를 놓치고 나면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나라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라는 그의 반문에는 인간의 존엄보다 시장의 
존엄을 더 중시하게 된 그의 가치관의 변화가 깃들어 있다. 이제는 생존단계의 
산물인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 대신에 ‘고르게 덜 벌어서 덜 쓰는 삶’의 
꿈을 지녀야 한다는 그의 새로운 문화론은 시장의 몸통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시장 섭생의 논리인 셈이다. 시장 몸통론과 시장 섭생론은 이미 그가, 아직도 
국가의 시장 견제적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보다 
시장 본위의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더 많이 전진했음을 보여준다.
박노해의 변화는 1991년 초 사노맹의 유로코뮤니즘적 모색 시도가 도달한 최후 
도달점을 보여주며 한국의 볼셰비즘적 사회주의의 급속한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약 10여 년 사이에 전개된 이 변화는 유럽의 노동계급 운동이 1백50여 
년에 걸쳐 밟아온 과정의 압축이행에 다름 아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붕괴와 
제국주의의 성립 이후 유럽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전위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과 
그것을 매개로 한 시장의 무정부성 제거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분열은 국가권력 장악을 혁명을 통해 이룰 것인가 선거를 통해 
이룰 것인가의 차이였고 그것은 해당 국가의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후 국가권력 장악론은 마르크스주의 정통의 핵심적 요소로 정립되어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지배한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정작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 이후 
출간된 『공산주의자 선언』 독일어판 서문에서 “‘코뮌은 노동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고 자기비판했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부터 마르크스의 책임을 면제시키려는 ‘강변’이자 ‘비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책임이 어떠하든 분명한 사실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1872년 마르크스의 
깨달음의 올바름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는 
내부로부터, 소련에 형성된 새로운 시민사회로부터, 사회주의 전위당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레닌은 혁명 직후 적지 않은 
반대를 무릅쓰고 볼셰비키당의 권력 장악을 관철시킨 후 러시아의 공장과 사회에 
테일러주의를 도입하고 이에 대한 반대를 규제할 엄격한 노동규율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적대의 기초를 마련했다. 
소련의 노동자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매개로 
자신에게 강제노동을 부과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당의 지배를 거부함으로써 
사회조직화의 새로운 대안이 필요함을 강력히 역설했다.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일부가 신자유주의화한 사회민주주의 대안을 발빠르게 제시함으로써 
사회주의자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그것을 체제 내부로 
봉쇄할 수 있었지만 동구에서 사회조직화의 새로운 대안에 대한 요구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속에서 적대는 지금 다시 재구성되고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을 장악해 본 적이 없는 박노해에게도 소련에서의 사건은 간접체험으로 
작용했다. 그 역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위기국면을 피한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다른 한편에서는 게걸음, 즉 
수평이동이다. 왜 그런가? 그는 몸철학과 중용의 정치학을 통해 이중의 이동을 
행한다. 그의 입지를 노동에서 시장으로 높이고, 그의 눈높이를 국가에서 시장으로 
낮추는 것이다. 스타,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이 주체가 되어 시장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분단을 극복하여 세계무대로 나서는 것이 그의 진보운동의 강령이다. 
그러면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사람들을 노동윤리로 훈육하며 시장이 가져올 
상처를 치유하고 그 무정부성을 완화시키며 공동선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박노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과 국가가 한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온 일도 바로 이것이었다. 붕괴한 사회주의들에서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실업의 걱정에 짓눌리지 않았으며 서구보다도 
노동과정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 사이의 
차이가 양에 있었지 질에 있지 않은 한에서 박노해의 이동은 수평이동으로 보인다. 
박노해가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와 현실로서의 사회주의를 버리면서도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를 계승하고자 할 때, 정작 그가 계승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가치’론이다. 그는 그것을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운동이 역사에 물려준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예찬한다. 분명 그것은 
사회주의의 유산이다. 사회주의는 강제노동 수용소를 통해, 스타하노프형 인간에 
대한 상찬(賞讚)을 통해, 공산주의적 토요노동의 권장을 통해, 미래 사회 건설은 
엄격한 노동규율과 철저한 시간 관리를 통해서만 도달된다는 당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노동의 지엄함을 일깨웠다. 박노해는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흙힘을 받지 못한 나무처럼 쉽게 쓰러지고 만다. 삶의 현장에서 땀방울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 고생과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의 한과 서러움을 
알지 못하는 엘리트들은 그 내면의 가치 중심이 들떠 있어서 언제 머리가 도는 
방향으로 등을 돌릴지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역설함으로써 우리에게 노동의 
지존함을 가르친다.
박노해는 1991년의 최후진술에서 사회주의에서는 ‘기쁜 노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땀방울, 고생과 시련, 한과 서러움을 
노동과 연결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당과 국가의 통제하에서 진행된 사회주의적 
강제노동, 국가와 자본과 노동조합의 협력하에서 진행된 사회민주주의적 강제노동, 
그리고 시장의 압박하에서 진행된 자유주의적 강제노동 모두는 박노해로부터 
변호를 받을 수 있다. 혹시 그가 구상하는 ‘농사마을’에 합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땀방울과, 한과 서러움이 맺힌 노동의 시련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가치’의 예찬은 사회주의의 유산일지는 모르나 마르크스의 유산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박노해가 말하는 ‘노동가치’론은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이 발견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 관계 속에 
잉여가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자마자 ‘노동시간’이 가치척도가 되는 사회관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러한 사회관계는 자본과 생산자의 유혈전의 산물이며 그 결과 대다수 
인간이 일체의 자연적·사회적 부를 빼앗겨 자신의 몸뚱아리를 팔지 않고는 살아 
남을 수 없도록 되는 비참의 사회가 산출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비참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인 이 노동가치관계를 평생을 통해 분석하고 그것의 
철폐를 위해 투쟁했다. 사회주의에서 비참이 재생산되었던 것은 그 사회가 노동이 
가치척도가 되는 사회관계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노해는 
노동가치론을 ‘두뇌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손발’을 중시하는 가치관이라고 
설명한다. 노동가치론에 대한 박노해의 이러한 농경적, 수공업적, 산업적 해석은 
디지털 정보화를 통해 ‘손발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두뇌’를 새로운 가치 
원천으로 포섭해 가면서 전 사회를 공장으로, 인간의 삶 전체를 노동으로 바꿔가고 
있는 현대 지식집약적 자본주의의 경향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의 존엄이다

박노해에게서 정치경제학 범주인 노동가치론은 곧장 윤리학 범주로서의 
반엘리트주의―그는 최근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을 엘리트주의로부터의 음해로 
환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로 전치된다. 그러나 ‘손발’ 우위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박노해의 반엘리트주의는 엘리트주의의 거울상에 지나지 않는다. 두뇌와 
손발을 대립시키는 것은 오늘날 재구성된 노동계급 내부에 경쟁과 적대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엘리트주의와 다름없이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두뇌와 손발의 분할은 자본의 
착취 관리의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개인사 속에서 반엘리트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전투적 조합주의 단계를 보여주는 『새벽』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사상이다. 
그는 노동하고 생산하는 인간으로서의 노동자의 자존을 기반으로 ‘먹물’을 
경계했다. 그러나 노동자는 스스로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을 
때 그는 자본의 가변부분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쉬바이처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동계급은 혁명적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쓴 것은 이 
때문이다. 학생운동과의 결합 이후, 혹은 사회주의자로의 전향 이후 그에게 
약화되었던 이 반엘리트주의의 새로운 맥락에서의, 즉 비노동자주의적 맥락에서의 
재출현은 노동자가 자신에게 자본이 새긴 이미지를 떨치는 것, 즉 노동은 삶의 
소외 형태임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증한다.
박노해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박노해가 
준법서약서를?! 박노해가 정리해고 불가피론을?! 박노해가 노동부에서 강연을?! 
박노해가 주식 투자를?! 박노해가 사회민주주의를?! 박노해가 김대중 정권 
지지를?! … 그의 변화가 지금까지 말한 대로 볼셰비즘적 사회주의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수평이동에 불과하고 그 양자가 노동가치론이라는 자본주의의 
사회조직 원리를 그대로 보존·계승하는 것이라면 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그토록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박노해의 답변은 분명하다. 당신들이 바깥의 변화 속도보다 너무 늦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답이 오늘날의 구좌파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어지는 한에서 
그것은 정확한 것 같다. 그러한 사회주의는 붕괴했고 이미 재기 불가능한 종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박노해는 이 사실의 승인에서 자신의 행보와 사유를 시작한다. 
그는 “지금 문제는 변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박노해는 변화를 신비화한다. 우주 만물 혹은 인간의 본성에서 변화의 
동력을 찾으면서 세계사를 추동해 온 계급들의 투쟁을, 적대의 현존을 얼버무리기 
때문이다. 변화가 늦은 구좌파 사회주의는 오히려 적대의 지속을 확인하면서 
신자유주의로의 자본의 지배 전략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한다. 그것은 박노해가 
생각하듯 추상적인 개념 놀이가 결코 아니며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지역특성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구좌파 사회주의가 보지 못하는 것은 
지배 전략의 변화가 아래로부터의 계급 재구성, 새로운 주체의 출현에 의해 
강제되었으며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 새로운 주체를 포섭하기 위한 대응전략이라는 
점이다. 박노해는 비록 세대론적으로 협애화한 틀 속에서이지만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포착하며 신비화된 방식으로나마 그것이 변화의 동인임을 인식한다. 문제는 
그가 이 주체의 자율성을 ‘노동가치’로 표현되는 낡은 사회관계 속에 봉합하려 
하는 점이다.
박노해보다 빨리 변한 (신)자유주의자들이 그의 변화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이제야 깨달았느냐는 식으로 냉소하면서 그에게 남아 있는 전위주의(변화 이후 
그의 전위주의는 전투적 전위주의에서 계몽적 전위주의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를 
구태라고 비난하는 것,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의 
변화를 어떤 근본적 변화인 것처럼 환영하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반응들은 박노해의 실제 모습과 변화의 
실체를 감추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의 변화는 지구상에서 각기 다른 양상과 속도로 진행되어온, 사회주의 전략의 
좌절과 그것의 신자유주의의 하위 파트너 혹은 그 대행자로의 현실 적응 시도의 
한국적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박노해는 ‘참된 시작’을, 그리고 ‘바른 
변화’를 극복의 언어로, 희망의 언어로 제시하지만, 그 언어들에 『새벽』에서 
등장한 그의 첫 문제제기, 그의 ‘첫마음’, 즉 인간이 존엄과 자율과 삶의 기쁨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동해방의 꿈’의 좌절은 깊게 각인되어 있다. ‘현실’의 
발견을 통해 그가 찾은 그 어떤 ‘희망’의 이야기보다도, 그가 독일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에게 전해주는 한 문장(“인간 존엄성의 이름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 모든 손들의 치켜들음, 이것이 내가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다”:마르크스의 
묘비명)이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것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순결주의자’의 자폐증에 불과한 것일까?    


조정환(jhjoe@galmuri.co.kr)은 1956년에 출생하여 서울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앙대, 호서대 강사를 거쳐 지금은 문학평론가, 정치철학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주주의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가 있고 역서로는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동녘, 1985), 『미래로 돌아가다』(갈무리, 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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