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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42.tnt3.se> 
날 짜 (Date): 2000년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02시 45분 47초
제 목(Title): 김종구/ 김훈 국장의 사퇴를 보며 


[만리재에서] 김훈 국장의 사퇴를 보며


 

참으로 난처한 심정입니다. 지난 <한겨레21> 제327호 쾌도난담 게스트로 초청됐던 
<시사저널> 김훈 편집국장이 사표를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입니다. 그 글이 나간 
뒤 김 국장을 향한 안팎의 비난이 들끓었고, 그는 결국 지난 7일 사직서를 내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기획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 
데 대해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다 김 국장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도 
친밀하게 지내온 사이이기에 곤혹스러운 심정은 더 합니다. 

일요일인 8일 밤 늦게 김 국장의 일산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넘게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일성은 
“나는 전혀 괜찮아. 이번 문제로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위무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시사저널> 내부도 매우 뒤숭숭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적장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려서 경쟁지를 혼란에 빠지게 한 술책’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쾌도난담에 김 국장을 게스트로 초청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것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나올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경쟁지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언론관행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그를 <한겨레21>에 등장시키는 것은 매력적인 
기획이었습니다. 경쟁하는 잡지들끼리 서로 넘나드는 것 자체가 <한겨레21>이나 
<시사저널>, 나아가서 최근 침체에 빠진 시사주간지 시장의 활력요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이날 밤 술자리에서 김 국장과 저는 이 세상의 모순,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 
선과 악이 혼돈된 시대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글로 
표현되는, 그것도 대화에서 토막토막난 말들은 진심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몇 마디 표현들이 한 인간의 사고 전체를 모두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김 국장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로 나온 것을 보니까 내가 봐도 과격하더구만.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는 발언이야.” 

그는 신군부 등장 시절 ‘용비어천가’를 쓴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은 데 대해 
“나의 잘못을 제대로 질타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 
‘반통일 의혹’에 대해서는 “반통일적이던 사람들이 통일세력으로 바뀌는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과 악이 혼돈되고 전도되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나로서는 
거대담론을 도저히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그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쾌도난담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진심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지만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천적 남녀불평등론’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건 나의 어쩔 수 없는 어떤 심정적 무의식이야. 그것을 
전달했을 뿐이지. 우월한 자의 도덕이라는 게 있어. 여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고생시키지 않고…. 사실은 열등하고 싶어. 그런데 문명이 그렇게 강요해. 그러나 
공인으로서 나는 잡지를 만들 때 여성문제나 페미니즘 기사 등에 대해 결코 그런 
무의식을 따르지는 않았어.” 

김 국장의 여러 주장과 심경토로에는 충분히 수긍가는 대목도 있고, 때로는 저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항변은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나의 생각이 오류일 수도 있어. 동시대의 진실과 나의 오류가 
충돌할지라도 개인의 진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분명한 것은 김 
국장의 솔직함만큼 저는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김 
국장이 다시 <시사저널>에 복귀해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기를 
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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