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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23.tnt6.re> 
날 짜 (Date): 2000년 9월 12일 화요일 오후 03시 38분 18초
제 목(Title): 김세균/ 진보평론 발간 1주년을 즈음하여 


http://jbreview.jinbo.net/

[진보평론] 4호(2000년 여름호) 편집자의 글 






발간 1년에 즈음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대립은 크게 보면 노자대립을 중핵으로 하는 지배블록 대 
피지배대중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대립 속에서 중간층 중심의 
뿌띠부르주아 운동 내지 '시민운동'은 자신을 대체로 '제3의 독자적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지만, 실제로는 지배블록의 운동을 뒷받침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피지배대중의 운동과 연대-제휴하는 운동으로 전개된다. 계급모순에서 발원하는 
그러한 사회적 대립은 계급모순으로 모두 환원되지 않는 다른 사회적 대립들과 
처음부터 뒤얽히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 우리는 '제 모순들의 복잡한 중층결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피지배대중의 투쟁 내지 그 투쟁의 이념적 지향성을 표시하는 진보적 
사회-정치운동은 '총자본'으로 기능하면서 성립된 사회체제의 유지-재생산을 
총괄하는 국가에 대한 투쟁과, 사회의 제반 영역과 부문에서 전개되는 투쟁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람시( A. Gramsci)의 용어를 빌려 전자를 
'기동전'으로, 후자를 '진지전' (또는 '국지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의 
강권적 개입이 사회생활 전반을 짓누르던 과거의 군부독재 시절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기동전이 압도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생활이 일정하게 
민주화되고, 사회 각 영역-부문의 제반 부르주아권력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사회의 모든 진보적 운동역량을 '국가에 대한 기동전'으로 결집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원한다고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오늘날에는 사회의 각 영역-부문에서 민주주의를 
확대-심화시키고, 부르주아헤게모니를 노동자-민중 헤게모니로 전환시키기 위한 
진지전 역시 기동전에 못하지 않는 중요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나아가 '국가변혁' 내지 '정치혁명'이란 기본적으로 '사회변혁' 내지 '사회혁명'을 
위한 수단인 만큼, 기동전이란 기본적으로 진지전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진지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기동전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기동전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기동전이냐 진지전이냐'가 아니라 양자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해 낼 
것인가에 있다고 하겠다. 


『진보평론』은 그간 특집에서 기동전과 관련되는 거시적 구조분석에 관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어 왔다. 이로 인해 진지전과 관련되는 미시분석이 상대적으로 
소흘히 취급되었다. 그러한 소흘함이 만든 논의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이번 4호의 특집주제를 '일상 속에서의 권력과 저항'으로 잡았다. 
특집의 총론 격에 해당하는 이구표의 글은 미시권력과 미시파시즘에 관한 그간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일상적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과 저항의 문제를 
탈근대적 문제설정을 통해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의 제안은 앞으로 많은 
논쟁점을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된다. 
육아와 어린이교육 문제를 다루는 김정희의 글은 아이들의 현실을 
엘리트남성·자본중심의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명억압 체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그 체제로부터의 탈출을 어른들의 삶의 건강성 회복과 새로운 
세상 만들기 기초로서의 주민자치 및 학교 안팎에서의 새로운 교육현장 만들기 
등에서 찾고 있다. 
대학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한의 글은 대학입학을 '학력자본의 취득행위'로 
보면서 그 문제점을 화폐의 취득과 교육의 분리 추구, 학교의 틀을 벗어난 대안 
교육공간의 확보 등을 통해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강제적 수용시설의 하나인 사회복지시설의 수용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박래군의 
글은 그 시설이 사회복지의 이름을 앞세우면서 수용자들의 인권을 얼마나 무참하게 
유린하고 있는가를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정교한 폭력장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수용자의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수용소권력의 시도가 얼마나 
잔혹한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감옥문제를 다루고 있는 최정기의 글은 파시즘의 미시정치라는 관점에서 
감옥권력의 작동방식 및 그 사회적 효과를, 그리고 탈주에 대한 사고인 욕망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수형생활을 분석하면서 파시즘의 미시정치가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장치인 감옥의 파괴와 변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애초에는 이러한 글들 외에도 초-중-고등학교, 병원, 공장-회사 등에서의 권력과 
저항의 문제를 다루는 글들을 게재하려고 했었다. 이번 호에 다루지 못한 이러한 
주제들도 앞으로 심도 깊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초점난에는 '시애틀 투쟁'으로 대표되는, 초국적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투쟁의 전개과정과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있는 
원영수의 글과, 현재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한일 투자협정을 
금융세계화와 관련시켜 논의하면서 민중운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이창근의 
글을 실었다. 이러한 글들은 현 시기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임을 알려주며, 우리 사회의 운명과 한국 진보운동의 미래를 
전지구적 시각에서 사고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 

정세난에는 국내외 정세에 관련되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손호철의 글은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엄청난 사회적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 시점에 치러진 16대 총선의 의의와 결과 등을 총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에서 그가 행하고 있는 평가들, 특히 총선시민연대의 활동 및 지역주의 현상 
등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준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남주의 글은 WTO가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적극 편입하려고 
하는 중국의 '시장주의' 정책의 전개과정과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편, 시평글에서 오세철은 체 게바라와 노암 촘스키의 실천,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는 유럽 좌파들의 움직임 및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을 노동자국제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하면서 '21세기의 혁명'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보편적 
세계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천하려는 반성에서 나온 그의 글은 우리들에게 
진보세력이 버려서는 안될 가치를 다시 일깨워준다. 

일반논문으로는 3편의 글을 실었다. 
경제위기 정세에서 재벌개혁과 해체를 위한 진보적 대안으로 일각에서 제기한 
'종업원지주제' 또는 '우리사주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는 김성구의 글은 
종업원지주제 등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이른바 '우리사주 사회주의론'이 지닌 
소부르주아적 공상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화폐권력에 관한 맑스의 이론을 재천착하고 있는 이진경의 글은 화폐란 
자본주의에서 대중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 자체를 착취의 영역으로 포섭하고 
포획하는 메커니즘이며, 동질화를 강제하는 화폐적 등식을 통해 일종의 초월적 
권력을 장악하고 작동시키면서 그와 반하는 현세적 가치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메커니즘임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코뮨주의를 화폐와 무관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 가치법칙에 반하여, 화폐에 반하여 새로운 사회의 꿈을 
향해 나가는 "현실적인 이행운동 그 자체"로 정의하고 있다. 
맑스의 변증법에 대한 김경수의 글은 맑스의 변증법을 헤겔 변증법 류의 '동일성의 
철학'으로 보는 관점을 폐기하면서 '차이의 변증법'으로서의 맑스의 변증법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이 3편의 글은 모두 만만치 않는 이론적 쟁점들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글로서는 1970년 미국 신좌파 운동의 진원지였던 두 주립대학에서의 
학살사건과 그 이후에 새롭게 분출하기 시작한 학생운동, 흑인운동, 군인운동, 
여성운동 등을 회고하고 있는 카치아피카스의 글을 번역해 실었다. 이 글은 내용상 
{진보평론} 3호의 파업 특집에서 이론적으로 검토한 일상적 파업의 한 사례로서 
의미를 지닌다. 

다시읽기난에는 『자본론』이 오늘날 계급투쟁에서 여전히 노동계급에 유용한 
전략적 보고가 되도록 『자본론』을 비판적으로 재독해할 것을 제창하는 이상락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은 자본론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쟁점난에는 그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을 보다 발전적인 '제 2차 
민주변혁 논쟁'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는 장석준의 글을 실었다. 

{진보평론}은 운동과 인물의 양면에서 한국 사회주의의 역사를 구명하는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다.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다루는 이준식의 글과 그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단야를 소개하는 최규진의 글은 이 연재기획물의 3번째에 해당하는 
글들이다. 기억을 둘러싼 힘겨운 투쟁에 나서고 있는 이들에 대해 독자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기를 바란다. 

주제서평난에 실은 최형록의 글은 변혁운동을 '생명 존엄성의 진정성(眞正性)'을 
승인하는 운동으로 보는 입장에서 '생명'문제를 다룬 자연과학자들의 저서를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책서평난에는 E. P.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역사』에 대한 이용재의 글, 
김진호의 『예수역사학』에 대한 최형목의 글 및 정병기가 편저한 {이탈리아 
노동운동사}에 대한 임정석의 글을 실었다. 

『진보평론』은 앞으로 서평에서 더 나아가 영화, 연극, 미술 등에 대한 
문화비평에도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그 출발로서 이번 호에는 김민기의 
'지하철1호선'을 평가하는 김창남의 글을 실었다. 문화비평난이 알찬 내용을 지닌 
난이 되도록 앞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일 작정이다. 


이번에 4호를 냄으로써 『진보평론』이 발간된 지가 이제 1년이 되었다. 이로써 
『진보평론』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일정하게는 가능한 시점에 우리는 서게 
되었다. 나아가 그러한 평가에 기초하여 『진보평론』이 한국사회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진보정론지가 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책임을 우리는 지고 있다. 
『진보평론』에 대한 독자들의 차가운 평가와 따뜻한 격려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아울러 우리는 독자들에게 '진보평론 홈페이지'를 많이 방문해 줄 것을 
요청드린다. 이 홈페이지가 잡지의 한계를 보완하고 진보적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2000년 5월 18일 


편집위원장 김 세 균 
<편집자의 글> 





노동자-민중적 대안을 강화하자 





오늘날 한국사회는 한국사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두 개의 중대한 
역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 개선국면의 조성이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1961년 군사쿠테타 이래로 한국사회의 발전모델이 
된 '국가주도형 발전모형'을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로 대체시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사회 내부의 주된 대립구도는 '신자유주의 대 반(反)신자유주의'의 
대립구도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다. IMF 요구를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위기극복과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한국민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김대중정권이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데에 맞서 그러한 전환의 최대의 피해자층인 노동자-민중이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 아래 뭉치고 있다. 시민운동은 '국가주도형 
발전모델로부터의 탈피', '민주적 자본주의체제의 구축' 등을 내세우면서 그러한 
전환을 밑으로부터 뒷받침하고 있고,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의 주류적 흐름도 
노동자-민중운동과의 고리를 끊으면서 자신을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한편, '시장주의적-(신)자유주의적 북한 흡수통일 노선'을 추구하는 김대중정권 
중심의 자유주의분파는 남한자본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개선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반면, '현실주의적-강압주의적 북한병합 노선'을 추구하는 
수구보수세력은 그 과정을 훼방놓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시민운동세력은 
지배블록의 핵심분파인 자유주의분파의 통일노선을 밑으로부터 지지하고 있다. 
'자주적 평화통일 노선'을 내세우면서 이전에는 정권의 대북정책에 완강하게 
맞섰던 반제적 민족주의 성향의 민간통일운동세력의 많은 부분 역시 이제는 정권과 
자본의 대북정책 수행의 제2중대로 점차 편입되고 있다. 정권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대립구도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대립구도로 부각시키면서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민중운동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와는 달리, '계급적-민중적 
통일노선'을 추구하는 세력의 움직임은 아직 태동단계에 머물어 있다. 


이번 호의 <특집>은 1998년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천명한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뒷받침하는 지배층의 지배적 
담론의 하나로 부상한 '지식기반사회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내용으로 꾸렸다. 
최형익의 글은 '지식기반사회론'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결합한 자본의 새로운 
권력형태로 보는 관점에서 그 담론이 지닌 이데올로기성, 그 담론과 자본주의 
노동세계의 구조변화와의 관계 및 그러한 구조적 변화가 노동자계급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환식의 글은 앞의 글과 보완관계에 있는 
글이다. 그는 그간의 주요한 이론적 논쟁을 소개하면서 자본의 권력담론으로서의 
'지식기반사회론'이 '시장의 물신에 종속된 지식생산론'이라는 점, 그 담론이 
산업자본주의의 지식, 언어, 정보 등의 '일반적 지성'(general intellect)이 
생산력의 중심이 되는 인식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본주의의 굴레로부터 '일반적 지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조건 없는 사회급여 보장'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제안은 
'노동거부론'과 마찬가지로 많은 논쟁점을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된다. 천보선의 
글은 정부가 현재 교육지표와 이념으로서 제기하고 있는 '신지식인론'이 
'지식인'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생각 뿐 아니라 무한경쟁구조의 사회관, 경제적 
가치에 따른 지식과 인간의 재단, 성공지상주의 등을 심고자 하는, 물신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신자유주의 교육패러다임을 체계화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그러한 
'신지식인론'의 주요 측면들과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있다. 김영식의 글은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한국 
벤쳐산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벤처열풍에 대한 노동자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현우의 글은 '정보의 
상품화', 생산수단인 토지로부터 농민을 축출한 산업사회 초기의 엔클로저 운동에 
비견될만한 '디지털 엔클로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지적 재산권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그 발본적인 대안으로서 전개되고 있는 카피레프트운동의 의의와 향후 
과제 등을 논하고 있다. 끝으로, 홍성민의 글은 한국학문, 특히 한국정치학의 
정체성문제를 학문형성에 관한 주체주의적 관점과 구조주의적 관점을 넘어서는 
관점으로서 제기한, 부르디외의 개념을 차용한 '학자적 아비투스'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의 글은 '지식기반사회론'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신자유주의적 학문의 형성 및 그것에 대항하는 대안적 학문의 형성과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특집>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 관련되는 '지식기반사회론'에 관한 
것이라면, <초점>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김세균의 글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배경, 그것이 남북관계와 남북한의 사회-정치적 발전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는 동시에 '계급적-민중적 통일론'의 관점에서 제반 
통일운동 노선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명식의 글은 남북관계의 변화와 
관련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대외정책을 총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등에서 앞의 글과 차이를 보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발언대>난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넝마공동체 등을 
만들어 활동해온 넝마주이 윤팔병의 글을 실었다. 민초들의 삶과 그들의 희망과 
분노 및 그들의 실천을 그들 자신의 언어로써 전하고 있는 그의 글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좋은 글을 보내준 그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해외통신>난에는 콜 전수상과 기민련의 기부금 수수사건이 가져온 독일 기민련의 
위기를 정치와 윤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는 심용옥의 글을 실었다. 그의 
글은 '정경유착'이나 '정실자본주의' 등의 문제가 한국과 같은 나라들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인 문제임을 시사해 준다. 

<일반논문>으로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이정희의 글은 기독교 공동체의 종말론적 
제의의 본질과 예수사건과 운동의 종말론적 지평이 오늘의 폭력적 현실과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학적 담론인 종말론이 반폭력 - 비폭력이 아니라 -의 입장에서의 폭력적 현실에 
대한 비판임을 주장하고 있다. 윤건차의 글은 일본사회에서 차지하는 재일교포의 
지위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기억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식을 통해 그 문제에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외국인 글>로서는 맑스의 
『자본』(Capital)을 읽고 있거나 읽고 나서 정치경제학비판을 좀더 깊이 있게 
연구하려는 이들이 보아야 할 문헌들을 그 문헌들이 처해 있는 논쟁의 맥락과 
관련시켜 서술하고 있는 하인리히의 글을 실었다. 제법 긴 분량의 이 글을 
번역해주신 김만수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호에는 <자유기고>글로서 
혁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 등을 비판하고 있는 차인석의 글을 실었다. 
그의 글은 혁신자유주의의 철학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진보평론』은 그간 한국 사회주의의 역사를 구명하는 기획물을 연재해 왔는데, 
박한용의 글은 그 운동편의 네 번째 연재물로서 1930년대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분석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아쉽게도 한국 사회주의사의 인물편을 싣지 못했다. 

<다시 읽기>에는 {분자혁명}, {안티 오이디푸스}, {천의 고원}과 같은 들뢰즈, 
가따리의 저작들을 '비(非) 파시스트적 삶에 대한 입문서'로서 읽었던 푸코의 
독해방식에 따라 그들 저작에 대한 정치적 독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권혜원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은 '탈주의 철학'을 모토로 제기된 그간의 논의들이 
지닌 이론적 추상주의에 대한 반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호에 처음 지면이 
할애된 <인문산책>난에는 유중하의 '시인은 왜 술을 마시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김수영의 '신귀거래'(新歸去來) 연작 아홉수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하여 시의 
의미를 이리저리 찾아 나가는 그의 글에는 인문산책의 향기가 가득 배여 있다. 
그리고 <서평>난에는 김동춘의 {근대의 그늘}에 대한 정병기의 글,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문순홍의 글,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의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김성민의 글 및 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에 
대한 박정미의 글을 실었다. 우에노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윤건차의 글도 
함께 참조하기 바란다. 

지난번에 4호를 발간함으로써 『진보평론』의 발간은 1년을 맞이했었다. 이에 이번 
호에는 독자투고의 형식으로 『진보평론』1년을 평가하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이 
중 이성민의 글이 『진보평론』에 대한 격려를 곁들인 내재적 비판이라면, 
장은주의 글은 『진보평론』에 대한 신랄한 외재적 비판이다. 두 글이 행하는 
비판의 지향성이 전혀 다르지만, 두 글 다 『진보평론』의 앞으로의 좌표 설정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그간의 발간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좌파정론지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내부의 역량 면에서나 외적인 조건들과 관련해서나 매우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하므로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그 부족함을 
밑천 삼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에 독자들이 힘을 보태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0년 8월 20일 

편집위원장 김 세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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