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tide91.microsoft> 날 짜 (Date): 2000년 9월 22일 금요일 오전 04시 08분 04초 제 목(Title): 쾌도난담/ 최릴린 먼로. [쾌도난담] “어머니”에 눈물을 흘리지 말라 맹목적 국수주의 올림픽 중계방송은 이제 그만, 저질 귀빈동정 보도도 이제 그만 ‘최릴린 멀로’. 스튜디오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갖가지 폼을 잡으며 그는 스스로 지은 자신의 별명을 자랑했다. 최릴린 멀로. 그렇다. 그는 공주파다. 산적 같은 김어준 대신 공주파 아줌마가 온 것인가. 쾌도난담의 새로운 고정패널, 최보은(40). 아는 사람은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이미 하드코어 포르노를 능가하는 <씨네21> 칼럼 ‘아줌마, 극장 가다’를 통해 일부 독자들을 의식의 공황상태로 몰아간 바 있는 그가 이번호부터 김규항의 파트너다. 그는 앞으로 무슨 말들을 할까. 독자들에겐 예의가 아니지만, 그건 두고보면 안다. 단지 그는 살살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살. 아마 독설이 분명할 터이지만. 새롭게 출발하는 ‘김규항·최보은의 쾌도난담’을 기대해 보자. 편집자 첫날부터 펑크를 냈다. 쾌도난담 약속시간 30분 전까지 아줌마는 교신 불가능 상태였다. 긴급추적 결과 그는 경기도 하남시의 친정집에 있었다. 한가위 연휴가 모두 끝난 9월14일 오후.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난 오늘이 휴일인 줄 알았지. 그럼 연락을 미리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는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정신없는 아줌마. 배터리가 죽었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꺼놓았으면서. 다음날, 그는 여전히 고자세로 나왔다. 쾌도난담 장소를 자신의 자택으로 할 것을 고집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효창동 최대포집. 몇번의 승강이 끝에, 조용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집을 향했지만…. 첫 화제는 명절이었다. 김규항과 돌고래쇼 최보은 난 쭉 친정에 있었어. 내가 남동생만 둘이고, 홀어머니 혼자 계신데… 나도 반실천이야. 잘 안 돼. 나도 같이 한다고 하지만 쉽지가 않아. 시누이라는 것도 권력인데… 만날 올케 둘이서 하는 식이 되고. 참 어떻게 실천을 해야 될지가. 요번에도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 보자, 이런 식으로 하지 말자고. 그랬더니 걔네들 하는 말이 “일년에 한 이틀 고생하고 마는 게 낫다”는 거야.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해 평생 겪을 고초가 싫다는 거지. 남편이 전폭적으로 도와주거나 공감하지 않으면 힘든 거야. 일사천리로 최보은이 신나게 말했다. 김규항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최보은은 뒤이어 며느리의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최보은 왜 여자들의 꿈이 그거잖아. 시댁 상관없이 우리 가족끼리 휴가 한번 가봤으면 하고…. 일반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바라보잖아. 근데 내 생각은 틀려. 주부들은 평생 가족들하고 같이 살잖아. 한시도 가족들의 굴레를 벗어날 틈이 없다고. 주부들한텐 정말 혼자만의 휴가가 필요하다고 봐. 진짜 휴가는 가족들과 같이 가서 수발드는 휴가가 아니라고. 그래서 난 그걸 여자들이 주체적으로 요구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야 된다고 생각해. 지금 단계는 시부모를 모시고 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인데, 시부모 모시고 가면 그게 무슨 휴가야. 사실은 강제노동이지. 그래서 난 결혼한 여자들은 절대적으로 1년에 얼마씩 상당기간 혼자만의 휴가를 주는 게…. 김규항 국가적으로? (웃음) 최보은 국가적으로가 아니라… 그런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거지. 김규항 아주 좋은 말씀이라 사료됩니다. (웃음) 최보은 돼지 키우나? 사료 찾게. (웃음) 근데 사실 내가 자격도 안 되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고 일상적으로 게으른 사람인데도 쾌도난담을 하기로 한 건…. 김규항 취임의 변입니까? 그 얘긴 따로 쓸 텐데. 최보은 언론탄압하지마. 나중에 쓰더라도…. 김규항 글쎄 듣기 싫어요. (웃음) 뭐 자격도 안 되고 게으르고… 그럼 하지 마. (웃음) 최보은 아무래도 남자 둘이라는 게, 아무리 의식적으로 본인이 페미니스트고 사회적으로 각성됐다 하더라도 체질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에서 내가 여자로서 기여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거지. 사실 난 최근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모토로 사물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 나이에 굉장히 늦었지만. 내가 너무 혼자 이야기하나? 김규항 전 최 선배님 말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웃음) 최보은 알았어. 여기서 끝낼게. 김규항 명절에서 며느리의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명절이란 제도의 문제는 아니죠. 한국 가족제도의 현실 속에서 여자가 처한 상황의 문제고, 명절 때 그게 아주 극단적으로 불거지는 거죠. 저는 최 선배의 그런 제안이 너무 기발해서 앞으로 몇년 동안 현실성은 별로 없지만 개인단위에서 실천할 수는 있겠죠. 저희집 같은 경우엔 제가 장손인데 다른 친척들 일체 안 모으고 아버지 집하고 우리집만 서울대공원 갔다왔어요. 입장료 1500원. (웃음) 음식 같은 건 일절 준비 안 하고…. 며느리는 현대사회의 천민이다 (사진/최보은 <케이블TV가이드 편집장> ) 최보은 며느리들만 죽어난다니까. 한국 가족제도상에서 며느리는 천민이라니까.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게 4∼5년 전인데, 지극히 개량적이고 표피적인 수준이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화면이란 게 고작 남자들이 함께 송편 빚는 수준이지. 1년에 한번 송편 빚는 게 남자들에겐 사실 노동이 아닐 수도 있어. 김규항 그것도 안 하는 놈보단 낫지 않습니까. 최보은 낫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 난 한국의 명절문화란 게 왜 그렇게 먹는 걸 가지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지…. 평소 못 먹어서 굶은 사람들처럼. 옛날엔 명절 때 한번 잘 먹는다는 게 의미가 있었지만 말이야. 나도 올케들이 차려준 밥 먹을 때는 참 고역인 거야. 내가 밥 못 먹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김규항 환장한 사람이잖아. (웃음) 추석 다음날 전라도 고향에 잠깐 다녀왔는데 고속도로에서 밀려 있다가 바깥 풍경을 보니, 산에 길도 없는데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막 올라가고….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떤 이념이나 신념 그 어떤 걸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의를 갖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습속이란 건데 참 무서운 거죠. 추석이란 명절의 의미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지만,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그걸 빌미로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는 기회이긴 하죠. 근데 바로 그 기회가 여자, 특히 며느리라는 여자에겐 지옥이죠. 최보은 난 뉴스에서 귀성차량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이건 정말 어머니 신앙의 어떤 살아 있는 기념비랄까? 이산가족 만남에서도 그렇고, 군대 간 ‘싸나이’들도 그렇고, 남자들이 “어머니” 하면 눈물 흘리고… 그 어머니는 곧 희생이거든. 한 개인의 삶을 밑거름으로 삼아 자양분을 먹으면서 어머니는 다 빨리고 소진되는 거지. 난 그런 걸 아주 신비화하고 추앙하는 게 너무나 잘못됐다는 거지. 그래서 난 어머니 이데올로기는 없어져야 한다고 봐. “어머니” 하면서 눈물 흘리는 남자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세상 남자들이 어머니 얘기하면서 눈물 흘리는 게 얼마나 야비한 것인지… 그러면서 그런 희생을 되물림시키는 거잖아. 그걸 추앙함으로써 자기 딸들도 똑같은 삶을 살게 하고. 그게 정말 양민학살 못지않게 한 사람의 삶을 천천히 죽이는 거잖아. 진짜 어머니가 위대하면 자기 삶을 찾게 해줘야 되고 자식들한테 매달리지 않게 해줘야 된다고. 난 우리 모친한테 늘 그렇게 주장해. 노인은 외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된다…. 김규항 저는 봉건사회에서 만들어진 풍습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근대사회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그 나름의 고유한 미덕이 있죠. 근데 그런 미덕들은 대개 남성들만을 위한 것이죠. 그래서 전 이번엔 음식 일체 안 하고…. 최보은 그 자랑을 두번씩이나 하네. (웃음) 오늘이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인데… 올림픽 얘기할까? 김규항 아까 시작 전에 최 선배가 한 얘기 있잖아요. 그거 재밌던데. 최보은 올림픽 때 텔레비전에서 호들갑떠는 거야 각국이 공통된 것이지만, 거기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해. 근데 한국 방송들이 호들갑떠는 건 너무 질이 낮아. 어떤 식이냐면 무슨 뉴스인가를 하는데 아무런 자의식 없이 귀빈 동정보도를 하는 거야. 서영훈 민주당 대표가 시드니 현지 IBC에서 격려를 했다는 등… 뭐 그런 비슷한 동정보도 세 꼭지를 연이어 하더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뉴스가치가 있냐고. 신문에서도 동정보도를 하지만, 또 파워엘리트들의 동정이 중요한 사회이긴 한데 방송에서 그러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방송의 소유구조 자체가 취약하니까 이해는 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이 리포트할 때 그런 뉴스에 대해서는 자의식을 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정말 누가 물어봤어? IBC에 누가 찾아왔는지 누가 물어봤냐고. 올림픽이 국가대항 조폭싸움인가 (사진/김규항 <아웃사이더>편집장) 김규항 우리나라 방송 보면 여전히 ‘땡전뉴스’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주인만 바뀐 강아지의 모습이죠. 최보은 어휘선택도 그래. 지나치게 흥분해. “감동의…” 뭐 이런 비이성적인 말이 너무 자주 나와. 누가 감동을 해. 그냥 재미로 보는 거지. 김규항 내 후배는 울던데. (웃음) 그 드라마 자체는 감동하지만 귀빈 출연은 전혀…. 아까 동정뉴스에 대해 말했잖아요. <아웃사이더> 2호에 홍세화 선생이 ‘사회귀족’이라는 글을 썼는데, 동정뉴스를 언급했더라고요. 신문의 인사동정란이 얼마나 봉건적인 습속인가 하는 거지. 특히 <조선일보> 동정란에 등장하는 인물군과, <한겨레>에 등장하는 인물군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참 흥미로운 일이죠. 최보은 그래 거의 똑같다. 김규항 우리는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만, 웃기는 일이 참 많아요.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하는 걸 보면 “대통령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식인데 대통령이 무슨 왕인가. “대통령이 무슨무슨 발표를 했다”고 하면 될 텐데. 대통령이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그 역시 아주 봉건적인 습속이지요. (잠시 긴 침묵) 혹시 이번 올림픽 선수 중에 맘에 드는 남자라도 있습니까? (웃음) 남성 마니아로서. (웃음) 최보은 나는 한국이 출전한 경기에 대한 방송의 중계태도가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그 맹목적인 국수주의, 민족주의 그런 거. 김규항 완전히 전쟁이지. 최보은 사실 축구 스페인전도 그래. 실력차가 너무나 명확하고 예견된 일이었는데. 항상 우린 이적을 바라는 사람들 같아. 메달이 걸린 국제경기에서는 그런 기대감을 부추기고… 참 ‘불건강’하지 않아? 객관적으로 전력의 차이가 나면 인정하고 그냥 즐기면 되잖아. 한수 배우는 심정으로. 그런 태도가 됐으면 좋겠어. 김규항 우리나라 축구를 정신력 축구라고들 하죠. 사실 정신력이란 전력은 실체가 없는 거잖아요. 정신력이란 전력은 결과에 따라 완전히 평가가 달라지는데… 이기면 정신력의 승리라고 하고 지면 정신이 썩었다고 하는 그런 식이죠. 그러니까 그 선수나 감독들은 늘 천당과 지옥을 오가죠. 뭐 국가대항 조폭싸움도 아니고… 서구사회에도 훌리건인가 하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동원되는 경우는 없죠. 한국사회는 여전히 병영 같은 데가 있어요. 최보은 올림픽이 이렇게 상업화된 게 사마란치의 역설적인 업적인데… 일각에선 업적이라 치하하고 일각에선 사마란치가 올림픽 망쳤다고 비난하는 형국인데…. 정말 저런 막강한 국제기구에서 장기집권하는 거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IOC 추문도 터졌지만, 하여간 우린 “그러거나 말거나 보고 즐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솔직히 메달 몇개 따는가에 관심이 없어지니까 올림픽 보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김규항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포츠에 대한 군사적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다고 했을 때 운동권 일각에선 그랬죠. 특히 최 선배 학번들. (웃음) “올림픽이 열리면 양키문화가 다 들어와 여자들은 다 매춘부가 되고 우리나라 다 망가진다”고.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전두환 정권이 올림픽을 민심 수습 방편으로 삼았듯 반대편 역시 아주 강박적으로 나온 건데 사실 사마란치 이후 올림픽이란 건 자본의 거대한 잔치일 뿐죠. 근데 한국에서 재미없어 하는 육상경기 같은 것도 사실 굉장히 감동적이거든요. 그 자체는 참 멋진 드라마죠. 최보은 이런 측면은 있어. 전두환 정권 때 88올림픽을 유치한 게 엄청난 국가 홍보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거든. 전세계가 다 중계를 하니까. 그런 차원에선 반드시 세계경기 유치를 나쁘게만 볼 건 없는데, 그뒤에 파묻힌 것들이 문제라고 보는 거지. 그리고 이런 올림픽에 모두 정신 팔려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거고. 김규항 국가 홍보라기보다는 정권 홍보겠지만, 어쨌든 심심한데 재미있잖아. (웃음) 최보은 올림픽 기간엔 극장에도 손님이 없고, 책도 안 팔리고… 중요한 일상적 이슈는 언론의 접근권을 박탈당하는 거잖아. 김규항 4년에 한번, 서민 대중한테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주고, 위안을 주는 건 사실이죠. 최 선배는 일종의 문화적 차단이라고 했지만, 아예 문화적인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니까. 최보은 문제는 즐기되 맹목적이 아니라 조금은 경계하면서 즐기는 그런 게 필요하겠지. 김규항 비판의식을 갖되 무지하게 열심히 본다? (웃음) 체육계 임원은 왜 모조리 남자냐 최보은 하여튼 올림픽 내내 하루종일 올림픽 얘기만 언론이 하는 현상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 김규항 다른 나라도 우리처럼 모든 공중파가 중계를 다 하나? 최보은 우리나라에도 스포츠 전문 채널이 몇개씩 있고 한데…. 김규항 공중파의 물량 공세하곤 ‘잽’이 안 되겠죠. 최보은 미국 같은 경우만 해도 대안언론들이 많잖아. 지역언론이 활성화돼 있고. 우리나라하곤 매체환경이 틀리지. 김규항 오늘은 지면이 적어 많이 말해봐야 다 잘려요. 그만하죠.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뭡니까? 최보은 며느리한테 솔로휴가를 주자. 김규항 당근이 필요해. 휴가를 주면 세금 감면혜택을 준다거나 의료보험료를 깎아준다든가. 최보은 (올림픽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을 돌리며) 근데 스포츠 캐스터들은 왜 전부 다 남자야? 체육계 임원들도 전부 남자고. 선수촌 간부들도 다 남자고. 여자선수가 반인데 말이야. 김규항 최 선배 같은 유력 여성들이 IOC위원을 목표로 활동을 안 하잖아. (웃음) 그런 거 더럽게 생각하고 그러니까 더러운 놈들이 다 먹는 거야. 김규항이 말하는 김규항 나보다 곱절은 세련된 좌파들인 후배들, 특히 남자 후배들에게 나를 ‘유명 진보 지식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건 대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떨이를 사용하겠다는 내 장난 덕이지만, 나는 그런 싱거운 장난을 통해 ‘유명’이라는 말과 ‘진보’라는 말과 ‘지식인’이라는 말에 사로잡힌 내 삶을 조롱한다. 일년 전 김어준과 쾌도난담을 시작할 때 나는 ‘짜고치는’ 고스톱판인 한국사회의 담장 위에 걸터앉아 주정이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천천히 술기운을 털어내고 담장에서 내려오겠다. 내 조촐한 싸움이 과연 이 빌어먹을 천민자본주의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 영혼의 안식은 그 싸움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나는 안다. 김규항이 말하는 최보은 교우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최보은이 불편하다. 그건 대개 내가 써내는 글에 대한 그의 야비한 칭찬 때문이다. “그 글 좋더라. 그런데 왜 나는 김규항의 글이 정치적으로 올바를수록 김규항이 의심스러울까.” 그런 야비한 칭찬은 이른바 지식인 노릇이 매일같이 내게 배달해주는 내 정신적 공황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지식인으로서 최보은의 미덕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자신이 장미희 이후 최고의 미인이라는 최보은의 주장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나도 최소한의 미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장미희 이후 최고의 문제 여성 가운데 하나라고는 생각한다. 가면 속의 마초인 나는 매주 이 문제 여성의 야비한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최보은이 말하는 최보은 한 삼십오년쯤 안 달고 태어난 데 주눅들어 살고, 주눅들어 산 끝에 인간장아찌가 될 쯤해서, 비로소 입도 거시기의 대체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입’지전적 아줌마. 김어준보다 경쟁력 있는 대목은 여자라는 점. 전임자를 욕해서 안 됐지만, 김어준은 절대로 세상의 절반인 여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가 없지 않남. 이건 아주 중요한데, 절반의 시선이 빠져 있는 시선은 기실 사시라는 점을 명심하실 것. 혼자만 떠든다고 첫날부터 편집자의 놀림을 들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는 일 없이 말만 많지만, 그래도 이 여자는 마흔이 불혹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입증하는 증거물임. 가슴에 불혹덩이를 무럭무럭 키우며, 스쳐가는 바람이 건드리기만 해도, 성난 눈으로 돌아보면서 우씨우씨 세상에 화를 냄.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는 이 여자를 ‘최 게바라’라고 부르기도 함. 게바라님이시여, 부디 용서를^^. 최보은이 말하는 김규항 손오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익명의 바위섬을 뚫고 나와 언어의 여의봉을 휘두르고 있는 불가사의 흥미진진한 캐릭터. 극우파쇼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인사의 후장에도 변침을 만만찮게 날리는 바람에, 팬만큼이나 적도 왕창왕창 불려가고 있는 중. 가끔 심심할 때 이죽이죽 글에 대해 시비를 걸면 몹시 상처를 받고, 나아가서 유려한 글로서 반드시 복수하므로, 심심하더라도 뒷전에서 욕해야지 앞에서 욕하면 절대로 안 됨. 서준식 선생을 사표로 떠받드는 대목, 그리고 서준식 선생처럼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자신없어 하는 대목에 있어서, 아줌마의 유력한 경쟁자. 지금 ‘작가주의’ 출판사하면서 걸머진 빚 갚느라고 자본주의 사회에 징하게 노력봉사하고 있는데, 아마 그래서 사회불만 체질이 더 강화되고 있지 않나 사료됨. 결론은, 김규항은 돈 벌면 안 됨. 김규항이 사회 대만족 세력이 되면, 그 좋은 글을 앞으로 ‘어케’ 보겠냐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